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천재화가 김충신...^^

주방보조 2004. 10. 19. 02:33

국민학교 1학년때

교회를 가는 길에 있던 대전 선화동 사거리에 교통순경을 그린 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도화지만 있고 준비물이 부실해서^^검정 크레용만 있었거든요.

그래서 

비오는 날 네거리의 순경...그림은 오로지 검은 색으로만 죽죽 내려 그은..거의 검은 도화지가 되었습니다.

 

저는 참 잘그렸다고 생각했는데 뒤 게시판에 전시가 되지 않았고

그 그림을 집에 가져온 저는 식구들에게 한참 설명을 했었더랬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는 배꼽을 잡았었고...그 옛날 일을 아직도...잊힐만 하면 꺼내어 제 기를 팍팍 꺽어 대시곤 합니다^^

 

...

 

그런데

저의 아들 충신이도 이번에 비슷한 경우를 당하였습니다.

5학년이나 된 녀석인데 말입니다.

  

지난주였지요.

준비물로 붓펜을 사달라 하였습니다.

미술준비라는데 붓펜만 준비하면 된다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요즘 녀석을 믿어주자...하는 분위기이므로^^캐묻지 않고 돈을 주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우리 장남은

그 붓펜으로 그린 그림을 제게 보여주면서

자기 그림이 반에서 제일 잘 그린 그림이라고...흥선 대원군의 '난' 그림과 비슷하다고 떠벌여 대었습니다^^

 

흠 ...

물론 흰도화지를 검정 도화지로 만들던 제 눈으로 보아서야 무얼 알겠습니까마는

'그래 그럴듯하다, 흥선대원군 '난' 그림과 비슷한 것같다'고 일단 부추겨 주었습니다.

 

제2의 하나님이라고 자처하는^^ 아버지의 지지를 받은 이녀석 ...신이났습니다.

 

A4용지를 몇장 뽑아가더니 , 예의 그 비슷한 그림을 그려대기 시작하였습니다.

빛나는 눈, 자랑스런 표정, 스스로 내뱉는 감탄을 여러번 하고 제게 동의를 구하였고...저는 그때마다 그래 잘그렸구나...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냉장고에도 한장 붙이고, 자기 책상 앞에도 한장 붙이고. 그리고 저녁 늦게 운동을 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현관 앞에도 테이프로 턱하니 한장 붙여 놓았더군요.

엇 뜨거라 하며^^

제가 떼어서 냉장고 에 한장 더 붙이면서...남에게 자랑하려 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한마디 교훈을 하기도 했답니다.

 

집안 여기저기에 흥선대원군^^아류의 난그림이 향기를 토해 냈지요^^

 

...

 

그런데...

사고가 생겼습니다.

다음날 학교 뒤 게시판에 충신이의 작품만 빠지고...만 것입니다.

어떤 아이가 뒤늦게 작품을 만들어 냈는데

선생님이 잔혹하게도^^...충신이의 작품을 떼어버리고...그 아이의 작품을 붙여 놓은 것입니다.

선생님 왈 충신이가 양보해라...였다니, 이녀석이 아마 열받아서 따지기도 하였나 봅니다.

 

다른아이들은 붓펜이 아니라 여러 색조로 그림을 그렸고

충신이만 붓펜으로 난을 그린다며 직직거려 놓았으니...게시판에 어울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연습장을 북 찢어 만든 것이니..오죽했겠습니까?

 

풀이 푹 죽어 집에 들어오자마자 자기의 작품만 게시판에서 떼어졌다며 이상해 하는 녀석을 보고...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자기 딴에는 대단한 작품을 그렸는데...아이들이야 그렇다고 해도 선생님마저 알아주질 않다니 말입니다. 

 

...

 

녀석을 위로할 방법이 달리 생각나는 것이 없어서...다음과 같이 말해주었습니다.

 

"충신아 잘 들어라,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네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네가 천재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책을 많이 읽는 녀석이니 고흐를 생각했을 수도 있잖겠습니까?

 

엄마는 너무했다며 속상해 했고

누나들도 아무리 못그렸어도 어떻게 네것만 뺄 수 있냐며 분개했고

원경이는 아빠의 오빠가 천재일지 모른다는 말에 동의를 표했고

교신이는 무조건 형의 그림을 잘그렸다고 편들어주었습니다.

 

...

 

게시판에서 짤리는 것은 아빠를 안 닮아도 되는데...닮은 것을 어쩜니까?

 

그래도 저는 미술엔 젬뱅이?라는 놀림감으로 자랐지만

이 녀석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며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

 

기가 조금 살아난 이 녀석이 스스로 찍은 작품입니다.^^

흥선대원군의 작품과 비교해 보십시오^^ㅋㅋㅋ

 

충신그림

 

 

 

 

  • 주방보조2004.10.19 03:22

    아마
    반에서 제일 키가 큰 녀석이니
    마음도 제일 넓을 줄 알고
    선생님이 그리하셨으리라 짐작합니다.

    ...

