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신학대학원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믿음''성경''삼위일체' 등등에 대하여는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외우는
수준이었습니다.
그 때는 '믿고 있다'는 저의 인식이 착각이었는데도 그 착각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지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사도바울이 삼층천에 간 성경기록을 보면서 그냥 넘기면서도 '왜 삼층천이라고 표현하였을까' '유대인들은 왜 하늘을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았을까'라는 의문만 던졌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여러가지(정교회 등등)를 거치면서 '아르케(시작)'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제머리속이 골치아파지고, 마음은 화병이 나면서
알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없다면 사람과 하느님은 만날 수 없단 말인가?
믿음과 관념은 어떻게 다르단 말인가? 등등 많은 질문을 던졌는데 주위에서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찾아 헤멨습니다.
직선적인 시간개념을 탈피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품에 안고 있는 하느님을 인식하면서 삼층천을 이해했습니다.
성부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성령에 의하여 예수그리스도에 동화되어 가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보게 되었는데...
요한복음과 요한일서는 공통적으로 아르케전에 존재하신 분이신 예수님을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함을 보았습니다.
아르케전에 이미 선재하신 에수님이란 말은 예수님은 곧 하느님이란 말이었습니다.
왜 요한복음과 요한일서는 이렇게 시작할까?
이는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은 시작이 있는 존재 즉 존재하지 아니한족이 있는 존재라는 주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주장을
일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주장을 일축하는 내용의 선포는 어디서 이루어졌는가?
재현의 형태로 진행되던 감사의 성찬(유카리스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유카리스트는 사도들이 전도를 한 계열로 족보처럼 이어져 내려갔고 또 내려 옵니다.
정교회나 로마 가톨릭에서 말하는 총대주교청을 파트리아르크라고 하는데 이는 아브라함처럼 족장이란 의미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파트리아르크는 고대로 갈수록 더 상호 독립적이었습니다. 교회가 교황 이하 계급구조로 바뀐 것은 프랑크제국 등장 이후입니다.
그러한 상호독립적인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영지주의의 공경을 받았고, 이레네우스의 서신에서 보는 것처럼 교묘하게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주장들에 대하여 교회는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선포를 해야할 중요한 사항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주장을 담은 여러가지 서한이 있는데도 전체교회들에게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은 그 파트리아르크들 전체로부터 받아들여졌습니다.
무라토리 정경목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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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세 번째 책은 루가가 쓴 복음서이다. 박심함으로 말미암아 바오로의 눈에 띄었던 루가는 의사였는데, 그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알려져 있는 사실들을 바탕으로 해서 자기 이름으로 복음서를 썼다. 그러나 루가 역시 주님을 직접 뵙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스스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을 토대로 요한 세레자의 출생으로부터 시작하여 글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네 번째 복음은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요한의
작품이다. 자신을 격려하던 동료 제자들과 감독들에게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부터 나와 함께 사흘 동안 단식합시다. 그리고 각자에게 계시된
바를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바로 그날 밤 삳들가운데 하나인 안드레아에게 계시가 내려, 요한은 모든 것을 자기 이름으로 써야 하며 모든 이는
그가 쓴 것을 검열하리라 하였다.
모든 사도들의 행장기(行狀記 )들은 단 한 권의 책(사도행전) 안에 편집되어 있다. 루가는 지체
높은 테오필루스에게 모든 일은 자기가 보는 앞에서 진행되었노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는 그가 베드로의 수난과 바오로가 로마에서 스페인까지 여행한
일을 빠뜨린 것만 보아도 분명한 일이다.
바오로의 편지들은 주의 깊은 독자들에게 편지들의 저술장소와 저술동기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바오로는 먼저 고린토인들에게 긴 편지를 썼는데, 이는 이단과 열교를 거슬러 싸우려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갈라디아인들에게는 할례를 금하기
위해 썼고, 마지막으로 로마인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성서의 원리라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각 편지들을 하나하나 다 살펴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복되신 바오로는 당신의 선임이신 요한의 자취를 따라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일곱 교회들에게 이름 붙여가며 편지를 썼기
때문이다.
첫째 고린도인들에게, 둘쩨 에페소인들에게, 셋째 필립비인들에게. 넷째 골로사이인들에게, 다섯째 갈라디아인들에게, 여섯째
데살로니카인들에게, 일곱째 로마인들에게 썼다. 그리고 고린토인들과 데살로니카인들에게는 나무라기 위해 편지를 한 통씩 더 썼다.
