예수와 우리/세상에 대하여

시집:처가...

주방보조 2007. 9. 27. 12:57

추석날

토란국으로 점심을 먹으면서

딸들에게 농담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희들은 나중에 시집가면 명절에 친정 오려고 애쓰지 마라.

명절에는 시집 일에 충실해야 하느니라.'

물론 이런 말을 듣고 가만있으면 불효녀로 비췰까봐선지 진실이가 툭 나섭니다.

'싫어요. 엄마 아빠한테 꼭 올거예요'

나실이는 무뚝뚝한 표정을 약간 찌푸리며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 겁니까?라는 표정을 지었고

원경이는 마치 자기는 시집을 안 갈 것처럼 아비의 말을 못들은 체 딴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럴 경우 장차 친정 아버지가 될 제 입장에선

딸들이 기특하고 이쁘게 보이는 것이 당연지사이니...속마음으론 흐뭇한 미소가 흐른다는 말이지요.

그래도

다짐하듯이, 마치 시집가는 날 가위나 칼을 손에 쥐어 주며 이제 우리와 너는 인연을 끊은 것이다 라는 비장한 교훈을 전하는 옛 아버지처럼 비장하게 말했습니다.

'안 된다. 오지마라, 귀찮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말을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대신 평소에 자주 와라'

유감스럽게 저의 이 마지막 말은 안 된다고 한 말 때문에 딸들이 웅성웅성?하고 발끈?하고 하는 바람에 제대로 듣지를 못한 것 같았습니다.

 

...

 

오늘 신문을 보니

시집에 먼저 갈 것인지 친정에 먼저갈 것인지를 놓고 부부간에 말다툼을 하다가

술에 취한 김에 남편되시는 분이 17층 아파트에서 '너 혼자 잘 살아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신 채 떨어져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저희 부부에게는 없는 일이 저들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저희는 어머니께서 메국으로 가셔서 시민이 되어 누님과 함께 사시므로 명절이 되어도 전화 한통 줄 서서 받으면 그것으로 족하고

마눌님 친정이라야 한강 다리만 건너면 바로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니

갈곳이란곤 한군데 뿐이요 가봐야 걸어서도 5천보정도 밖에 안되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사는 택이지요.

복이 없어 어머니를 멀리 두고 사는 저희가 오히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주는 편안함으로 어찌보면 저들보다 행복한 조건을 갖게 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옛날 대가족 시절엔 아예 친정으로 가는 길이 막혔었으므로 오히려 이런 갈등은 없었을 것입니다. 행복하지는 못해도 평안하였을 수는 있겠다 싶구요.

핵가족이 되면서...그리고 남녀간에 기울기가 많이 평등화되어 가면서...이런 갈등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명절 후 이혼증가라든가...가정폭력의 상당부분이 이런 문제때문이라든가...급기야 죽음으로라도 말하려하는...

 

...

 

이젠 앞으로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 것같습니다.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느니...평소 자주 못 볼지라도... 명절엔 처가에 가서 즐겁게 지내라' 

 

...

 

가족의 개념이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게 바뀌어 가는데

우리의 전통은 참 더디게 변해가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그 갈등을 잠잠케 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진리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수도 사랑하라"

 

어찌 처가에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가족이 아니며

어찌 시집과 성이 다르다고 가족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둘이 한 몸을 이룬 부부가 어찌 원수가 될 수 있겠습니까?

 

...

 

마눌이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명절이 되면 시집 장가간 아이들 아예 오지 못하게 둘만...어디 조용한 바닷가로 여행이나 가야겠습니다.

 

혹 압니까.

며느리들과 사위들이 ...정말 멋쟁이 시아버님이고 장인이라고 ...떡 하나 더 줄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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