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사실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워낙 없었는데다 ...
서울 시내의 웬만한 곳은 자전거로 다 커버하게 되었고...
원경이와 교신이가 부쩍 자라면서 일곱식구가 한꺼번에 탈 수 없어 꼭 한 두 사람 떨어뜨려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거든요.
그래서
우리의 오랜 친구 은빛 현대 엑센트는 언제나 그 자리에 가엾은 뒷 모습을 우리 쪽으로 돌려댄 채 꾸구려 앉아 있는 신세가 되었었습니다.
라디오와 카세트는 이미 오래전에 망가져 있었고
뒷 범퍼는 페인트가 벗겨져 절반은 검은 반점으로 추했고
유리창을 올리고 내리는 일이 중노동이 되었으며 뒷 문짝들은 열고 닫을 때마다 삐거덕 소리가 요란했지만 그런 것은 우리집 가풍상 그리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여름 오랜만에 경포대로 원경 교신 둘만 데리고 다녀올 때 느꼈던 불안감...핸들이 약간 왼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달여 뒤 추석에 안산의 은사님을 방문하기 위해서 아이들 다섯을 태우고 차를 출발시키는 순간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몇개월씩 운행을 안하면서 생긴 현상인지 모르겠으나 똑바로 가기 위해서는 힘겹게 핸들을 잡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게다가 핸들이 손에서 툭툭 튀듯이 움직여 진땀을 흘리며 돌아온 뒤 바로 다음날 카센타에 차를 맡겼습니다.
차를 검사해 본 기사님은 큰 사고가 있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되지 않을텐데 하시며
자신이 조금 손을 봐 놓았으나 이것저것 바꾸어야 한다고, 제가 들어봐야 알아먹지도 못할 부품들을 서너개 나열하셨습니다.
그래서 고심끝에...
위에 언급한 여러가지 이유를 더하여
폐차를 결정했습니다.
94년부터 만으로 12년을 넘게 탔으니 오래되기도 했지요.
다만 4만2천킬로라는 주행거리가 말해 주듯이 ... 그리 많이 다니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
일단 폐차가 결정된 후엔
추석때 꽉 채워 놓았던 휘발유를 빼서 이웃에게 주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해 보았으나 넣기는 쉬워도 빼기는 어렵게 되어 있는지...실패하고
할 수 없이
성수동 이마트를 거의 매일 저녁마다 아이들 싣고 다니며 쇼핑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는데...그래봐야 1/5도 쓰지 못했습니다.
...
이마트를 다녀오는 차안에서
원경이는 자신이 평생 용돈을 받지 않을테니 폐차하지 말라고 여러번 당부를 하였고
교신이도 자신의 용돈 천원을 줄테니 고쳐서 쓰기를 제게 제안했습니다.^^
아내나 큰 녀석들은 이미 우리 차가 처한 형편이 어떤 것인줄 알기에 ... 폐차하는 것이 너무나 섭섭하지만 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였지요.
폐차 이틀전 무척 추웠는데 한 밤에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한강으로 나가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송별식으로...진실이가 이마트 주차장에서 새로 산 모자를 잃어버린 것때문에 촬영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옥의 티 하나 남긴 송별식이었습니다.
...
세째인 충신이를 낳고 명절 때나 교회갈 때나 택시 잡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리고 차없는 집인 우리만 빼고 ... 처가식구들이 놀러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구두쇠 주제에...오직 에어컨 하나만 달고 시계도 붙이지 않은 520만원 주고 산 은빛 엑센트를
운전 잘하는 친구와 함께 울산에 내려가서 직접 차를 받아 끌고 올라왔었지요.
회사 출퇴근용으로도 쓰다가 어느날부터 전철이 더 경제적이란 생각으로...나들이용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일년에 한두번 일곱식구가 경포대나 서해 대부도등을 갈 때면...얼마나 씨끌벅적 웃고 노래하고 까불고 다녔었던지...
사고 한번 없이 침 순하게 잘 다녀줘서...우리 차가 참 좋은 차라고 우리들이 입을 모아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차였습니다.
...
폐차하는 날
견인차가 와서 우리 엑센트를 싣고 가는데...우리 차 앞이 쇠사슬에 묶이고 덜컹 들려 올라가는 순간 제 가슴 한편이 툭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왔습니다. ...그리고 가슴이 그렇게 아팠습니다.
미안하고...뭔가 잘못한 것같고...용서를 받아야할 무 엇인가가 있는 것같아...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참 슬픈 이별...이었습니다.
이별이...슬픈 것임을 알지 못한 적이 없건마는...ㅠㅠ
-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듯.....차도..?
답글
아쉽긴 하지만 너무 차에게 미안해하고 슬퍼하진 마시길...
사고 한 번 없이 살만큼 살았는데요. 뭐.^^
폐차라 하지만 이후, 분해되어서 두루 잘 쓰이겠지요. -
12년 지났는데 5만 킬로도 안 타셨다니..