그러나 온 땅에 퍼져 있는 교회는 하나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요한도 묵시록에서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를 썼지만 사실은 모든
교회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필레몬과 디도, 그리고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은 그들을 향한 우정과 사랑으로 씌어진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보편
교회의 성화와 영예를 위해, 그리고 교회의 규율과 조직을 위해 씌어진 것이다.
바오로의 이름을 사칭하여 라오디케아인들에게와
알렉산드리아인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것들이 돌아다니고 있지만, 그것은 마르치온의 오류를 선전하는 것들이다. 그밖에 다른 편지들도 있지만 보편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은 쓸개즙과 꿀을 섞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교부들의 길, 아달베르함만 지음
이연학최원오 옮김,성바오로,2002, 서울]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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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네우스가 전하는 영지주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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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 체계: 이레네우스가 전해 주는 바실리데우스 이설(異說)(알렉산드리아의 영지주의)
바실리데스에 따르면 탄생되지
않은 성부로부터 먼저 지성이 탄생했다. 지성으로부터 로고스가 탄생했으며, 로고스로부터 생각(혹은 지각)이 탄생했고, 지각으로부터 지혜와 능력이
탄생하여, 지혜와 능력으로부터 덕행이 나왔으니, 이 덕행이 집정관 천사들이라는 것이다.
바실리데스는 이 집정관 천사들을
‘으뜸’이라고 불렀으며, 이들이 첫 하늘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유출되어 나온 것이 다른 천사들인데, 이 다른 천사들이 첫째
하늘과 유사한 둘째 하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른 천사들이 또 생겨 나와서(…)세 번째 하늘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세 번째 그룹의 천사들이 타락하여 나온 것이 네 번째 천사들이고, 그들 이후에도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런
방식으로 집정관들과 천사들 이후 하늘들이 계속만들어져서, 삼백예순다섯 하늘까지 만들어졌다. 따라서 하늘들의 수와 맞갖게 일 년에 365일이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열등한 하늘들을 차지하고 있는 천사들은 세상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었고, 서로
갈라져 땅들이 되고 나라들이 되었다. 그들의 수장이 바로 유다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하느님이 다른 모든
나라를 자기 백성 곧 유다인들에게 복속시키고자 하였기에, 다른 집정관들이 반대하여 들고 일어났다. 다른 나라들이 그의 백성들과 맞서는 것은 이런
까닭이기도 하다.
탄생됨이 없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성부께서는 집정관들의 악행을 보시고 자신의 첫아들인 지성을 내려보내셨으니,
이 분이 그리스도라 일컫는 분이다. 이는 세상을 만든 집정관들로부터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는
집정관들이 다스리는 나라들에 나타나셨으니, 즉 이 땅위에 사람의 형상을 하고 나타나서 기적들을 행하신 것이다. 따라서 그 자신이 수난을 당한
것이 아니고, 키레네 사람 시몬이 징발되어 대신 그의 십자가를 졌다. 그리고 바로 이 시몬이 사람들의 무지와 오류로 말미암아 십자가형에 처해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아는’[靈智] 이들은 세상의 창조자인 집정관들로부터 자유를 얻었던 것이다. 십자가에 달린
시몬에 대한 신앙을 고백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형상으로 오신 그 분, 십자가에 달린 것처럼 보인 그 분, 에수라 불리는 그 분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야말로 이 세상의 창조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을 파괴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이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경영[oeconomia]'이다.
바실리데스에 따르면, 누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말한다면 그는 아직 종이며, 육신을 만든
이들의 지배 아래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부인 하는 사람은 그들의 압제에서 벗어나 탄생됨이 없는 성부의 ‘경영’을 알게 된다. 오직
영혼에게만 구원이 있을 따름이니, 육신은 그 본성상 썩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레네우스, [이단 반박]Adversus
haereses 24, 3-5
교부들의 길,아달베르 함만지음, 이연학·최원오 옮김,성바오로,서울,2002
---------------------------------------------------------------- 이상은
초대교회의 교회를 뿌리채 뒤흔들었던 영지주의에 대한 이레네우스의 글입니다. 이레네우스는 폴리캅의 제자이고 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제자입니다. 이 영지주의는 사도요한 시대에도 교회안에 있었으며, 이그나티우스 서신에서도 영지주의에 대한 싸움이 상당히 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요한일서]
우리는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그 말씀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읍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 보았읍니다.
