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조정희칼럼

무슨 무슨 주의(主義) (2): 예수님의패가르기법칙들

주방보조 2004. 2. 8. 03:41
<제111호> 무슨 무슨 주의(主義) (2): 예수님의 패가르기 법칙들 2003년 08월 10일


근본주의, 보수주의, 개혁주의, 자유주의....  한국 교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대체로 이 네 가
지로 구분되지 않을까 싶군요.  그런데 이 네  가지 주의에 공통점이 있는 듯 합니다.   서로
자기들이 복음주의를 견지한다고 합니다.

뭐, 그건 좋은 일입니다.  '복음(福音)을 가장 중요한 것(主義)'으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예수님
께서도 바라시는 일일 테니까요.  다만 자기'만'  복음주의라고 주장하는 데에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주의자들은 사안에 따라서 이합집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때로는 근본-보수-개
혁주의자들이 힘을 합쳐서 자유주의를 왕따시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자유-개혁-보수주의자
들이 근본주의를 왕따시키기도 합니다.  

그런 왕따에 대항하기 위해서, 자유주의는 다른  주의들을 고루한 교조주의자이며 머리만 있
고 행동은 없는 불구자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근본주의자들은  다른 주의자들을 깡그리
이단이라고 몰아 부치곤 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도 완전한 주도권을 잡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인지, 그저 고만고만한 세
력을 이루어서 토시락 타시락  하는 모습이지요.  외부인들에게는 그다지  볼썽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사실 그런 티격 태격의 모습조차도 어쩌면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을 닮았는지 한숨이 나
옵니다.  요즘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뭐 그다지 큰 차이가 있습니까?  그래도  서로 죽일
년놈 취급하면서 쌈박질하는 게 오늘날 한국 정계의 모습입니다.

암울했던 군사 독재 시절,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좋은 뜻으로 출발해 놓고서도 NL이니 PD니,
삼민투니 제헌의회니 패를 갈라 가지고 자기들끼리 이념투쟁하느라고 지지고 볶는 모습이 보
기가 좋으셨습니까?

그런데 그런 이념 투쟁은 교회가 먼저 시작했더란  말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이미 신사참배
와 일제부역 때문에 분열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해방 이후 가장 먼저, 그리
고 가장 본격적으로 갈라서는 모습들을 보여준 게 바로 교횝니다.  80년대 중반에 이르면 한
국에서 장로교로 자처하는 교단 수만 60개에 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사회를 선도(善導)할 능력을 잃은 정도가 아니라,  좋지 않은 관행을 선도(先導)해 나
가고 있잖습니까?  요즘 교회가 재벌 상속을 욕하기가  상당히 민망스러울 겁니다.  그런 상
속은 교회가 먼저 시작한 측면이 있으니까요.  흐유.....

그나저나 교회가 근본/보수/개혁/자유주의의  갈갈이 찢기는  모습은 아주  볼썽 사납습니다.  
때로는 분열과 분리가 다르다느니,  한 시점의 분리는 오히려  교세 확장에 도움이 된다느니
하는 변명을 늘어놓기도 합니다만, 그거야 그런 변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그 부적합성을
더 잘 알겠지요.  그저 사후 정당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런데 사람이 살다보면 패거리가 생기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런 패가르기가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지느냐, 그리고 패를 가른 다음이라도 서로 어떻게 대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
제이겠습니다.

패가르기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한가지도 아니고
두 가지나 주셨지요.  편의상 그 두 가지를 '예수님의 편가르기 제1법칙'과 '제2법칙'이라고 부
르겠습니다.

예수님의 편가르기 제1법칙은 마태복음 12장30절과  누가복음 11장23절에 나옵니다.  예수님
은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패가르기 제1법칙은 "예수님과 함께 아니하는 자"인가 아닌가를 살피는
것이지요.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몽땅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이건 굉장히 엄격한  기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도
않는 회색인들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편이 아니면 모두 예수님 반대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 반대자를 성경은 때로  원수라고도 부르고 적그리스도라고도 부르고
마귀의 자식들이라고도 불렀지요.

예수님의 패가르기 제2법칙은 누가복음 9장50절에 나옵니다.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
희를 위하는 자니라"고 하셨지요.  이 법칙은 마가복음 9장40절에도 나옵니다.  "우리를 반대
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패가르기 제2법칙에서는 기준이 훨씬 완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
람들'은 '우리를 위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의 패가르기  제1법칙은
좀 '엄격한' 기준인 반면, 제2법칙은 조금 '느슨한' 기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패가르기 기준이 두 가지나  되는 게 좀 혼란스럽습니까?  어떤  때에 '엄격한'
제1법칙을 적용하고, 또 어떤 때에 '느슨한' 제2법칙을 적용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위의 성경 말씀들에 이미 나타나 있습니다.  각  문장의 주어를 한번 잘 보시기 바랍
니다.  패가르기 제1법칙을 가르치는 성경구절에서는 주어가 '나' 즉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을 구주로 인정하지 않으면, 세상없어도 반대편이라는 말입니다.  그걸 다시  뒤집으면 또 다
른 결론도 나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몽땅 우리편이 되니까요.

예수님의 패가르기 제2법칙을 가르치는 성경구절의 주어는 '너희' 혹은 '우리'입니다.  이것은
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이 아니라 사람들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요.  

그래서 "너희들을 반대하지만 않으면 다  같은 편으로 알아라"는 뜻입니다.   즉,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더라도 반대하지만 않으면 같은  편으로 생각하고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요즘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패가르기에 문제가 있다면,  이 두 법칙을  헷갈린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 곳에 사람들(자기들)을 집어 넣고서 패가르기를 하기 때문입니
다.  그건 대단한 교만입니다.  예수님 자리를 자기들이 꿰차는 것이니까요.

한때 로마 카톨릭 교회는 "예수님을 영접한 종교  개혁자들"의 씨를 말리려고 했습니다만 성
공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제2법칙을 제1법칙과 헷갈렸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그 위기를 모면한 신교도들도 정신을  못차렸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만 자기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이단 혹은 적그리스도로 규정하고서 마구 탄압한 것이지요.  매서운
시어머니 밑에서 자란 며느리는 자기 며느리에게 더 심한 시집살이를 시키는 법이니까요.

요즘 한국 상황은 좀 더 살벌합니다.   서로 이단이라면 잡아먹질 못해 안달입니다.   그러나
근본/보수/개혁/자유주의자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합니까?  그러면 그들은 절대로 적그리
스도가 아닙니다.  다 '우리편'이라는 말입니다.

그들 중에서 내 예배나 선교를 반대하고 탄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없잖습니까?  그러면
그들은 모두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그렇다면 그들은  다 '우리를 위하는 사람들'
이란 말입니다.

심지어 예수님 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그들을 탄압하라고 하신 적은 없습니다.  
제1, 제2법칙은 편가르기 기준일 뿐이지, 상대편  대하기에 대한 지침은 아니니까요.  예수님
께서는 마지막날까지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하셨고,  원수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심지어 축복
까지 하라고 하셨지요.  그게 바로 예수님이 가르치신 상대편 대하기의 지침입니다.

예수님의 패가르기 제1, 제2법칙을 혼동하지  맙시다.  예수님께서 기준이 되셔야 할  경우와
우리가 기준이 되는 경우를 혼동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예수님의 상대편
대하기 지침도 꼭 준수합시다.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