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아들, 아비를 협박하다!

주방보조 2007. 2. 24. 00:57

수요일 저녁은 거의 격주로 외식을 합니다.
집 건너편에 있는 칼국수집인데...싸고 양도 많고 맛도 괜찮습니다.

오늘도 수요 저녁예배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지난 주엔 나실이가 반대를 해서 집에 가 짜장면을 시켜 먹었기 때문에 이번엔 아이들이 안 간다 하면 마눌과 저 둘만이라도 가자고 미리 이야기가 되었었습니다.
오늘도 역시 나실이가 반대했습니다. 진실이와 원경이가 동조를 했고 딸 셋은 집으로 가서 알아서 저녁을 해 먹으라 하고
충신과 교신, 아들 둘만 데리고 칼국수집으로 갔습니다.

나실이를 비롯한 반역^^세력이 등장하게 된 것은...'거침없이 하이킥'을 보아야겠다는 의지의 발현때문입니다. 칼국수집에선 그 시트콤을 다른 손님들 때문에 제대로 보기 힘들거든요. 눈이 나쁜 나실이는 티비 가까이 가야하는데 그것이 좀 곤란하지요.

충신이가 자기는 먹는 것이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며 우리를 따라 나섰고, 교신이는 그런 형을 따라서 우리편에 붙은 것입니다.

...

식구가 줄었으므로 
그리고 편이 갈리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를 따라나선 녀석들이 기특하여 만두도 한접시 시켜 먹었습니다.
그리고 얼큰탕이 나오기까지 잠시 뜸이 있었는데 그때 최진실, 성현아가 나오는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착한 여자 나쁜 여자'인가?
마눌왈 저거 아이들 보면 안되는 드라마잖아요?라고 말을 하였고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충신이 왈 "요즘 드라마는 전부 불륜이나 이혼하는 이야기들이예요" 하니
교신이 덧붙여 한마디 하였습니다. "아빠 주무실때 저두 보았는데요 전부 골치아픈 사이들이었어요"...허거걱~~~

그래서 제가 충신이를 보며 그래도 저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은 너같이 여자를 마구 바꿔대지는 않잖아 하며 ...녀석의 작년에 몇번 걸렸던 음란사이트 사건들을 은근히 떠 올리게 하였습니다. 하두 자기는 점잖은 척 말하는 것이 꼴 사나워보여서요^^

...

그 순간
녀석의 눈빛이 흐리멍텅에서 별안간 예리한 빛을 뿜어 대더니
자기 엄마를 슬쩍 보는 여유까지 부리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버지 또 그 (문근영등등이 관련된^^)이야기 하려고 하시는 거죠?
그렇다 임마
그럼 저도 가만 있지 않겠어요
그래 가만 있지 않으면?
저도 할머니에게 들은 아버지의 과거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폭로하겠어요!!!

아내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충신이에게 '그래 할머니가 네게 뭐라 하시든?' 묻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버렸지요.

...

아들놈의 공갈 협박에 ...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얼큰탕이 나왔으므로 ...^^

...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일곱 식구를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갑작스런 호출에 무슨 일이예요? 물으며 딸들과 아내가 합류했고...제가 정식으로 제안을 했습니다.

"자....내가 오늘 저녁을 먹기 전에 맏아들놈에게 협박을 당했다.
이 놈이 할머니에게 들은 옛날 아버지의 여자친구 관련 비리를 폭로하겠다 한다니 ... 모두 모인 곳에서 들어보도록 하자."

깜짝 놀란 아들놈이 약간 기가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식사할 때까지 잠잠하여 자신의 승리를 만끽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되었으며...
누나들이 '아니 네 놈이 아버지를 협박을 해?' 하며 눈을 부라렸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실이의 공포스런 인상에...녀석의 간담이 서늘해졌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럼 이야기하겠다고 녀석이 입을 떼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아버지가 제가 김선우라는 1,2학년때 여자짝꿍에게 당한 일을 가지고 놀린다는 말을 들으시고 제게 비밀을 하나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게 4학년때 쯤인데..."
"아버지도 여자친구에게서 온 편지 뜯어봤다고 한달동안이나 식구들과 말도 안하고 지낸 적이 있었다고..."

나실이가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야! 그게 무슨 대단한 비밀이냐? 그걸 갖고 어떻게 자식이 아버지를 협박하냐?"
마눌은 "한달이나 말을 안하고 어떻게 살았어요?ㅎㅎㅎ"하였고
진실 원경 모두 나실이에게 동조하는 분위기...

...

