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세상에 대하여

동성애, 동성애자, 동성결혼, ...종합

주방보조 2015. 6. 28. 08:13

1.성경

 

1)구약: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위기 18:22)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레위기 20:13)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남창이 있지 못할지니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신명기 23:17,18)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열왕기상 14:24)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열왕기상 15:12)

그가 그의 아버지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열왕기상 22:46)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 (열왕기하 23:7)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 (욥 36:13,14)

 

2)신약: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로마서 1:26-27)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린도 전서 6:9)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디모데 전서 1:9-11)

       

2. 추세

 

1)미국:

미연방대법원이 26일 동성결혼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 50개 주에서 동성 결혼이 정식으로 합법화됐다.
 
오늘 미연방대법원은 9명의 판사 가운데 찬성이 5명 반대가 4명으로 동성결혼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미국 36개 주와 워싱턴 D.C.에서만 동성결혼이 허용되었던 것이 전국적으로 번지게 됐다. 이에 따라 미 사회 전반에 걸쳐 커다란 변화가 예고된다.
 
미연방대법원은 지난 4월28일 동성 결혼의 전국적인 허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공청회를 열고 심의를 시작했었고 6월30일 이전에 최종 판결을 내릴 방침이었다<본지 인터넷보도 제목, 4월28일 미국의 영적 운명 갈림길>. 이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연방 제6순회항소법원이 미시간, 오하이오, 켄터키, 테네시 주 등 네 개 주의 동성결혼 금지 방침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리자 이에 승복하지 않은 이들은 대법원의 개입을 촉구했었다<본지 인터넷보도 제목, ‘정의와 인권의 마지막 보루’ 연방대법원 결정만 남았다>.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결혼은 한 국가의 사회적 질서의 이정표다. 동성 커플이건 이성 커플이건 이러한 원칙을 존중하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이날 찬성표를 던진 대법관은 앤서니 케네디(로마카토릭), 루스 긴즈버그(유대교), 스티븐 브레이어(유대교), 소니아 소토마요르(로마카토릭), 엘리나 케이건(유대교) 등 5명이고, 존 로버츠(로마카토릭) 대법원장을 비롯한 안토닌 스칼리아(로마카토릭), 클레런스 토마스(로마카토릭), 사무엘 알리토(로마카토릭) 대법관 등 4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반대 의견에 선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성적 취향이나 동성결혼의 확장에 대한 선호에 상관없이 미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오늘의 결정을 기릴 것이다. 그러나 헌법을 기리지는 말아 달라. 이 결정은 헌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한편 미연방대법원의 합헌 판결이 나자 워싱턴 D.C와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들은 무지개색 깃발을 들고 거리로 뛰어나와 환호를 했고, 미국 교회와 한인 교회, 보수단체와 대다수의 시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큰 충격에 빠졌다.(크리스찬투데이)

 

"결혼보다 심오한 결합은 없다. 결혼은 사랑, 신의, 헌신, 희생 그리고 가족의 가장 높은 이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관계를 이루면서 두 사람은 이전의 혼자였던 그들보다 위대해진다.
이들 사건들의 일부 상고인들이 보여주었듯이, 결혼은 때론 죽음 후에도 지속되는 사랑을 상징한다.
이 남성들과 여성들이 결혼이란 제도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혼을 존중하기 때문에, 스스로 결혼의 성취감을 이루고 싶을 정도로 결혼을 깊이 존중하기 때문에 청원하는 것이다.
그들의 소망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 중 하나로부터 배제되어 고독함 속에 남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법 앞에서 동등한 존엄을 요청하였다. 연방헌법은 그들에게 그럴 권리를 부여한다.
연방 제6 항소법원의 판결을 파기한다.
이상과 같이 판결한다."
-판결문 마지막 문단

 

 

