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2.
걸음수가 좀 모자라면 잠실대교와 잠실철교 사이에 있는 강변공원에 갑니다.
거기에서 집까지 왕복 8천보입니다.
그곳은 사람이 별로 없고 강물은 잠실 수중보에 막혀 있어 마치 평온한 호수같으며 바로 맞은편에 124층짜리 롯데빌딩도 거기 물그림자를 드리워 전망이 제법 좋습니다.
그 작은 공원은 왼쪽으로는 운동기구들이 있고 그 옆으로 비를 피할 수 있는 천막, 그리고 그 옆으로는 꽤 널직한 잔디밭이 있습니다. 그 잔디밭엔 가끔 견공들이 모임도 갖습니다.
오른쪽엔 흔들그네?가 하나 있고 그 옆으로 작은 잔디밭이 있고 앞쪽에는 6-7개의 벤치를 가진 테크목으로 만든 약 50보 넓이의 전망대가 놓여 있습니다.
어제 오후 5시쯤 그곳에 도착했을 때
팔로 미는 운동기구 의자에 앉았습니다. 이자리가 가장 명당입니다. 한강쪽으로 앞이 탁 트인 운동기구인고로...
주위를 살펴보니 왼쪽 잔디밭 끝쪽에 자전거를 한 대 세워놓은 두 남녀가 야외용 나무 탁자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고
오른쪽 테크목 전망대 벤치들엔 혼자 혹은 둘 합하여 서너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고즈녁하달까요. 해도 기울어 가고.
한강을 바라보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한강철교위로 가는 2호선 전철의 느려보이는 금빛질주?를 바라보는순간
처음에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인물이 느릿느릿 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천막 아래 누워있었던듯.
그는 머리끝부터 온통 검은 색이었습니다. 운동화만이 달랑 회색빛파랑색이었던 것입니다.
키는 160이 될까말까, 나이는 60은 넘어보이는데 그 이상은 가늠할 수 없을정도로 오랫동안 씼지않은 몰골을 하고 있었습니다.
더부룩한 머리카락 새까맣게 번들거리는 얼굴 오랫동인 깎지 않아 부풀어 오른 수염, 원래 색깔인지 때인지 알 수 없는 검정 옷들...
나는 힐끗 그를 보았을 뿐인데 그는 가는 도중 잠시 머무르며 저를 지켜보았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만약 그가 나를 계속 지켜보았다면 저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내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순간 그날 하루 종일 그 공원구석에 누워있다가 일어나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습니다.
낮게 그르렁거려 잘 알아듣기 힘든 소리였습니다.
"야 이 @$@$##%새끼야...@$#%%$$^...@##%$%%$%#...@@####@##$"
그리고는 천천히 자기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얼떨떨하다가 그가 한 말의 의미를 10초쯤 뒤에 이해하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크게 웃었다가는 그가 다시 돌아와 나를 안아줄지 모르므로.
머리는 박박깎고
시커먼 얼굴을 한 60대 늙은이로 보이는,
거무튀튀한 점퍼를 걸치고
얼룩덜룩한 바지는 맨 아랫단을 가위로 그냥 잘라 약간 말린채 실밥이 보이고
맨발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있는,
그런 인간이
운동기구에 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다보고 있으니
그는 같은 부류의 친구를 만난듯 충고를 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야 이 멍청한 새끼야. 여기는 내 나와바리야. 밥은 먹고 다니니. 힘들어서 나는 먼저 간다"
ㅎㅎㅎ...
다음에 그를 만나면 용기를 내어 밥이나 한끼 사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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