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합의한 것을 두고 언론이 분주하다. 합의 직후 언론들은 ‘대타협’ ‘통큰 합의’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양보’와 ‘존중’ 이라는 단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노동개혁 입법화도 양보, 타협, 존중의 정신으로’라는 제목의 15일자 한국일보 사설이 대표적이다. 사회적인 의미와 더불어 긍정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이다. 일반해고는 저성과자나 근무불량자를 해고할 수 있게 하는 것인데,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행법은 징계해고와 정리해고만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해고 도입은 사용자가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길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이런 우려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런 불안을 축소시키는 모양새다. 국민일보는 15일 “쉬운 해고 아닌 공정한 해고하겠다는 것”이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발언을 제목으로 뽑아 기획재정부 국정감사를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최 부총리는 “(일반해고는) 노동시장 유연성과 보호를 동시에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KT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산다'의 스틸컷
 

직무재배치? ‘죽음의 기업’ KT를 보라

동아일보도 ‘저성과자 해고 땐 직무재배치 등 구제조치 반드시 거쳐야’ 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저성과자 해고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성과자도 공정한 인사평가를 거쳐야 하고 평가 결과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들어야 한다”며 “노사정이 판례에 입각해 기준과 절차를 만들기로 협의했기 때문에 성과가 낮다고 무조건 해고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합의’ 아닌 ‘협의’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협의는 아무런 강제성이 없다. 따라서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사실상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노동계가 정부·재계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협의라는 말을 넣어 현행법을 무력화시켰다”라며 “헌법과 노동법 대부분을 협의라는 말로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수성향 언론과 경제지가 강조하는 ‘공정한 인사평가’나 ‘재교육’ ‘업무재배치’ 역시 사실상 악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미 선례가 있다. KT는 ‘부진인력 퇴출 및 관리방안’이라는 프로그램을 가동해 명예퇴직을 거부하거나 노동조합 활동 전력이 있는 노동자들을 내보냈다. 업무재배치라는 이름으로 114 상담을 하던 내근노동자에게 전봇대 점검을 시킨 사례도 있다.
 
민주노총은 “사용자의 자의적 평가에 따라 업무성과가 낮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는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다’는 근로기준법의 정신과 취지를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조 없는 사업자의 노동자는 이런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더 크다. 

 

   
▲ 14일 중앙일보 3면 기사
 
   
▲ 15일 한겨레 1면 기사
 

기업의 ‘선의’에 기대는 ‘장밋빛’ 전망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에 대한 보도도 다를 바 없다. 취업규칙은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준수해야 할 규율과 임금, 근로시간 등에 대해 정한 규칙을 말한다. 현행법상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경우 노동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사회통념상 합의’가 된다면 이 절차 없이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가능하게 하려고 한다.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것이다. 임금피크제는 사실상 임금삭감이기 때문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되기 때문에 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취업규칙 변경요건이 완화되면 노동자 동의 없이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다. 그리고 언론들은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청년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동아일보는 15일 ‘청년 일자리 5년간 82만개 늘 것’ 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합의로 줄어든 인건비를 모두 청년 고용에 투입한다고 가정했을 때 2019년까지 81만8649명이 새롭게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며 “임금피크제를 통해 절감한 재원으로 청년 고용에 나선다는 합의문에 기초해 이 같은 수치를 구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 도입이 청년층의 일자리 확대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수차례 나왔으며 특히 이번 합의의 경우 기업의 의무는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언론은 이런 점을 지적해야 한다. 합의문을 보면 “청년 고용을 확대하도록 노력한다”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식으로만 돼있다. 사실상 기업의 ‘선의’와 ‘자율’에 기대는 꼴이다. 

중앙일보 또한 기업의 선의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신문은 14일  ‘노동개혁 찬성 80% 국민여론이 타협 이끌었다’는 기사에서 “능력과 역할 중심으로 바뀌면 하청업체 근로자라고 해서 낮은 임금을 받는 사례가 사라진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체계가 형성된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이 주장의 근거로 ‘임금피크제’를 시작으로 하는 임금체계 유연화를 들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 다수가 직종에 상관없에 최저임금에 가까운 임금을 받는 현실을 본다면 임금유연화는 정규직 노동자 임금을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 하락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모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로 가능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노사정 합의문을 보면 정부가 기업에 주는 혜택은 전혀 모호하지 않다. “정부는 청년고용을 확대하는 기업에게 세대간 상생고용지원,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세무조사 면제 우대, 중소기업 장기근속 지원, 공공조달계약 가점 부여 등 정책적 지원을 강화한다” 등으로 명시하고 있다. 

 

   
▲ 민주노총이 15일 노사정 합의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가장 큰 피해자는 대기업 정규직이 아니다

이번 합의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사람을 누굴까. 조선일보 사설만 보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처럼 보인다. 조선일보는 15일 사설에서 “1980년대 후반 불붙기 시작할 때의 노동운동과 지금 노동운동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며 “평균 연봉이 9700만원이나 되는 현대자동차 노조가 정년을 65세까지 늘려달라며 파업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을 누가 약자의 호소라고 생각하겠느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대상은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들이다. 한겨레는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대부분 취업규칙보다 훨씬 구속력이 강한 단체협약(단협)을 두고 있어 취업규칙이 바뀌더라도 단협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3%이며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률은 2%뿐이다. 사실상 대다수 노동자들이 울타리 밖에 있다.  

노조 활동을 하던 노동자들 역시 위협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은 15일 사설에서 “법에도 없는 저성과 해고가 행정지침으로 도입될 경우 표적은 노조간부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노사정 합의가 청년과 비정규직을 볼모로 정규직 노조 무력화를 겨냥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라고 분석했다. 

한국일보는 15일 사설에서 “정부와 새누리당이 노사정 합의 불발 시 단독입법 불사를 예고했던 터여서 타협안 도출은 여러모로 다행한 일”이라며 “노사정이 어렵게 이룬 합의인 만큼 여야도 양보와 타협, 존중의 정신을 살릴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양보와 타협, 존중의 정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