2).한국:
1.박원순 서울시장이 동성애 비판을 막는 동성애자 차별금지법과 유사한 ‘서울시 공무원 인권행정강령’을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인권행정강령안에는 ‘서울시 공무원은 시민들이 동성애 등 어떤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동성애자 등 특정 집단의 문화적 다양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본보가 25일 입수한 서울시인권위원회 회의록 등에 따르면 인권행정강령안은 공무원 복무규정과 비슷한 개념으로 박 시장의 지시로 추진됐다. 2013년 5월 30일 열린 제2차 서울시인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서울시인권위의 한 위원은 “인권행정강령안의 출발은 시장님 지시로, 영국 경찰공무원들이 쓰는 인권 매뉴얼을 주시고 추진해보라고 하셨다”고 설명했다. 다른 위원은 “인권행정강령은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인권행정을 위한 가이드라인이라고 해서 몇몇 나라에 있는데 강령의 형태로 제정된 것은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인권행정강령이 제정되면 동성애를 비판한 서울시 공무원을 처벌할 수 있게 된다. ‘인권행정강령을 지키지 않으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느냐’는 질문에 한 위원은 “일반적으로 공무원은 성실 의무가 있어 관련 규정을 준수할 책임이 있다”면서 “인권행정강령이 선언되고 내부방침으로 정해지면 구속력이 없더라도 규제력은 있다.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행동강령을 위반하면 처벌 받는 것처럼 유사한 효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이 ‘인권행정강령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있느냐’고 질문하자 다른 위원은 “(박 시장) 지시사항이라 너무 오래 끌면 안 된다”고 답했다. 

문제는 인권행정강령이 제정되면 단순히 동성애 차별을 금지하는 수준을 넘어 공무원들의 동성애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고 동성애에 우호적인 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내용은 1900만원의 서울시 예산이 투입된 ‘공무원 인권행정강령 제정을 위한 기초연구 보고서’(한국인권재단)에 잘 나와 있다.

한국인권재단은 보고서에서 “인권행정은 행정이 인권을 보호(protection)하고 증진(promotion)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증진은 단순히 소극적으로 인권이 침해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시민의 인권이 풍부하고 충분하게 보장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을 뜻한다”고 기술해 놨다.

실제로 서울시 인권기본조례도 ‘서울시장은 시민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하여 노력해야 하며 관련 시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제4조 제1항)고 돼 있다. 만약 인권행정강령안이 통과되면 서울시 공무원들이 동성애자들의 인권 침해를 막는 차원을 떠나 동성애에 대해 비판적인 교회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서울시는 인권행정강령안을 만들기 위해 2013년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하고 지난해 5월 자문회의까지 열었다. 시 관계자는 “인권행정강령안이 공무원 윤리강령 등과 중첩된다는 의견이 제기됐고 서울시 인권행정이 어느 정도 정착된 후 추진하자는 의견이 나와 잠정 보류한 상태”라고 설명했다.(국민일보)

 

2.[MBN스타 손진아 기자] 과거 금기시하던 동성애 코드가 대중문화 속에서 점점 진화하고 있다. 현재 영화를 비롯해 뮤지컬, 연극, 드라마, 개그 프로그램 등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는 동성애 소재를 다루며 마이너리티의 공감대를 이끄는 것은 물론, 일상적인 대상화를 하고 있다.

동성애 코드는 1996년 제작된 퀴어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에서부터 본격 등장했다. 이후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다양한 퀴어 영화들이 줄줄이 탄생했다. 그렇다면 대중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는 동성애 코드의 등장은 언제부터였을까.

동성애 소재로 한 상업영화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를 시작으로 ‘번지점프를 하다’(2000), ‘왕의남자’(2005), ‘쌍화점’(2008),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뜨거운 것이 좋아’(2008),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등이 등장했다.

 

대중들에게 낯설거나 극단적인 반응을 일으키던 동성애 코드는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서서히 녹아들었다. 특히 대중성을 띈 영화들은 동성애에 대해 노골적이지도, 특별한 시선으로도 비추지 않으며 일반적이게 다루었다.

