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30초 성경묵상

요한복음 1 (1:1)

주방보조 2024. 7. 2. 07:52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태초에" 로 시작하는 요한복음 1:1은 창세기 1:1의 "태초에"를 자연히 떠오르게 합니다.

이 두 "태초"는 똑같은 의미일까 아니면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질까 궁즘하기도 합니다. 혹 누군가 깊은 깨달음이 있어 둘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해도 그것은 "태초"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들 중 시간과는 관계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태초"란 바로 시간이 시작되는 시점이며 이 시작점 이전을 우리들의 시간개념으로는 설명할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며 우리가 그 영역을 시간개념으로 설명하려 하는 순간 신의 존재와 역사에 대한 폄훼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1:20이나 요한복음 17:5에 쓰인 "창세 전"이란 표현은 시간이전의 시간이란 의미가 되는데, 이것은 태초 즉 시간이 시작되기 전의 '상태'를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창세 전"이란 시간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시간을 초월한 상태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시간은 태초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이것은 신의 영역에선 지극히 부분적인 개념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재로써만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상태에 하나님이 존재하셨고 말씀이 존재하셨는데 이 말씀이 또한 곧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합니디.. 

하나님의 말씀은 소리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를 그대로 실행하게 만드는 권능을 가지고 있어서 이 말씀이 곧 하나님과 다르지 아니한 존재가 됩니다. 인간의 말은 소리나 글로 전달되어 그것이 서로의 뜻을 전달하고 사물을 설명하는 것으로 쓰이나 거기엔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 말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며 말로써 이룰려고 하는 것들은 실제로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말은 소리이고 그 말이 곧 실체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의 기능이 제한적인 것은 인간의 능력이 제한 적인 것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존재가 뜻하는 것을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게 합니다. 그리하여 신에게서 나왔으나 신과 동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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