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11:7)
우리가
할례를 받지 않고 짐승의 피의 제사를 더 이상 드리지 않는 것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율법의 요구가 다 이루어졌고
그러므로 더 이상 율법의 종으로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를 얻었으므로
나아가 우리는 율법과 다르게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고 토끼고기를 별미로 먹기도 하고 비늘없는 장어를 아무 거리낌없이 먹는 것입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음식물에 대한 규제를 하는 이들이
오히려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거짓말장이들이라 지적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4:1-3)
그러나
율법이 이러한 음식물등의 규제를 통해 이스라엘을 가르치고 인도하려 했던 목적은 뚜렷합니다.
그것은
구별된 삶, 곧 거룩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세속적 싦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음식물의 구별이라는 원초적 욕구제어를 통해 가르치려 하신 것입니다.
율법의 초보를 넘어선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이고
몽학선생의 가르침에 더 이상 매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복음적으로 성숙한 거룩은 자율적이며 이타적인 방향을 향해 나아갑니다.
나는 자유롭기 때문에 문제 없으나
남이 그것을 문제를 삼으면 언제든지 그 자유는 제한을 받아 마땅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남에게 덕이 되지 않는 삶이 거룩한 것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 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8:13)
먹는 것을 넘어서서
사랑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하여
정의가 아닌 모든 것에 대하여
믿음과 소망으로 말미암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하여 거룩하게 구별하는 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아니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를 향한 엄중한 요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