여기에 사회적 분위기가 개방되면서 대중들의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여성 관객들은 훈훈한 외모를 가진 남자 배우들의 커플 연기에 대해 재미와 흥미를 느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연계에도 동성애를 다루는 작품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동성애 코드 작품에는 뮤지컬 ‘헤드윅’ ‘쓰릴미’ ‘풍월주’,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뷰티풀 선데이’ ‘엠, 버터플라이’ ‘웨딩스캔들’ 등이 있다.

이 작품들 역시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 관객들이 공연장으로 몰려들면서 티켓파워를 유지, 큰 인기를 입증했다. 특히 조승우, 오만석, 김동완 등 다양한 스타들이 출연했던 ‘헤드윅’은 연일 매진 세례를 기록하기도 했다.

능동적인 관객을 모으는 영화, 공연과는 달리, 방송은 수동적인 시청자들이 있기에 동성애 코드를 사용한다는 점에 대해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동성애를 다룬 1999년 방영된 KBS 단막극 ‘슬픈 유혹’은 국내 방송가에 동성애 코드를 녹인 드라마의 시초로 꼽힌다. 이후 뜸하던 동성애 코드는 2010년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동성애 커플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됐다.

특히 ‘인생은 아름다워’ 속 동성애는 동성애자 커플을 통해 그들의 일상과 사랑을 비교적 현실적이게 그리며 대중들의 호기심을 샀다.

이후 지상파 드라마에서도 동성애 금기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드라마 ‘커피프린스’(2007), ‘바람의 화원’(2008), ‘아름다운 그대에게’(2012), ‘응답하라 1997’(2012), ‘우와한 녀’(2013), ‘오로라 공주’(2013) 등 동성애 분위기를 녹인 다양한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동성애 코드는 ‘개그콘서트’ ‘SNL코리아’ ‘코미디빅리그’ ‘마녀사냥’ 등 각종 개그,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홍석천은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일명 ‘퀴어 개그(동성애 개그)’를 선보이며 개그 소재의 장을 넓힌 것은 물론, 색다른 웃음까지 선사하고 있다.

가요계에도 동성애 코드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에 동성애 분위기를 집어넣어 파격적인 표현을 하는 것으로, 고은의 ‘사랑해사랑해사랑해’, 백지영의 ‘사랑 안 해’, 반디의 ‘여자를 사랑합니다’, 김동희의 ‘죽을 것 같아’, 케이윌의 ‘이러지마 제발’ 등이 큰 화제를 모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사회적 이슈가 되는 동성애 코드 등을 시청률,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사용한다. (동성애 코드로) 노이즈 마케팅을 할 수도 있다. 최근에 대한 이슈를 반영한 마케팅 차원에서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라며 “문제는 사회적 이슈를 희화화 할 때 발생한다. 최근 드라마에서 동성애 코드를 그런 식으로 그린 것은 일종의 마케팅이다”고 밝혔다.

 

3.교회

1)한국기독교 보수:

‘현대사회의 동성애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제목으로 발표한 이상원 교수(총신대 기독교윤리학)는 “동성애 문제를 신학적·윤리적인 관점에서 파악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 동성애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적인 해방운동의 틀 안에서 파악한다”며 “동성애주의자들은 이성애자들을 지배계급으로, 동성애자들을 피지배계급으로 설정한 후,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을 윤리적으로 비판하고 사회적으로 차별하는 것을 ‘부당한 억압과 탄압’이라고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와 같은 억압과 탄압을 철폐하고 자유를 획득하는 것을 지상(至上)의 목표로 제시한다. 진보 진영이 동성애 차별금지법 관철에 올인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며 “하지만 동성애를 피지배층으로 간주해 이성애에서 해방시켜서 자유롭게 행하는 것이 정당한 사회 윤리적 실천이라는 인식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동성애주의자들은 동성애가 선천적으로 주어진 성적 지향이므로 의지적으로 동성애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이(동성애 선천성)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으며,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으로 보고된 자료들은 모두 표본조사의 편향성, 재현에 실패한 실험, 실험 결과에 대한 의도적 조작과 왜곡된 해석 등으로 얼룩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는 인간 신체 구조에 대한 상식적인 정보만 갖고 있어도 후천적 학습에 의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어떤 특정한 성향을 가진 일부 사람들에게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다 열려 있는 가능성”이라며 “이는 동성애는 ‘도덕적인 선택의 문제’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성애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거부하는 근거’에 대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 질서’는 남녀 사이의 성관계이며, 동성 간의 성관계는 역리(롬 1:26-27) △하나님께서는 동성 간의 성교를 비윤리적인 행위로 금지시키셨으며(레 18:22), 이는 보편적 도덕률이나 통상적인 사회적 규칙에도 어긋남 △성관계의 중요한 목적은 후손의 번성에 있는 것인데, 동성애를 통해서는 후손을 얻을 수가 없으며, 동성애는 생물학적인 순리와도 맞지 않는다 등을 꼽았다.

