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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하는 법...추가:십일조

주방보조 2006. 9. 8. 00:01
 <제167호> 헌금하는 법...추가 2001년 09월 08일
제가 독자로 있는 한 칼럼에서 요즘 십일조에 대한 논의가 진행중입니다.
그곳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고...저도 십일조에 대한 견해를 정리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는 지식이 일천하여 학술적인 의견이 되지는 못할 것이지만 ... 보통의 그리스도인이 생각하는 상식적인 견해가 무엇인지는 파악하여 살필 수 있을 것입니다.

...

십일조는 모두가 다 잘아시는 것같이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노획물의 십분지일을 드리는 것으로부터 성경에 등장합니다.
야곱은 소유의 십일조를 드릴 것을 약속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율법에 여러가지 종류의 십일조가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 이후 이스라엘의 헌금제도로 정착되었을 것입니다.
이 십일조가 잘 걷혔느냐고 물으신다면...아마 잘 안걷혔던 것 같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말라기는 그 십일조가 얼마나 잘 안걷히는 지 ... 통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이 십일조를 잘하는 것을 자랑하는 바리새인들도 등장했고...예수님께서 급기야는 물질로서 드리는 십일조의 의미없음을 역설하시기도 하셨습니다.

...

초대교회는 어떠했는가에 대하여는 전혀 아는 지식이 없지만
주일을 안식일의 개념으로 적응해간 것같이 십일조도 자연스럽게 헌금제도의 하나로서 정착시켰을 것이라고 저는 추측합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교회성장의 밑거름으로 이 십일조제도를 꼽는분들이 많습니다. 교회의 재정적 독립과 팽창을 가능하게 했던 헌금제도였던 것이죠.

그리고 그런 순기능만큼이나 역기능도 많았던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이 "돈"이니까 말입니다.
어떻게 그 돈을 사용하느냐에서 많은 실패가 있어왔던 것입니다.

...

구약의 헌금제도인 십일조가...신약교회안에 도입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문제는 명칭과 제도에 있다기보다는 그것을 추구하는 정신의 차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갑시다.

십일조 바치기 싫으면 안바쳐도 됩니까?
당근입니다.
왜죠?
무슨 헌금이든 자발적인 것이 가장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모든 헌금이 다 그렇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억지로 바치는 것은 그것이 제아무리 많더라도 가치없는 헌금입니다.

...

저는
십일조를 드립니다.
대학1학년때 첫 과외비 받은 것으로 십일조를 떼고 비닐포장의 한자성경전서를 사고...했던 때로부터 지금까지 바리새인처럼^^한번도 빼놓지 않고 십일조를 해왔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내려받은...너무나 당연히 하는 것으로 알고 십일조를 드렸고
헌금이란 것이 전혀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것과 그러므로 강요되거나 세뇌되어서 하면 안된다는것을 알고나서도...기꺼이 소득의 십분의 일을 떼어 헌금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해합니다.
하나님이 고안하신 제도로서...나에겐 적절하게 드릴 수 있는 정도가 십일조라고...

...

십일조라는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견 동의하면서도 .. 그주장이 지나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도"라는 것은 "실제"앞에 서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구제든지 십일조든지 감사든지 건축이든지 월정이든지 주일연보든지...그 붙은 명칭이 주는 의미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만약 그것을 "율법주의적"으로 강요하고 드리지 않았을 때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면...그자체로 엄청난 범죄행위입니다.
잘못된 교회행위중에 ... 특히 십일조나 건축헌금과 관련되어 그런 범죄행위가 있는 것은 어느정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탐심이 빚어내는 죄일 뿐입니다.

...

십일조는 우리나라교회에 정착한 한가지 헌금방식입니다.
율법대로 살기 위해서 강요된 것이 아니라 ... 여러가지 헌금방식중 하나로서 도입된 것입니다.

...

정말 우리가 문제삼고 눈을 부릅떠야 하는 문제는
헌금제도가 무엇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그것이 전혀 자발적이고 사랑함으로 드려지고 있느냐와

그리고 그것이...올바르고 아름답고 선한 일에 적절하게 씌여지고 있느냐하는 것일 겝니다.

 

09/08 헌금...헌금 30
수개월 전에 제 칼럼에 올렸던 글인데, 참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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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자의 경우 헌금에 대해 대부분 갈등을 합니다. 초신자가 아니더라도
십일조 등 헌금에 대해 한두 번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많고 적음에 따라 체면 또는 기복과 연관하기도 하고, 불신하기도 합니다.
흔히 시험에 든다는 얘기를 할 때 교회의 각종 헌금이 한 몫을 합니다.

교회에서는 다양한 헌금을 요구합니다. 성경말씀에 근거했다고는 하나 성에 차진 않습니다.
십일조, 각종 절기헌금, 건축헌금(작정헌금), 수시 감사헌금, 선교헌금......
그 중 교회마다 필수로 되어있는 헌금은 십일조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지만 총 소득 중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 90%를 100%로 생각하고 생활함이 옳다고 가르칩니다.

십일조에 대한 말씀은 구약에만 나옵니다.
레위기(27:30~33)에서는 드리는 십일조의 종류로서 땅에서 나는곡류와 동물을 나열하였고,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으로 <성물>임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민수기(18:21~24)에서는 이스라엘의 십일조의 용도로서
성전에서 사역하는 레위인(= 교역자)을 위한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신명기(14:22~29)에서는 십일조의 목적은
<너에게 항상 하나님을 네 삶의 첫 자리에 두도록 가르치기 위한 것이니라>하고,
용도로서는 제사를 위함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매 3년 끝에
그해 소산의 십분의 일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용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율법이 생기기 전에도 아브라함 때에 십일조가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세오경에서 부터 정의되기 시작한 구약 율법시대 십일조는 모두 3종류인 셈입니다.
성전을 위해 1/10, 레위인을 위해 1/10, 그리고 3년마다 가난한 자를 위해 1/10.

