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호> 엄마와 아빠의 차이...하나 2002년 08월 09일
어제는 맏아들의 생일이었습니다.
한달 족히 되기 전부터 아들은 탑블레이드를 사달라고 은근히 중얼거리곤 하였습니다.
동네에서 사는 탑블레이드는 꼴았고^^
이 마트에서 사는 게 좋다면서 말이죠.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생일은 자식이 부모에게 잘하는 날이라고 귀에 못이박히게 가르쳐왔는데
친구들 생일잔치 몇번 맛보더니...
이 아버지의 주옥같은 교훈은 어느새 사라지고
요즘은 요구사항만 늘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가 뭔가를 받고 싶어하니...아비된 마음에 뭔가를 사주고 싶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더군요.
탑블레이드따위의 놀이기구는...잘부숴지고 너무 비싸고...비쌀수록 즉, 돈만 많이 들여 좋은 것을 사면 항상 이길 수 있는 것이라....저는 그녀석의 징징거림을 처음부터 무시해버렸습니다.
게다가 그녀석이 꼴았다는 탑블레이드(팽이종류의 플라스틱 장난감)의 시체들이 창고속에 여나믄개가 뒹굴고 있기도 하구요
탑블레이드는 안되고 아빠가 네 생일선물로 야구 글러브 사줄께
그게 뭐하는 건데요?
응 너랑 나랑 둘이서 캐취볼을 하는거야
캐취볼이요?
그러니까 야구공을 서로 주고 받는 거지
별루예요
얌마 얼마나 재미있고 운동도 되는데
알았어요 사줘 보세요
인터넷을 뒤져서...야구글러브 두개 야구방망이 한개 야구공 한개 테니스볼 두개를 묶어 이만오천원정도하는 물건을 주문했습니다.
어제 그 물건을 받았지요
저는 흥분해서(영화속의 어떤 장면처럼 아들하고 캐취볼을 할 생각을 하니 너무 좋았거든요^^) 아들을 불러 물건을 보이고 학교로 가서 "하자"...했지요
욕심많은 나실이가 먼저 따라 나섰고
충신이는 누나 컴퓨터하는 것을 기웃거리며 알았다고 대답했습니다.
땡볕이 오랜만에 쪼이는 중학교운동장에서...겁쟁이 나실이와 몇번을 주고 받으며 기다리고 있는데...아들녀석은 끝까지...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공을 얼굴에 한대 맞고 나실이는 엉엉 울고
원경이는 옆구리에 두번 맞고 인상을 깊이 찌푸리고
교신이는 글러브가 무거운지 냅다 팽개치고...
'아들과 캐취볼을!'이란 제 소박한 꿈은...날아가 버렸죠
집으로 돌아오니...아들은 큰 누나와 같이 컴퓨터를 하고 앉아계셨습니다--;
생일이라고...화도 못내고...야구글러브들은 자동차 트렁크에 쳐박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촌형들이 오고...좁은 집은 북새통을 이루며...즐거움이 한층 고조되어 갔습니다. 이 늙은 아빠의 섭섭함을 무시한 채로^^
...
아내가 예상보다 두시간이나 늦게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 이마트에서 산 탑블레이드가 쥐어져 있었고
아들놈의 입은 귀까지 주욱 찢어졌습니다.
...
아들녀석이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것을...외면할 수 없었노라고...아내는 제게 변명아닌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충신이가...그런대요 정말 이마트 탑블레이드가 좋아요...라고 하며 자기를 쳐다보며 말할 때 그 눈빛이 너무 애처로웠대나 어쨌대나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