그 생명이 나타났을 때에 우리는 그 생명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증언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목적은 우리가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여러분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은 자기가 성령을 받았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다 믿지 말고 그들이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십시오.
많은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성령을 알아 보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성령을 받은 사람이고
예수께서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적대자로부터 악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자가 오리라는 말을
여러분이 전에 들은 일이 있는데 그자는 벌써 이 세상에 와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인 여러분은 하느님께로부터 왔고 거짓
예언자들을 이겨 냈읍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분은 세상에 와 있는 그 적대자보다 더 위대하십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 세상 일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왔읍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만 하느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진리의 성령과 사람을 속이는 악령을 가릴 수 있읍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오셔서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수난의 피를
흘리셨읍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이십니다.
그분은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뿐만 아니라 세례도 받으시고 수난의 피도
흘리셨읍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입니다. 증언자가 셋 있읍니다. 곧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서로 일치합니다.
우리가 사람의 증언을 인정한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더 인정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이것은 하느님께서 친히 당신의 아들에 관해서 증언해 주신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이 오셔서
참 하느님을 알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셨읍니다.
그리고 우리는 참되신 분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읍니다.
그분이야말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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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pistle of Ignatius to the Tarsians 사도 바울로의 출생지 길리기아 타르수스인들에게 보내는
이그나티우스의 편지
Ignatius, who is also called Theophorus, to the Church which
is at Tarsus, saved in Christ, worthy of praise, worthy of remembrance, and
worthy of love: Mercy and peace from God the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be ever multiplied.
데오풀로스라고 불리는 이그나티우스는 찬양 받으시고, 마땅히 기념되시고, 흠숭받으심에 합당하신
그리스도안에 간직된 타르수스 지역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보냅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그리스도의 자비가 영원히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Chapter I.-His Own Sufferings; Exhortation to Stedfastness. 제1장 그 분의
수난: 신앙의 견고함을 유지하도록 권고함
From Syria even unto Rome I fight with beasts not
that I am devoured by brute beasts, for these, as ye know, by the will of God,
spared Daniel, but by beasts in the shape of men, in whom the merciless wild
beast himself lies hid, and pricks and wounds me day by day. But none of these
hardships "move me, neither count I my life dear unto myself,"1 in such a way as
to love it better than the Lord. Wherefore I am prepared for [encountering]
fire, wild beasts, the sword or the cross, so that only I may see Christ my
Saviour and God, who died for me. I therefore, the prisoner of Christ, who am
driven along by land and sea, exhort you: "stand fast in the faith,"2 and be ye
steadfast, "for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3 be ye unwavering, for "the Lord
causes those to dwell in a house who are of one and the same character."4
나는 시리아에서부터 로마에 이르도록 나를 집어 삼키려는 짐승들과 싸웠습니다. 그 짐승들은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하느님의 뜻에
따라 다니엘로부터 격리되었던 그런 짐승들이 아니라 사람의 형상을 한 짐승들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형상 내면에는 무자비하고 거친 짐승이 들어
있어서 매일 나를 찌르고 상처를 입힙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경들은 내 마음을 흔들지 못하였을 뿐 만 아니라 나는 감히 주님보다 더 내 자신을
사랑한 나머지 나의 삶을 내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짓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에 나는 불이나 거친 짐승들이나 창이나 십자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바, 이는 나를 위하여 죽으셨던 그리스도 나의 구세주 하느님을 뵙고자 함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인하여 육로와 해상으로 호송중에
있는 죄수인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믿음 안에 굳건히 서십시오. 믿음에 의하여 반드시 생명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확고부동해
지십시오. 주님은 하나이고 동일한 인호(세례 혹은 견진등의 성사로써 받은 보이지 않는 영적 감명)을 가진 이들을 한집에서 살도록 하시니 여러분은
동요하지 마십시오.