다수 신학자들의 의견으로는 레위기와 민수기에서의 십일조는 같은 의미로,
신명기에서의 십일조는 다른 의미로 해석하며 이스라엘인은 연평균 23.3%의
헌금을 한 것을 정설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중동지방 사람들도 본래부터 십일조의 습관이 있었으며,
이스라엘의 레위인의 구성비는 약 1/12 이었다고 합니다.

신약에서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 것이므로 몸과 마음을 다 드리라고 가르칩니다.
어찌 보면 구약보다 더 부담(?)스럽습니다. 구약에서는 율법만 잘 지키면 구원을 받았는데,
신약에선 본질적 정신을 강조하기 때문에 사실 더 어렵습니다.

행위가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임이 분명합니다.
바른 헌금행위는 내 마음과 물질을 동시에 드려야함이 맞습니다.
십의 일조든 십의 삼조든 아니면, 카네기처럼 95%를 헌금으로 하든...
내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어야 함이 옳습니다.

액수와 관련해서 분명한 건 <본인이 가장 잘 안다>는 사실입니다.
양심에 부끄러운 십일조도 있을 것이고,
과부가 예수님께 바친 보잘것없는 헌금이지만 칭찬 받을 헌금도 있을 것입니다.



너구리

 

 

09/08 저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28
십일조든, 어떤 형태의 헌금종류이든,
물론,
그것이 구원과 관련이 있다든지,
축복이나 신앙의 척도는 아닙니다.

천주교는 영세를 받으면 의무금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헌금함이 명문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전혀 자발적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내야함과, 헌금이 쓰여지는 용도가
'올바르고 아름답고 선한일이 쓰여져야 함'이 옳다는 지적은 동감하는 바입니다.

09/08 십일조를 없애다니?? 26
십일조를 없애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군요. 하긴 교회를 없애고, 국가도 없애자는 사람도 있는데요. 뭘...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공감이 갑니다. 그러나 십일조의 부작용에 대하여 너무 민감한 나머지 십일조가 갖는 '제도적 의미'에 대하여 소홀히 생각한 결론은 아닐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십일조의 제도적 의미란, 내가 가진 모든 재물이 실상 내 것이 아니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이며, 청지기 일 뿐이다... 대강 이런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의미에는 무관심한 채, 자기들의 열심을 드러내는 수단으로서만 십일조를 이용했지만,

과부의 온전한 마음은 바로 이 헌금제도의 진정한 의미를 구현하는 것이었기에 주님이 칭찬하신 것은 아니었을까요?

저는, 십일조를 없애버리자고 주장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십일조의 본 뜻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로서 제가 생각하기로는, 십일조의 본 뜻을 제대로 살리는 방법은 십일조를 없앤다거나, 십일조 외의 다른 제도를 도입한다거나, 자기 마음에 내키는 대로 헌금하게 하는 것보다는 '십일조'를 '제대로' 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십일조를 제대로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이점이 쟁점이 되어야 하고 구체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마치 우리가 교회의 심각한 문제를 앞에 두고서 교회 다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교회의 본 모습,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위에 구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비록 자원하는 마음은 아닐지라도, 특히 성인이 되기 이전의 기독교인들에게 십일조를 '연습'시키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제도를 무시했을 때에 설사 약간의 죄책감이 들게 하더라도 말입니다.
적어도 자기 것 가운데 10분의 1은 자기 마음대로 해선 안되겠구나... 하는 것쯤은 배우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지기님이 지적하신 대로, 우리 한국교회는 십일조의 본 뜻을 성도들에게만 강요하고, 교회 자체에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온 것은 맞는 듯 합니다. (물론 제가 잘 몰라서일수도 있으나...)

그리고 아마... 누군가가 혹은 어느 교회가 그 본 뜻을 제대로 구현하고 싶어한다면, 그건 다시 역시 어떤 '제도'로서가 아니곤 곤란할 것입니다.... ^^

생각지 않게 긴 글을 올렸군요.


평안하시길...

유샛다운앳더라이네스

 

 09/18 Re:어차피 신이 다 가지는 것을.../정말 반갑습니다. 13
안티예수냐...안티교회냐는 차이가 좀 있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닙니다. 그것도 열심히 다니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 제 정체성을 규정지으라고 한다면 안티교회정도가 될 것입니다.
왜 안티입니까?...라고 물으시면
예수의 복음에 비추어...이상적이지 못한 것 정도가 아니라 너무 못미치므로 그렇다고 할 것입니다.

님의 안티가 된 동기도 저와 유사한 것 같습니다.
원필


: 우선 전 Anti입니다.
: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다니다 어느 순간 소위 타락했습니다.
:
: 십일조에 대해..
:
: 예전에 우스개 소리로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 목사 두분이 십일조에 대해 얘기하는 데 한 분이 잘 안 걷힌다고 투덜거리자 다분 분께서 100% 십일조가 걷힌다고 자랑하더군요.. 방법을 묻자 '교회로 들어오는 십일조는 미미하지만 주께서 이미 성도들에게 십일조를 받으시니 100%가 아니냐고.."
:
: 이 것이 진정한 십일조가 아닐까요?
:
: 제가 Anti가 된 이유중에 하나가 교회 내에서의 행동과 밖에서의 행동이 너무나 다른 분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훼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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