이 교수는 또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을 부당하게 차별한다’는 주장에 대해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윤리적인 비판이 부당한 억압이라고 생각하지만, 윤리적 비판은 사회적 차별과는 다른 것”이라며 “윤리적 비판은 바른 삶의 길이 무엇인가를 이론적으로 제시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고자 하는 것일 뿐 사회적으로 어떤 불이익을 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동성애주의자들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자신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데, 이는 ‘이념이나 윤리적 입장의 실현은 법제화의 단계에까지 나아갈 때 비로소 열매를 거두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간파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들이 시도하는 법제화는 법적 강제력에 의지해 건전한 보편적 윤리규범을 파괴시키고, 이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에 대한 심각한 역차별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성애주의자들은 ‘성적 지향’ 항목을 차별금지법안에 포함시켜, 교육기관에서 동성애가 비윤리적인 성관습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으며, 만일 이 규정을 어길 경우 법적인 제재를 받도록 하고 있다”며 “이 말은 성관계에 대하여 학교가 아무런 가르침이나 입장 표명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렇게 되면 사회의 성도덕은 심각한 자유방임적 ‘무규범 상태’에 빠져들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교회는 동성애자들을 따뜻하게 이해하며 존엄한 인간들로 대우해야 하지만, 이들이 동성애를 회개하고 이성애자로 돌아올 때까지 지속적인 관찰과 감독을 해야 한다”며 “이들이 끝끝내 이성애로 돌아오기를 거부한다면, 교회는 순결 유지를 위하여 단호하게 이들을 교회 공동체에서 내보내는 조치를 취해야 하며, 교회의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직분자로 섬길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끝으로 이 교수는 “동성애자들을 보호하는 법을 만드는 것은, 법이 건전한 윤리적인 입장은 억압하고 불건전한 윤리적인 입장은 옹호하는 이상한 꼴”이라며 “법은 건실한 윤리적인 근거 위에서 제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동성애 안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자들을 보호하기보다는 동성애에서 빠져 나온 자들을 보호하고 격려하는 방향으로 제정되어야 한다”고 했다.(크리스천투데이)

 

2)한국기독교 진보:

 

동성애자 권리 보장 위해 힘써야(전주화평교회 이영재 목사)

 문: 목사님께서는 현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진화론이나 동성애의 문제 등에 대해서는 어떤 해석의 입장을 갖고 계십니까?  

