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거우니라"(27:3)
미련한 자가 분노하면 설득이 어렵기 때문에 그 분노를 잠재우기 매우 힘듭니다.
미련한 자의 특징이 '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꼭 화를 내지 않는다 해도 함께 사는 사람이나 함께 일하는 사람이 미련하면 행복하게 살기도 어렵고 사업의 좋은 성과를 내기도 어렵습니다.
이 미련한 사람이 주는 스트레스는 주변 사람들을 다 골병이 들게 만들어 버라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여기에 쓰인 분노라는 단어는 두가지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영어로는 wrath(-분노)(KJV)와 provocation(-도발)(NIV)이고
한글로는 분노(개역개정)와 성가시게 구는 것(새번역) 또는 귀찮게 구는 것(공동번역)입니다.
그러니까 분노와 분노유발로 그 번역이 나뉘는 것입니다.
이 둘은 엄밀히 따지면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분노는 주체자가 화를 내는 것이고 분노유발은 타인으로 화가나게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성경 번역하는 분들이 왜 이렇게 둘로 나뉘었을까요?
원어인 'כָּעַס카아스'가 두가지 뜻을 아울러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저는 미련한 자의 분노보다는 미련한 자의 분노유발 쪽에 더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말이 안 통하는 미련한 자의 분노는 그냥 부딪쳐 결판을 내버리면 될 일이지만
미련한 자가 사사건건 어리석은 짓으로 나를 분노케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자와 함께 하는 일은 되도록이면 피하되
어쩔 수 없이 미련한 자와 함께 하게 되거든
그가 분노유발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하거나
그것도 여의치 못하다면
미리 정신무장을 단단히 하여 미련한 자의 미련한 짓을 참아낼 수 있게 하여, 스스로의 분노를 단속하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천하에 미련하기 짝이 없는 저는 사랑의 주님께서 저의 미련함을 잘 참아내시고 계실 줄 믿습니다.
언젠가 이 미련을 벗고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릴 날이 속히 오기를 소망하면서...
'예수와 우리 > 30초 성경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언405(27:5-6) (0) | 2020.10.21 |
---|---|
잠언404(27:4) (0) | 2020.10.20 |
잠언402(27:2) (0) | 2020.10.16 |
잠언401(27:1) (0) | 2020.10.15 |
다니엘12장 (0) | 2020.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