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외할머니...

주방보조 2006. 7. 21. 01:17

 

저의 외할머니는 올해 99세이신 백수(白壽)셨습니다.

10년 가까이 가벼운 치매를 앓았고

몇 년 전에 낙상을 하셔서 최근엔 몸조차 거의 움직일 수 없으셨지만

참 길고 힘든 세월을

그 작은 몸으로 잘 견뎌 살아오셨습니다.

 

아버지가 우리를 내 팽개치고 떠나신 후

외할머니는

병들었던 어머니의 유일한 보호자셨고

외롭던 우리 남매에게 단 한 분뿐인 기댈 언덕이셨습니다. 어머니는 병 요양을 위해 떠나시고 남은 우리들은 할머니와 함께 메뚜기도 잡으러 다니고 홍두깨로 밀어 만든 칼국수도 맛있게 먹고 눈물의 이별 식을 치르던 추억이 오롯이 남아있습니다.

 

외할머니는 저보다 유독 누나를 예뻐하셨는데

누나가 첫 손녀이기도 하고 워낙 똘똘하고 할머니를 잘 따랐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제가 당신의 미운 사위를 피부 검은 것 빼곤 꼭 빼어 닮았기 때문에 그러셨을 것이라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

 

외할머니는 언제나 돋보기를 쓰고 성경을 읽고 계셨는데

돈암동 산꼭대기에 있던 외갓집에 놀러 가면 약간 높이 자리 잡았던 안방에서 돋보기 너머로 저를 내려보시고 “성률이(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 왔나?”하시곤 곧 바로 다시 성경으로 눈길을 돌리시곤 하셨습니다. 평생 수 십 번을 통독하셨으리라 추측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생활에 엄청 뛰어나신 분은 아니셨습니다.

기도는 잘 하지 못하셨거든요. 한번은 저녁예배 때 대표기도를 하시다 말문이 막혀 한동안의 침묵 뒤 목사님이 기도를 마무리 하셨다는 전설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 외할머니의 기도를 하나님이 안 들어 주셨으리라 고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외할머니만큼 착하고 고운 분을 찾아보기란 하나님께서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사실 외할머니와 저와는 다른 손자들보다 별로 인연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려서 어머니 아플 때 도우러 오신 외할머니와 몇 개월 함께 보낸 것과 서울로 이사 와서 외할머니와 같은 교회 다니면서 주일날 뵈었던 것이 겨우 3년 정도밖에 되지 않고 그것이 전부 다였으니까요. 게다가 70년대 초반에 외삼촌이 메(미)국으로 이민을 가셨고 외할머니도 곧 따라 가셨기 때문에 더 그랬습니다. (어머니는 80년대 말에 누나는 90년대 중반에 모두 외할머니를 따라 메(미)국으로 이민을 가셨지요.)

저의 외사촌들인 친손자들이야 외할머니와 항상 같이 있었으니  빼고...

누나만해도 저보다 몇 년 일찍 태어났고, 이화여중에 들어가면서 서울에서 몇 년을 함께 지냈고, 외삼촌이 이민 갈 때 잠시 홀로 계신 외할머니를 1년여 모시기도 했고, 메(미)국에서 치매를 앓으실 때 몇 년을 봉양도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8년전 80이 넘은 외할머니는 심장 박동기를 달고 어머니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 오셨습니다.

저의 결혼식에 참석하셨으며 폐백 때에 잘못 아시고 아들만 낳으라고 밤만 던지신(밤은 딸 대추가 아들이라고 하더군요) 어머니의 오류를 밤과 대추를 왕창 던져 수정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섯 남매를 낳게 된 것에 지대한 공헌?을 하셨지요...

메(미)국으로 돌아가셔서는 저 때문에 한국에 나왔던 일이 너무 무리가 되어 몇 주간을 입원하시고 생명이 위태로울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야 누나보다 덜 예쁨을 받은 것 같고, 함께 하는 인연이 남달리 적어서 유감스러웠을지라도, 외할머니는 아마 손자들을 똑같이 사랑하셨던 것이라 ... 그리고 가장 못난 손자이므로 더 신경이 쓰였을 것이라...생각했었습니다.

 

...

 

외할머니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이 벌써 3년은 넘게 흘렀습니다.

치매로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였고, 제 목소리를 알아들으시나...이미 깊이 대화할 수는 없으셨던, 그래서 갑갑하고 죄송하였던 통화였었습니다.

 

그 후...

누나가, 모시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양로원에 모셨고 그 이후로는 간간이 소식만 들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누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돌아가셨다고...

 

...

 

생명도 이어받고, 어려서나 커서나 말없이 베풀어지는 사랑도 나누어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 아무 것도 돌려 해드린 것이 없는...외할머니...

 

호상이라고, 천국에 가셨을 거라고, 거기서 다시 만나면 되잖느냐고 ... 목이 메어 전화한 누나에게 떠들어대고 전화를 끊고 나서

 

이 못난 외손자는 울컥 ... 그리움에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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