이: 그런 문제들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 자신에 대한 대답이거든요. 동성애 논쟁만 해도 여러 논쟁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보수적인 목사님을 만났더니 동성애자들이 축제한다고 하니 기도해야 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성애란 문명의 소외 현상이에요. 명백히 창조 질서에는 어긋나는 것이고 우리의 죄성이 드러난 현상이지만, 동성애자들을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병자나 장애우를 억압하면 안 되듯이 DNA의 잘못으로 인해 생긴 동성애자들을 따뜻한 눈으로 살피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성결혼을 했는데, 법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이혼을 당해도 아무런 보장이나 위자료도 못 받고 버림을 당하게 되겠지요. 그와 같은 인권유린 사태가 실제로 많이 일어납니다. 버림받고 이혼당하면서 돈 한 푼도 못 받고 쫓겨나서는 자살하는 등의 일들이 비일비재해요. 이런 일들을 법적으로 보호해 줘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성애자들이 법적으로 함께 살다가 헤어질 때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사실 여성보호법입니다.   
문: 이런 입장을 기사화해도 되겠습니까? 보수진영으로부터 공격이 있을텐데요. 
이: 괜찮습니다. 그게 저의 입장입니다. 특히, 여성동성애자들은 법적으로 보호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이 너무 교만하게 공개대회를 연다든가 퍼레이드를 한다든가 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기들의 인권을 찾으려는 시도이고 동성애를 마귀적인 일로 매도하는 보수진영에 대해 저항하는 노력일 수 있지만, 가능하면 겸손하고 조용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동성애자들 중에서 부자들이나 연예인들 등의 세력을 활용해서 캠페인을 심하게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동성애 반대 진영에서는 그러한 공개적인 활동을 도전으로 여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인 통합을 위해서도 조용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법률적으로 세계적인 서구법도 참조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교회가 이런 일들을 선진적으로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성애 문제 말고도 이슈들이 많은데, 저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매우 오픈된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공격당할 것을 우려하셨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최근에도 제가 쓴 칼럼 때문에 공격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지역 신문에다 칼럼을 한 편 썼는데, 보수적인 목사님들이 굉장히 비난하더군요.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보수적인 목사님들이 성경을 너무 교리적으로만 해석하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말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문에다 쓴 글은 엘샤따이, ‘전능하신 하나님’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용어에 대한 여러 학설들을 소개했었지요. 예를 들면, “W.F. 올브라이트라는 신학자는 엘샤따이에 ‘전능하신’의 뜻이 없고, 원래 의미는 산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엘샤따이는 산의 하나님이라 번역해야 한다.” 우리말로 하면 산신령인 셈이지요. 그가 80년 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산의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한 겁니다. “둘째로 해리엇 러츠키 교수가 샤따이는 여성의 유방을 가리킨다. 여성의 두 젖가슴의 하나님이다. 그 젖가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애기를 키우고 양육하는 하나님의 여성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긍휼의 하나님, 자궁의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래서 ‘엘샤따이’에는 여성의 생명성이 하나님에 빗대어져서 표현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소개했더니 난리가 난 겁니다. 저를 두고 이단이냐 아니냐 논란이 일었지요. 제가 보기에 이것을 문제 삼는 목회자들은 공부를 안 하는 분들입니다. 그런 학술적인 연구에 대해서 마음을 닫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설교는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아지고 성도들은 성경을 아주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문: 목사님께서는 소위 진보적인 해석의 관점으로 설교를 준비하시는데, 성도들과의 세계관의 차이라든가 여타의 문제로 설교의 위기를 느껴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이: 이런 사례는 있었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다른 교회에서 옮겨 온 사람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보수적인 교회에서 목사님에게 상처를 받아 교회를 옮기는 과정에 우리 교회를 소개받았다든지 인터넷에 있는 저의 이야기를 봤다든지 해서 우리 교회로 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신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제가 WCC에 대해서 설교하거나 교회연합운동의 중요성 등을 이야기하면 혼란스러워합니다. 한번은 제가 부처님오신날에 송광사에서 축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그런 성도들에게 말하면 100% 반대합니다. 불교를 사탄 마귀 앞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오죽하겠어요? 이런 사람들은 교육이 잘 되지 않습니다. 워낙 보수적인데다 고집도 세고 세계관마저 닫혀 있지요. 그래서 그런 분들이 교회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제가 행동을 자제합니다. 그 분들을 자극하지 않으려고요. 설교에서도 그런 생각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런 분들은 바뀌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가르치는 자로서의 좌절감이 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수교단들은 너무 배타적입니다. 타종교에 대해서 이해하려 하지 않고 대응하려고도 하지 않죠. 그저 멸망 받을 자식들이라느니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이라느니 정도로만 치부해버리니까요.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의 입지가 좁아지게 됩니다. 가톨릭은 이미 담을 허물고 팔을 벌려서 많은 신도들을 품에 안았어요. 최근에 가톨릭교도가 많이 늘었잖아요? 그들 대부분이 개신교에서 건너간 사람들입니다. 개신교 교인이 많이 줄었어요. 그런데도 점점 배타적이고 다른 세계와 대화하지도 않은 채로 자기중심적으로 굴면 개신교의 신도수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철야기도하면서 동성애법 반대에 투쟁적으로 나서는 등의 행동에 목숨을 건 듯이 배타적으로 활동하면 교회는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런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품으며 이해하려고 해야잖아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이지 않습니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문: 설교자로서의 고민이 많으시겠습니다. 그러면, 바람직한 설교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요즘 같은 설교의 홍수 시대에 바람직한 설교의 사례는 많이 있겠지요. 저는 바람직한 설교의 양태보다는 설교의 마지노선 같은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날에 살아있도록 만드는 해석활동이기 때문에 성경을 자기의 선입견이나 사상, 이념에 의해 전단하려는 자세에 대해 경각해야 합니다. 편협한 자기주관을 성경에다 주입시키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문: 마지막 질문입니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권하고 싶으신 설교자로서의 자세를 알려주시겠습니까?  

