쩜쩜쩜/잡문

올해 농사의 시작...

주방보조 2017. 4. 29. 02:59

작년엔 화분에 까마중을 잔뜩 심어서 상당기간 그 달달한 맛을 즐겼었습니다. 

올해는 

그 화분중 하나에 흰콩 하나를 심었습니다. 

먼저 흙을 부드럽게 해주고 거름도 주고 해야하는데 언제나처럼 아무 것도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딱딱해진 흙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고 잡곡통 속의 흰 콩 하나를 골라 깊숙히 박아놓고 흙을 덮고 물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4월 초였습니다. 

날이 추웠는지 아니면 너무 깊숙히 박아 놓은 것 때문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싹이 돋아나지 않았습니다. 

열흘쯤 지나서 흙을 살살 파 내려 갔더니 흰둥이 에일리언 이마처럼 팽팽해진 콩이마가 보였습니다.

죽었나...원래 죽은 것이었나...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냥 그렇게 사흘인가 지난후 제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떡잎이 올라왔습니다. 와우~^^

그리고 며칠후 떡잎 가운데로 두개의 이파리가 활짝 펼쳐졌습니다.  와우 와우~~^^

그냥 잡곡밥 해 먹는 잡곡들 담아 놓는 통(패트병)속에 있던 한알의 콩이 그 속에 담긴 생명을 

흙과 물과 햇빛을 통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마 여기까지일 것입니다. 

저는 억수로 게으른 농부라 가끔 물만 줄 뿐 비료도 거름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잡초들은 대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지만 호박이나 옥수수는 제대로 큰 열매까지는 맺지 못했습니다. 나실이의 방울 토마토가 그나마 예외적으로 상당한 분량의 열매를 맺어냈지요.

그래도 좋습니다. 

콩 하나가 그 생명을 뿌리로 줄기로 잎으로 고여내었으니 그 장한 모습만으로 족합니다. 

잎 두개 펼친 후 상당기간 그대로 머무는 콩잎을 보며

조금만 더 자라주지 않겠니 속삭이는 중에

바로 옆 화분에 잡초 하나가 우뚝 서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와우 와우 와우~~~!!!

그건 잡초가 아니라

밀이었습니다.

꼭대기에 이삭까지 달린 빼빼마른 밀이 서 있는 것입니다. 

작년 한강에서 밀 수확 하고 주변에 버려진 이삭 두개를 가져다가 책상에 꽂아 두었었는데 

그 이삭들이 다 떨어져 몇개는 후후 불어 껌처럼 씹어 먹고 남은 두어개는 화분에다 던져 놓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겨울을 지나며 춘화과정을 거쳐

봄에 마치 잡초처럼 생명을 튀어낸 것입니다. 

 

생명은 강합니다. 

생명은 모든 역경을 뚫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생명은 장해물을 거부하고 이 세상 밖으로 뛰쳐 나갑니다. 

생명은 신령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상상력을 초월합니다. 

생명은 노래입니다. 보는 이를 감동시킵니다. 

생명은 ...위대합니다.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모든 어마어마하고 거대한 죽음들보다 더 큽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제 

콩이 드디어 줄기를 조금 더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벌써 또 다른 생명인 진딧물이 자리잡은 것을 보았습니다. 

입김을 세게 불어 진딧물들을 날려보내고 카메라에 그 생명을 담았습니다. 

그 곁에 우뚝 솟은 우리밀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촬영-마눌님)

   

 

 

 

  • 한재웅2017.04.29 07:32 신고

    모든생명은 경이 자체입니다.
    예전 김홍신 작가의 아내가 암으로 투병할때 김작가가 마당의 잡초를 제거하려하자 생명이 얼마 안남은 부인 이 잡초도 생명인데 제거를 하지 말라는 부탁을 했다는 말이 뇌리에 오래 남더군요.

    답글
    • 주방보조2017.04.30 04:10

      달에 가도, 화성에 가도 생명이 없는 것을 보면
      이 지구 상에 넘쳐나는 생명들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요.
      지난학기에 자원식물학을 배우면서...이 세상에 쓸모없는 생명은 없다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malmiama2017.04.29 09:31 신고

    신기...신비~~^^

    답글
    • 주방보조2017.04.30 04:11

      매년 봄만 되면 꾸준히 하는 장난질인데...싹이 나고 자라는 것은 정말 감동입니다. 장난치곤 매우 이익이 많은 장난인 것이지요^^

  • 들풀2017.04.29 09:31 신고

    신기하지요
    싹들을 틔우는걸 보면.
    주인의 기쁨이 거기 있겠지요?
    전 방울토마도 칼로 나눠 드셨다던
    작년의 글과 사진이 생각나네요

    답글
    • 주방보조2017.04.30 04:21

      작년일인데 잘 기억이 나지 않다니 화들짝 놀라 확인해 보니 벌써 3년전 일입니다.^^
      http://blog.daum.net/jncwk/13748897

      새집엔 두번째 농사가 진행 중입니다. 스티로폼 상자에 배추씨를 뿌렸더니 겨우 하나 살고 나머지는 비실거립니다.
      그리고 그 상자 빈 구석에 지난번 시설원예실습하고 가져온 토마토모종을 심었습니다.
      작년겨울 죽어버린 고무나무 화분엔 감자를 심었습니다.
      이집에 가도 저집에 가도 생명을 보는 기쁨이 있습니다.
      다 커버린 아이들이 주지 못하는 기쁨입니다. 작은 새끼들을 향한 애틋한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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