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호> 부실교사를 퇴출하라... 2001년 04월 20일 교육에 대한 개혁의 이야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한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부실교사의 퇴출입니다.
교원의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처라는 것이 행정당국의 시각이고 또한
학부모들의 요구사항입니다. 이문제에 대하여 교사들 자체적으로는 몇가지 다른 의견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부실교사가
있다면 ... 당연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로부터 그를 격리시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몇가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 부실교사가 부실해지기까지의 책임이 어디있느냐는 것과 둘째로 그 부실교사를 퇴출이라는 방법으로만 해결해야 하느냐
하는 것과 세째는 부실을 평가할 수 있는 공정한 기준이 있느냐는 것등입니다.
오늘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부실교사 퇴출의
세번째 문제로 제시한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자신의 불공정성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그것을 합리화하는 말이 있는 데...우리사회는
情의 사회다라는말입니다.
저는 그말은 우리스스로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情이라는 것에 왜 불편부당과 공평무사가 적용될
수 없다는 말입니까?
정이있다면 더욱 그 정의 대상을 위하여 공평하게 정직하게 일을 처리해야 마땅합니다.
부모형제니까
봐주고 동향이니까 봐주고 동창이므로 봐주고 설날 집에 찾아와 인사했으니까 봐주고 추석에 상품권 받았으니까 봐주고 ... 이런 식의 사사롭고
탐욕스런 것을 ... 情이라고 모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장선생님이 공정한 심성을 가진 선비시라면 틀림없이 그 평가기준이 엄정하고
엄격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장선생님이 사사로운 정을 따라 판단하시는 분이라면 좋은 교사는 퇴출되고 악한 교사는 영전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것입니다. 뇌물은 점점 더 고급스러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에 공의적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공의가 전제되지 않고는 한발자국의 개혁도 발전도 도모할 수 없습니다. 개혁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더욱 더 혼란과 불신과
불만만 깊어 갈 뿐입니다.
情을 앞세워 公義를 배제시키는 일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뿌리깊은 오류입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누가 잘못을 해도 情을 앞세워 덮어주고 감싸줍니다. 분명히 잘못을 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情때문에 입을 다물고
물러섭니다.
목사가 아들에게 교회의 헌금을 전용하게 했어도...그것을 지적하여 돌이키려는 이들을 오히려 사단의 자식들로 몰아버리는
것이 당연한 듯이 선포됩니다.
교회도...공의가 아니라 왜곡된 情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목사개인의
카리스마나 혹은 몇몇 성도들의 집단주의가 더욱 위력을 발하는것이 우리 교회들의 현실입니다.
거기엔 공평무사한 기준이
없습니다. 목사의 독선이나...교인들의 횡포만 있을 뿐입니다.
의식있는 교인들은 독선적 목사의 교회를 떠나고 올곧은
목사들은 교인들의 횡포에 강단에서 끌려내려옵니다.
익명성과 독립성이 두드러지게 높은 대형교회만 그 크기를 더해가는 것이 이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교육의 쇠락이....공정성의 결여에서부터 비롯한 것이라면 우리나라교회의 쇠락도...공의를 도외시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의 탐욕을 情이라고 속이며 사는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하나님의 훈계를 멸시하는 교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학교들은 껍질만 학교...이고 우리나라 교회들은 껍질만
교회...입니다.
情이란 말로...公義를 내쫓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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