Chapter II.-Cautions Against False Doctrine. 제2장 거짓 교리에
관한 경고
I have learned that certain of the ministers of Satan have wished
to disturb you, some of them asserting that Jesus was born [only5 ] in
appearance, was crucified in appearance, and died in appearance; others that He
is not the Son the Creator, and others that He is Himself God over all.6 Others,
again, hold that He is a mere man, and others that this flesh is not to rise
again, so that our proper course is to live and partake of a life of pleasure,
for that this is the chief good to beings who are in a little while to perish. A
swarm of such evils has burst in upon us.7 But ye have not "given place by
subjection to them, no, not for one hour."8 For ye are the fellow-citizens as
well as the disciples of Paul, who "fully preached the Gospel from Jerusalem,
and round about unto Illyricum,"9 and bare about "the marks of Christ" in his
flesh.10
예수님이 실제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태어난 것처럼 보일 뿐이고, 실제로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힌 것처럼 보일 뿐이며,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탄의 추종자들이 여러분들을 혼란케 하고자
함을 나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고, 예수님 자체가 스스로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신이라 하기도 하며, 다시, 예수는 단지 사람일뿐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육신은 부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일단
생존하고 즐기면서 사는 것이 곧 죽게 될 존재들에게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에 생존하면서 즐기고 사는 것이 우리에게 적절한 인생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악의 무리들이 우리를 엄습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들에게 굴종할 여지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리리쿰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충만하게 전하고, 그의 육신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졌던 바울로의 동료시민이자 그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Chapter III.-The True Doctrine Respecting Christ. 제3장 그리스도를 존경하는 참된
교의
Mindful of him, do ye by all means know that Jesus the Lord was truly
born of Mary, being made of a woman; and was as truly crucified. For, says he,
"God forbid that I should glory, save in the cross of the Lord Jesus."11 And He
really suffered, and died, and rose again. For says [Paul], "If Christ should
become passible, and should be the first to rise again from the dead."12 And
again, "In that He died, He died unto sin once: but in that He liveth, He liveth
unto God."13 Otherwise, what advantage would there be in [becoming subject to]
bonds, if Christ has not died? what advantage in patience? what advantage in
[enduring] stripes? And why such facts as the following: Peter was crucified;
Paul and James were slain with the sword; John was banished to Patmos; Stephen
was stoned to death by the Jews who killed the Lord? But, [in truth, ] none of
these sufferings were in vain; for the Lord was really crucified by the ungodly.
주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서 실제로 태어났으며, 여자에게서 난 분이시며, 실제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 그를 잊지 마십시오. 그는 하느님께서는 내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주 예수의 십자가로써 구원하셨는 바,
예수님은 정말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으며, 부활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다시 말씀합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신체의 감각이 살아 있는
상태로서 죽은 자들 중에 부활하신 첫 열매라면 그것은 그리스도가 이미 죽음을 당하셨고, 죄에 대하여 단 번에 죽으셨으며, 그 분이 살아 나셨음과
하느님에 대하여 사셨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리스도가 죽지 아니하였다면 속박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인내한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죄수복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일어 났습니까? 왜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박혔고, 바울로와
야고보는 칼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으며, 요한은 파트모스섬으로 추방되었으며, 스테파노는 주님을 죽인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었습니까? 그러나
(진실로) 이러한 역경들은 헛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정말로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셨기 때문입니다.
Chapter IV.-Continuation. 제4장 계속
And [know ye, moreover],
that He who was born of a woman was the Son of God, and He that was crucified
was "the first-born of every creature,"14 and God the Word, who also created all
things. For says the apostle, "There is one God, the Father, of whom are all
things; and one Lord Jesus Christ, by whom are all things."15 And again, "For
there is one God, and one Mediator between God and man, the man Christ Jesus;
"16 and, "By Him were all things created that are in heaven, and on earth,
visible and invisible; and He is before all things, and by Him all things
consist."17
그리고 [ 게다가 , 여러분은 아십시오 ] , 여자에게서 태어난 그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며,십자가에
못박히신 그 분이 모든 피조물보다 처음으로 나신 분일 뿐만 아니라 만물을 창조하신 로고스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는 "한 분이신 아버지
하느님이 계시고 만물은 그 분으로부터 존재하게 되었으며,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 분으로부터 만물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재차 말씀하십니다. "한 하느님께서 계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도 한 분이신데 그 중재자는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 그 분에 의하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위에 있는 것이나 가시적인 것과 불가시적인 모든 것들이 창조되었으며, 그
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고, 그 분에 의해서 만물이 유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