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예수와 안티예수

헌금하는 법

주방보조 2006. 9. 6. 07:32
<제165호> 헌금하는 법... 2001년 09월 06일
복음서의
가장 감동스러운 장면들은 대부분 여자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마리아의 수태고지...
옷깃을 한번 만져 병이 나은 혈루증여인...
눈물로 발에 입맞추던 죄인여자...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어 장사를 예비한 나사로의 누이 동생 마리아...
수로보니게 여인의 그 놀라운 통찰력...
물동이를 버려두고 달려가던 사마리아여인...
십자가아래의 어머니 마리아...
부활의 새벽에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주인공인
동전두닢의 주인공 가난한 과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눅21:3-4)

저는 이 장면이 대단히 감동스러운 장면중 하나라고 봅니다.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하는 것에 가난한 과부가 두렙돈을 헌금하는 것은 애초부터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것을 보기좋게 뒤엎어 버리셨습니다.
아마 이 말씀을 들은 이 가난한 과부는 ... 감동 그자체였을 것입니다.

뭐...그 감동을 함께 나누는 것도 좋겠지만^^
오늘은 헌금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자 합니다.

이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주님의 헌금에 대한 생각은 ... 철저히 절대적?인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 부자들은 이 가난한 과부보다 훨씬 큰돈을 넣었을 것이고 그것이 모든 사람에 이르면 그 금액의 차이라는 것은 비교꺼리도 되지 못할 만큼 클 것입니다.
또한 상대적?인 크기도 아닙니다.
즉 두렙돈:과부의 생활비=1입니다. 부자의 헌금:부자의 생활비=0.01이라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개별적인 비교에서는 과부가 월등 앞서겠지만 그것이 더해지면 100명의 부자가 되는 순간 그 크기는 같아지고 백명이 넘어서게 되면 오히려 부자들을 포함한 모두의 헌금이 더 커집니다.^^(아 딱딱한 산수입니다^^)

그럼 주님의 헌금에 대한 생각은 어디에 기준을 두고 있을까요?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전부"...여기에서 그 기준을 유추해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구차함이라는 것은 생활비가 얼마나 필요한 상황인가를 말해줍니다.
그것을 전부 헌금할 때 갈등이 있었겠습니까? 없었겠습니까?
왜 내가 헌금을 해야하는가? ... 먹을것도 없는데 무슨 헌금이란 말인가? ... 저 부자들이 하는 것으로도 넉넉하여 넘치는데 내가 하는 헌금이 하나님께 무슨 소용이 된단 말인가?...대제사장들 그들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는 데 헌금할 가치도 없는 것은 아닐까?...저는 이런 저런 갈등이 그녀의 마음속에 구름처럼 피어올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정확하게 기록된 내용이 아니지만...그러므로 제 상상이지만...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 어떤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갈등을 넘어서서 그녀로 하여금 헌금을 드리게 한 것...그것도 생활비 전부를 ...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 외에 그 무엇으로도 답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 어땠겠습니까?
"풍족한 중에 헌금을 넣었"기 때문에 그 헌금하는 돈에 별다른 갈등이 없었을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내는 헌금입니다.
거기에 무슨 고뇌와 갈등과 번민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있었겠습니까?

저는 우리나라 교회의 대부분이 성도들은 ... 갈등없이 돈내는 데 익숙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헌금이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냐를 떠나서
별로 갈등하지 않고 돈을 내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갈등없이 헌금을 척척해야...믿음이 좋은 것이라고 가르치고 배워왔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십시오...진실로...

우리가 드리는 "갈등없는 헌금"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비롯되어 드려지는 것인지...

갈등과 극복의 과정을 거치는 헌금과
그 어떤 "생각"도 없이 드려지는 헌금은

애초부터 그 가치의 차이가 비교되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헌금의 법칙을 거기에 두었다고 저는 읽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여건과 그에 따른 갈등을 극복한 것...비록 그것이 두렙돈이라는 초라한 금액일지라도...은
아무런 갈등없이 습관적으로 드려진 그 어떤 큰 분량의 돈보다..가치있다.

...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돈의 크기에 목매달고 삽니다.

많이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누가 얼마를 내었는지 주보에 싣는 행위는...과부와 그리고 우리 주 예수를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09/07 Re:은혜롭지 못한 헌금 11

욕심사나운 헌금도 있습니다.
십일조를 가불해서 드리는 것 들어보셨습니까?

그리고는 복을 받았다며 간증하러 다니는 분의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감동적이었지만^^은혜롭지 못했습니다.


: 받을 복 기대하면서,
: 아니면, 혹시 모를 "이 노옴!" 이 두려워서...
: 회비내듯...또는 과시하기 위해서... 모두 모두,
: 아니 올시다...죠.
:
: 갈등과 고민을 거쳐 결국 감사함으로 헌금함이 바로 은혜지요.
: 은혜 받은 자의 자연스러운 결과이지요.
:
: 주보에 헌금자 명단을 공개하는 것과 공개하지 않는 것.
: 헌금 봉투에 이름 쓰던지 안 쓰던지..
: 뭐가 옳으나 그르냐 이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
: 명단공개..와 헌금 봉투에 이름을 쓰게 하는 이유가
: 헌금을 많이 걷기 위함이냐 아니냐....(교회입장)
:
: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헌금 봉투에 이름을 쓰지 않으면,
: 덜 내고...안 내도 떳떳하므로 좋은 교회냐.....(교인입장)
:
: 어느 목사님이 명단을 없애고 이름 적어 내는 것도 없앴더니,
: 헌금액이 반으로 줄었다고 했습니다.
: 그런데, 다행히(?) 6개월 쯤 지나자 이전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
: 교인들을 올바르게 인도하기 위해서는,
: 올바른 의미로 교인들이 헌금하게 하기 위해서는......
: 협박, 강요... 세속적 수단과 합리화에 앞서 제대로 갈등해 봐야죠.
:
: 네? 그리해서 그렇게 했다구요?
: 공개하면서 경쟁시키면서 제대로 헌금하게 했다구요?
: ............
: .
: .
: .
: .
: .
: 은혜 받지 못하셨군요. ㅜㅜ
:

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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