 


이: 주석을 참조할 때 성경이 들려주는 말씀을 받도록 집중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혹은, 주석의 정보대로 성경말씀을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말씀 자체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주제를 포착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성경 구절을 자의적으로 구분해서는 안 되겠죠. 성경말씀 자체를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읽고 그것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한 주제를 성경말씀으로부터 받았다면 과감하게 선포하는 것이 그 다음의 단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듯이 모든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사랑을 선포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구약의 본문으로 설교하더라도 항상 신약을 참조해서 설교를 준비하고 예수를 증언해야 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에 대해서만 증언하면 유대교 설교가 되어 버리는 거죠. 다윗을 본 받아라는 식의 설교도 있는데, 그런 설교는 유대교 설교입니다. 모든 설교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에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사랑을 성도들에게 질문하고, 또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줘야 사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메시지를 통해 성도들은 다시 힘을 얻고 절망에 빠졌더라도 다시 한 번 격려를 받게 되거든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이것이 설교의 초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성도가 있더라도 말씀을 가지고 그 성도를 비판하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벗어난 것은 모두 도덕적 교훈에 지나지 않죠. 
주일 대예배 설교에는 도덕적인 설교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착하게 살아라, 담배를 피지마라, 도둑질하지마라, 간음하지마라 등의 도덕적 설교는 성경공부 시간이나 소그룹 모임이나 수요 예배 때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소위 주일대예배 때는 설교가 성만찬이 되도록,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의식이 되도록,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합니다. 
또 하나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성도들을 많이 전도하려고 상업적인 전술을 구사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칼빈이 말했듯이 구원받을 사람을 하나님이 모두 예정해 놓았으니까, 너무 애써서 교회를 키우려고 아무나 교회로 받아들이는 일을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서비스를 지나치게 제공해서 나중에는 부교역자들, 목사님들과 전도사들까지 서비스맨으로 전락해버리는 결과가 초래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 오면 성도가 봉사하고 훈련하고 자기를 더 낮추며 수행하도록 인도해줘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소위 기독교적인 영성이 신선하게 살아있게 되는 거죠. 부목사들까지도 철저하게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만 영적으로 성도들을 엄격하게 지도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래야 하는 겁니다. 교회가 일반회사처럼 서비스를 제공하고 헌금하게 하는 등의 문화를 형성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설교에서부터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아무리 작은 교회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만족하고 기쁘게 생활하면서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꿈을 꾸지 말았으면 합니다. 말씀을 연구하면서 그냥 그 자체를 보배로 느끼고 행복해 하며 가난한 생활에 자족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 장시간 귀한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베리타스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