답글
그저 놀라움...
그런데도 폐차를 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니 이해가 잘 안갑니다.
너무 세워만 두니 모든 부속이 놀이 슬었나??
좀 아깝네요.. -
진짜 차가 착하게 생겼습니다. 주인을 닮아서 그렀습니까? ㅋㅋ
답글
하긴, 서울 시내는 차가 없는 것이 심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더 경제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쩜님도 참... 안 그러신것 같으면서도 가끔 엄청 여린 구석을 보는 것 같아서...^^ -
'차가 착하게 생겼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ㅎㅎㅎ
답글
분명 노구는 맞는데 운동량은 형편없네요.
그러니 운동을 하든, 하지 않든 늙는 건 마찬가지다...뭐 그런 교훈을 남기는 것도 같구요.
저희 차가 96년산인데 20만을 훌쩍 넘었으니 엄청 많이 달렸지요?
얼마전에 마모되는 것들 대충 교체하고 씩씩하게 잘 달리고 있답니다.
아이들이 차랑 헤어지는 게 섭섭하군요.
하긴 자기들과 함께 살아왔으니 오죽하려구요.
좋은 기회에 더 멋진 선물이 기다리길 기원합니다.
하긴 그 정도의 기동량이라면 오히려 택시를 이용하시는 게 더 경제적일 것도 같네요.
감가상각을 하게 되면 전국 어느 곳을 택시로 움직여도 자가용보다 저렴하다는 말을
예전에 택시 기사님으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별식을 멋지게 치룬 차는 그래도 값진 생을 누린 셈인가요? -
아이구 섭해라. 원필님이랑 저랑 '차동지'였는데....
답글
제 차는 14년 된 엑센트인데 오늘 보니 7만 6천 달렸더군요.
차 상태를 보아하니... 제 것이 원필님 것 보다 쪼~~금 낫네요.ㅎㅎㅎ
제 차는 동네 악동이 그어 놓은 X 표를 비롯해 여기 저기 쫌 찍힌 자국이 있는 것과
차창의 비막이 챙 하나가 없어진 거,.. 그리고 차문 열 때 삐이~~꺽 거리는 거...
그리고 좀 치명적으로는...일단 열린 창문은 유리를 손으로 거머 쥐고 잡아 땡겨 올려댜 한다는 거...
뭐 이 정도 외에는 다 에쿠스나 렉서스 못지 않지요. ㅎㅎㅎ
주위의 저를 아끼는 모든 분들이 차좀 바꽈라~ 카는데
제 남편은 앞으로 5년은 더 탈 수 있다며
얼마 전에 <세차>하고 나타났더니 <새차> 같다며 좋아하더군요.
저도 이 차 폐차하게 된다면....
눈물 날 것 같아요~...
(그런데 원필님 표정연기... 끝내주네요.ㅎㅎㅎ) -
알 수 없는 사용자2007.01.14 08:53 신고
차가 병든 만큼 자전거로 온 가족이 건강해 졌으니
답글
주고 받은 셈이네요.
자전거를 못타는 제게는 제일 부러운 사항입니다.
그런데, 이별은 어떤 모습이던 슬프네요.
저도 쬐끔 눈물이 날 뻔 했어요.
그리고 원이님에게 동의 표 하나!
원필님 표정연기 말이죠. 정말 끝내주세요.^^ -
정말 아끼며 ? 모셔두었군요. ^^ 제 차와 이별할때 생각이 나네요.
답글
일동제약 이사인 우리 시동생도 그때 무렵에 액센트를 사서 아직도 타고 있습니다.
시동생은 안성으로 출퇴근을 하고 동서는 집 바로 앞에서 약국을 하고
교회도 바로 집 옆이라 차는 정말 나들이 용이라 차 상태는 별로 좋지 않을거예요.
여자가 몰던 차는 안산다는 이유가 속력을 내야할때 제대로 속력을 내지못하고 차 속을 모르며 타고 다녀서 그런다지요. 아무리 안 타도 일주일에 두어번은 시동을 걸어 주고 이용했어야 하는데...
집도 새집이라해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더 빨리 늙는다는데 철로 된 자동차야 오죽 하겠어요?
여자도 결혼 안하고 평생 독신으로 늙는 여자보다 아들딸 많이 낳고 힘들게 뒷바라지 하며 산 여자가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답니다. 그런 면에서 원필님 내외는 아주 오래 오래 장수해로 하실겁니다.^^
기념 사진 멋집니다.
'칠스트레일리아 > 다섯아이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세요 깨끗하잖아요? (0) | 2007.02.04 |
---|---|
순대먹기...^^ (0) | 2007.01.27 |
오늘... 아이들과 함께 (0) | 2007.01.11 |
막내가 사랑스러운 이유... (0) | 2007.01.06 |
2006년을 돌아봅니다^^ (0) | 2006.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