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이가 시를 지었습니다.
자기 딴에는 자못 심각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멋진 시였구요^^
오빠와 언니들과 엄마는 그 시를 읽으면서 벼라별 이야기와 함께 웃어대었습니다.
은행나무: 3연6행
김원경
나뭇잎과 가지와 열매가
서로 싸운다
그들은 서로 "내가 잘났어"
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중에 겨울이 되면
은행나무는 가지만 남지
모두들 이 심각한 시를 보면서...웃기는 시라고 단정지은 것도 정말 웃기지만
호박잎과 줄기와 호박이 서로 싸운다 해도 되겠네...킬킬킬
포도잎과 가지와 포도도 싸우겠네...깔깔깔..웃어대는 것도 지쳐갈무렵
충신이가 원경이의 시 옆에
정말 의미있는^^ 시라고 개발괴발 갈겨놓은 시를 내놓았습니다.
이 녀석의 시는 참 거시키 합니다만 그래도 평소 안하던 짓을 한지라...
옮겨놓아 봅니다.
양말
김모씨(창피한줄은 알아서 가명을 썼더라구요^^)
고린내, 발냄새가 나는 양말들
큰 누나 양말은 개가죽
원경이 양말은 딸기
내 양말은 흰색
작은 누나 양말은 꽃무늬
엄마 아빠 양말은 줄무늬
교신이 양말은 해삼무늬 양말
각양 각색의 양말들
뜻: 각자에게는 개성이 있다는 뜻
이거 붙잡고 다들 한마디씩 했지요.
왜 딸기냐 왜 해삼무늬냐등...그,리고 동생들 시쓴다고 꼴값떠는 와중에
세계사책을 점잖게 읽고 있던 진실이는 ...야 왜 개가죽이야 응?하며 약간 열을 냈구요.
그때
웃으면서도 뭔가를 끄적대던 나실이가 두편의 시를 내놓았습니다.
시란 이렇게 쓰는거야...그러면서
구멍
김나실
바지에 구멍이 났다
동그랗게 뚫어졌다
내 마음에도 구멍이 뚫린 듯
동그란 구멍을 실로 메꾼다
엄마의 사랑을
가득 담아서
어머니
김나실
요즘 엄마는
손에 잔주름이 없다.
매일 스킨케어를 해주기 때문이다.
요즘 엄마는
눈가에 주름도 없다
자기몸을 지극히 아끼기 때문이다.
요즘 엄마는
인자한 미소가 없다
세상이 각박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립다
요즘 엄마들같이 예쁘지는 않지만
손에 잔주름있고
눈가에 주름이 있고
인자한 미소가 있는
우리를 위한 엄마가 그립다.
...
아^^ 대단한 시회였습니다.
원경이의 시로 시작해서 나실이의 시로 끝난 사이에도 구전될 수 밖에 없을 시들이 아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왔고....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웃음으로 날려보낸 수많은 시들이 떠돌았지요.
좀 떨어져서 이것저것 줏어먹고 있던 저는 아이들의 시에 대한 총평(구전될 시는 빼고 종이에 기록된 것만 보고)을 해 주었습니다.
원경이는 왜 그것들이 서로 다투는 것으로 보았는지...걱정되고
충신이는 언제까지 그런 시만 지어댈지...걱정되고
나실이는 좀 더 단어를 생각해서 깊이있게 만들 나이가 되지 않았느냐고...
...
음...
아내는
나실이의 두번째 시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얘가 나를 정말 이렇게 생각하나봐요. 난 나름대로 참 힘들게 살면서 자기들을 많이 사랑해 주지 못해서 얼마나 미안한데..."
마침 몸이 아파서 눈물을 흘리며 누워있었는데
그시는 칼날처럼 아내의 마음을 파고들었던 것같습니다.
"요즘 내가 그렇단 말이지...휴"
...
나실이에게 제가 엄마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네 시가 네 엄마를 많이 더 힘들게 한 것같다고
나실이는 펄쩍 뛰었지요.
그게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요즘 엄마'가 '요즘 우리엄마가'가 아니라고
그리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에게 가서 펑펑 울면서...자기 시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죄송하다고...설명을 했고
엄마는 (들리는 말에 의하면^^) 나실이 손을 꼭 잡고 ..괜찮다고 너 때문에 아픈 것아니라고...하며
같이 울었다는...
...
엉터리같은 시들이었지만
시란 것이 얼마나 인간을
"웃게도 만들고 "울게도 만드는" 지 정말 잘보여주었다...할만 하지 않습니까?^^
시인들이 많은 ... 이 칼럼에 내놓을 만한 것은 아닌지 알지만...ㅋㅋㅋ...알게뭡니까?
시인들의 시들중에...이토록 신나게 웃고 ... 열심히 울게한 시 몇편이나 되겠습니까?ㅎㅎ
-
저는 시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 쓸 줄도 모른답니다.
답글
나무가 왜 싸운다고 생각했을까 싶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실이는 의미있게 쓰는구나 싶었습니다.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는 게 시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희집 작은놈은 가르치지 않아고 글 쓰는 스타일이 저랑 비슷하답니다.
좀 논리적으로 쓰는 식이지요.
일기든 시든 그래서 저는 걱정이 됩니다.
좀 더 순수한 시각으로 접근해 줬으면 싶은데 그것이 잘 안되더라구요.
그렇다고 억지로 지시하거나 지도하지는 않는답니다.
참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가시는 김원필님 가정이 좋아 보입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칠스트레일리아 > 다섯아이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신이의 답변...^^ (0) | 2004.10.20 |
---|---|
천재화가 김충신...^^ (0) | 2004.10.19 |
그 길을 가다... (0) | 2004.09.25 |
아이들 매질에 대한...**글^^ (0) | 2004.09.22 |
울보... (0) | 2004.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