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에 대한 감상문으로서
옛칼럼에서 쓰던 글을 마무리 할 참입니다.
신약 감상문까지 다 끝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할 수 없는 일이지요.
...
말라기에는
마지막 선지서다운 절박감이 여기저기 진하게 베어 나옵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워 하시는 말씀에 대해
"우리가 언제 그랬습니까?"라는 식의 반문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려 사는 인간들의 한심스런 작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안에 있는 양심도, 오랜 경험을 통해 획득한 사회적 도덕률도
눈앞에 있는 이익에 매달려 사는 인간에겐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것이 그냥 그저 그렇게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인간들 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들조차 그렇게 되어 살고 있으니
오죽하면 너희중에 성전문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다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들도 제사장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이 해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종교적 의무인 십일조도, 윤리적 도리인 약자에 대한 배려도 전혀 없이 아내에게조차 구타와 이혼을 밥먹듯 해대는 그들의 패역한 일상을 또한 고발합니다.
말라기를 읽으면서
그것이 2400여년전의 유대인들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으시겠지요.
얼마나 정확하게 이 시대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 연하는 이들을 겨냥하고 있는지요.
목사들은 사업가가 되어가고 성도들은 종교적 문화인으로 전락해 버린 이 시대 말입니다.
...
말라기선지자의 시대에
엘리야와 메시야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린 것같이
우리 이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해 질 수 밖에 없나봅니다.
...
학개서가 성전건축헌금 거두는 도구로 전락한 것같이
이 말라기는 십일조를 강조하는데 오용되고 있습니다.
헌금하는 정신이냐 그때나 이제나 다를 바가 없겠습니다마는
성전과 제사장 그리고 레위인이라는 메카니즘 가운데 강조된 십일조와
자원하는 마음가운데 선택해서 드리는 우리시대의 십일조가 똑같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어떤 설교에서
모든 축복과 저주가 십일조에 관련되어 있다에서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는 헛소리까지에 이르르면
다시한번
성전문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다 하신 하나님의 그 마음이 이해가 가곤 합니다.
그런식으로 공갈쳐서 사업할 바에는 교회문 닫지하고 말입니다.
...
--;;
옛칼럼에서 쓰던 글을 마무리 할 참입니다.
신약 감상문까지 다 끝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할 수 없는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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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에는
마지막 선지서다운 절박감이 여기저기 진하게 베어 나옵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워 하시는 말씀에 대해
"우리가 언제 그랬습니까?"라는 식의 반문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려 사는 인간들의 한심스런 작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안에 있는 양심도, 오랜 경험을 통해 획득한 사회적 도덕률도
눈앞에 있는 이익에 매달려 사는 인간에겐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것이 그냥 그저 그렇게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인간들 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들조차 그렇게 되어 살고 있으니
오죽하면 너희중에 성전문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다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들도 제사장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이 해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종교적 의무인 십일조도, 윤리적 도리인 약자에 대한 배려도 전혀 없이 아내에게조차 구타와 이혼을 밥먹듯 해대는 그들의 패역한 일상을 또한 고발합니다.
말라기를 읽으면서
그것이 2400여년전의 유대인들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으시겠지요.
얼마나 정확하게 이 시대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 연하는 이들을 겨냥하고 있는지요.
목사들은 사업가가 되어가고 성도들은 종교적 문화인으로 전락해 버린 이 시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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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선지자의 시대에
엘리야와 메시야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린 것같이
우리 이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해 질 수 밖에 없나봅니다.
...
학개서가 성전건축헌금 거두는 도구로 전락한 것같이
이 말라기는 십일조를 강조하는데 오용되고 있습니다.
헌금하는 정신이냐 그때나 이제나 다를 바가 없겠습니다마는
성전과 제사장 그리고 레위인이라는 메카니즘 가운데 강조된 십일조와
자원하는 마음가운데 선택해서 드리는 우리시대의 십일조가 똑같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어떤 설교에서
모든 축복과 저주가 십일조에 관련되어 있다에서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는 헛소리까지에 이르르면
다시한번
성전문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다 하신 하나님의 그 마음이 이해가 가곤 합니다.
그런식으로 공갈쳐서 사업할 바에는 교회문 닫지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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