    선생님 하시기 참 힘든다...그런 생각도 하였습니다.^^

    답글
  • sunny2004.10.19 03:40 신고

    흠,
    그림을 평하노라....충신아,
    멋부리기를 좋아하는구나
    좀 섬세한 점도 있구나,
    그런데 다 그려놓은 것은 란이 아니라 파(파 중에서도 대파)와 비슷하구나.
    그것은 네 마음이 아직 란을 그려내는 활기를 다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란의 선이 어디로 향해 가야 하는지를 배워보도록 하여라.
    그리고, 아빠 말씀대로, 그냥 노트를 찢어내어서는, 란의 품격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단다.
    란에게 있어서는, 엉긴듯 성기면서 늘씬한 자태와 기대어 줄만한 바위가 제격이고, 넓은 공간이 어우러져야 그 맛이 난단다.
    그리고 란을 겨우 한 번 치고서 (아, 집에서도 여러번 쳤었지!) 그냥 그만두면 안되고, 살면서 계속해서 먹을 갈고, 붓을 가다듬으면서 쳐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잘 쳐 놓았다고 하는 란 그림을 여러 번 감상해 보기를 바란다. 란도 쳐보고, 대나무(죽)도 쳐보고, 매(매화)도 쳐보고 하면서 너의 개성이 어디에 맞는지도 짐작해보면 더욱 좋겠고.....
    미적인 감각이라는 것은 수많은 세월 연습을 통해서만 개발되는 것이다. 한 번 쳐서 그려내는 천재는 쉽게 사그러지게 마련이고, 자기만족에 빠져서, 자기계발을 게을리하기 십상이다. 노력하는 사람이 되길....
    청랑

    답글
  • 주방보조2004.10.19 03:51

    파...하하^^

    충신이에게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한번 쳐서 그려내는 천재는 쉽게 사그러지기 마련"...이란 말씀 꼬~ㄱ기억하게 강조하겠구요^^

    ...

    파가 "백합과의 풀"이라는 것...설명해 주면 좀 기분이 더 나아지겠지요?^^

    답글
  • 쌍그아부이2004.10.19 05:25 신고

    난 좀 짧게 한 마디....

    둔재의 눈에도
    천재의 재질이 엿보이는구나 충신아.^^

    답글
  • 푼수2004.10.19 05:54 신고

    미술시간..
    저에겐 참으로 고통스런 시간이었었는데요^^

    실기점수가..
    80점을 넘은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딱 한번 있었는데..

    인물화 모델이 되어서..
    A(90)점을 받은 적이 있었죠.. ^^

    중학교 모교가면.. 아직도 그 그림이 있을런지..
    3:7 가름마의 대학생같아 보이는 중2학생의 노숙한 얼굴.. ^^

    충신이가 저보다는 훨씬더 전망이 있어 보입니다.. ^^

    답글
  • 머슴2004.10.19 06:34 신고

    참 잘그린것입니다.
    5학년에 남자아이라 생각해보십시요.
    가능성이 보입니다.
    그 정도면 중학교에 들어가서 실기점수 걱정없겠어여..두고보세여..?
    충신아 아주잘그렸다..

    답글
  • 김순옥2004.10.19 06:55 신고

    그림은 잘 모르지만 잘 그렸습니다.
    저희집 식구들에 비하면...
    저희집은 부부가 그림은 젬병이니 두 아들들 오죽하겠습니까?
    남들은 미술학원이다 보내기도 하던데
    저는 뭐든 다 잘 할 수는 없다 이겁니다.
    설령 실기점수 좀 덜 맞더라도 그냥 가자는 것이지요.
    스스로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작은놈 2학년때인가 상도 탔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이제 탈만한 사람은 타서 한빛이 차례가 되었다'구요.
    선생님의 솔직한 말씀에도 저는 즐거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자가 인정하는 사항이니까요.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한다면 되는거지요 뭐.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뿐...



    답글
  • 이요조2004.10.19 09:00 신고

    ㅋㅎㅎㅎㅎ
    난 그리기도 붓놀림에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제가 보니..있을 건 다 있는데요.

    鳳眼도 있고....제 나름대로 난꺾어짐도 넣고 붓끝을 쭉 빼서 난을 치려는
    그 마음새 신통합니다.

    이럴 때..가르쳐야하는 거 아닌가요?
    난을 치고 싶을 때....동양화를 하신 선생님이 운영하는 서예반에다가...
    한 달 간만이라도...

    참...난 그리는 법..웹상에 자료가 있는지..제가 알아 볼께요..지금,

    답글
  • malmiama2004.10.19 09:01 신고

    형식을 따지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선생님도...
    도화지,물감,그림에 있어 기본 구성..등등.

    그런 걸 배우는 과정 정도가 초딩 미술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일찌감치 형식을 벗어난 천재성을 보여 파격적인 면을 보인
    충신이에게는 섭함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은 미술을 할 때... 충신이는
    예술을 한 것입니다... 예술가는요, 대부분 '따' 당합니다.^^

    그림에서 자질이 보이는데요.
    기상이 보이는 가운데 꺽인 난 하나가 난을 그릴 때의
    기본을 일거에 해소했습니다. (사군자를 배운 너구리가^^)

    답글
  • 잔느2004.10.19 10:23 신고

    충신이 상심이 정말 컸겠네요. ^^
    미술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제가 봐도
    잘 그린것 같은데..
    난 옆에 장식처럼 그려진 꽃잎은 난꽃인가요? ^^
    여하간.. 기발하고 독특한 녀석.. 충신이~
    예술가적 기질이 있는게 맞을거예요.

    답글
  • 주방보조2004.10.19 13:50

    위로의 말씀들!

    참으로 감사합니다.^^

    ...

    충신이 이넘이 너무 기가 살면...온집이 백합과 식물^^그림으로 도배가 될텐데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만...

    직접 여러분의 격려말씀을 읽히고...소감을 적어 올리도록...해보겠습니다.

    ...

    ^^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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