풀 죽은 녀석을 곁눈질 하며^^
제가 조근조근 모두에게 그 일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습니다.
할머니와 고모가 추 아무개 집사님 아들 유 아무개가 내게 보낸 편지를 뜯어보았었다.
거기엔 성탄절에 찍은 사진들이 들어있었고, 그 녀석의 편지도 들어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편지를 보지도 못했고 글을 읽지도, 사진을 보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나에게 그 편지를 뜯어 본 것을 들키면 성질부릴 것을 두려워 한... 간 큰 할머니와 고모가 그것들을 통채로 쓰레기통에 버려버렸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 녀석에게 사진이 든 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할머니를 추궁하는 중에 겨우 그 사건의 전말을 알아낸 것이었다. 나는 그 편지와 사진을 없애버린 그 행동이 너무 속상해서 한달하고 열흘정도 말을 하지 않고 살았던 것이다.
알겠느냐?
이것하고 네 놈이 협박하여 내 입을 다물게 하려고 한 것은 비교할 것이 안된다.

그리고
아비가 혹 비밀스러운 잘못을 했다고 치자.
아들이 그것을 빌미로 아비를 위협하고 공갈을 쳐 대면 되겠느냐? 노아의 아들 함처럼 되려느냐?

...

아들은 고개를 숙였고...
딸들은 '나라도 화가 났을 거예요'...라며 제 편을 들어주었고
마눌은 '나도 여자친구편지인줄 알고 있었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울 엄마 언제 마눌에게까지 그 이야기를 했나보네...속으로 생각했지요.
특히 나실이는...저 놈이 나에 대해서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닌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몸무게 이야기, 화장실 이야기등등...나아쁜 넘~~~하면서

크하하하...
우리 맏아들의 강력한 무기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풀이 팍 죽은 것을 보니 아까 칼국수집에서 녀석의 자신만만하던 표정이 생각나서 ...너무 재미있는 거 있죠^^

...

그러면서 한가지 생각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진짜 약점 잡힐 일을 하게 되면...자식들은 얼마나 악해질 수 있을까...하는 생각...

자식들에게 약점없는 부모가 되는 일...쉽진 않겠지만, 자녀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과업이라 생각했습니다.

 

 

 

 

 

 

  • 알 수 없는 사용자2007.02.24 07:32 신고

    충신이가 궁지에 몰렸군요.ㅎㅎㅎ
    충신이가 제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약점이 좀 있어도^^ 결국엔 아빠편이 되더군요.
    울집 아이들 말이예요.
    요즘엔 저를 따돌리고 아빠와 속닥속닥... 문자도 오가고...
    사건이 종료되고서 남편에게 나중에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그게 싫지 않더라구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충신이가 아빠의 충성스런 아들이 될거니까요.^^

    답글
    • 주방보조2007.02.24 17:15

      말집사님이야 친화력이 뛰어나시니까...친근하면서 엄한 아버지가 가능하실거예요.
      아들들이 땡잡은 것이죠^^
      우리 아들들은 아직 어리니까 두고 볼 일이지만 말집사님만큼 잘할 자신은 없어요.
      그냥 사고안치게 막는 일이 제가 허덕이면서 겨우 할만한 일이죠.
      충신이 녀석이 얼마나 은근히...들이대는데요. ㅎㅎ

      우리집 마눌님은...은근히 저와 충신이의 대결을 즐기시고요^^

  • 김순옥2007.02.24 08:10 신고

    ㅎㅎㅎ
    기가 꺾였을 충신이를 생각하니 측은하군요.
    누나들의 만만치 않은 공세까지 곁들여 앞으로 얼마간은 근신할 것 같죠?
    아이들이 많아서 있을법한 이야기들이기도 합니다.
    지나고보면 별 게 아닐 수 있지만 그때는 심각하고 비밀스러웠던 이야기
    한 둘 쯤은 누구든 갖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 약점을 이용해서 협박을 하는 건 어떤 의미로든 비겁한 행동이 될 것입니다.
    충신이보다 앞서 아버님께서 충신이게게 사과도 하셔야 되지 않나요?
    먼저 시작한 쪽은 아빠가 되시잖아요 ㅎㅎㅎ

    답글
    • 주방보조2007.02.24 17:25

      1학년때 첫 짝꿍이 2학년때도 짝궁이 되었는데...그 아이가 충신이와 짝궁이 되자 충신이는 너무나 기뻤는데 엉엉 울었다는...
      그리고는 얼마후 바로 곁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버렸다는...전설이 있는데
      제가 심심하면 꺼내쓰는 카드였거든요^^
      녀석이 이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벌개지는 것이 재미있어서 놀려대곤 했는데...할머니에게 이르고 그래서 그만뒀었지요^^ 물론 사과도 했었구요. 손자아끼는 어머니 마음을 헤아려서리...

      저도 좀 심통이 있었지만...이번엔 녀석이 좀 오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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