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고1 교신이에게
1박2일 놀러가게 허락 해준다든지
축구화가 필요하지 않느냐 은근히 물어 본다든지
12시까지 자는 놈을 그냥 내비둬라고 한다든지
딱 2일 공부하고 시험봐 놓고, 공부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안 오른다고 하는 놈에게, 그 정도면 잘 한 것이라고 한다든지...
나실이는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못내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한마디 툭 하고 던졌습니다.
'아버지는 가만 보니까 외강내유이신 것같아요'
겉보기엔 강해 보여도 속은 물러터졌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주 약간의 책임 추궁도 곁들여서
저로 하여금 저런 기이한 말을 듣게 한 교신이에게 물었습니다.
'교신아, 누나가 아빠보러 외강내유라는데, 외강내유가 뭐냐?'
녀석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즉각 그것도 아주 임팩트 있게 정답을 내뱉었습니다.
'쎈척이요'
ㅎㅎㅎ
...
사실 전 겁이 아주 많은 사람입니다.
어딜 가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맞부딪쳐 싸우기보다는 물러나서 버티는 스타일이고
아이들에게도
강요보다는 자율을 ...뭐, 충신이의 절대 안 그렇다는 항의가 빗발치는 것이 느껴집니다만^^...강조하였습니다.
엄격한듯 호통을 치지만 그때마다 혹 아이들이 상처를 입을까봐 전전긍긍 하기 일쑤입니다.
고등학생이 되었어도 묵묵히 놀고만 있는 교신이가 걱정이 되어
이것저것 신경을 쓰다가
우리집 안기부장인 나실이에게 아버지의 속마음이 딱 걸린 것입니다.
아버지는 외강내유...쌘척하는 그러나 나약한 아버지.
...
.
아들들은 공통으로 초딩 6학년 때 본능적으로 아버지가 종이호랑이라는 것을 알아 채고 제 멋대로 살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오랫동안 아버지는 외강내유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 온 딸들이 있어서 ... 혹은 모르는 척 해왔는지는 모르지만 ... 즐거운 인생이었습니다.
아...나실이에 의해서 ...외강내유 아버지가 공식화 된 이후로는
딸들도 아들들처럼 이 마음여린 아버지를 홀대하는 듯 여겨져 똥 싼 강아지마냥 눈치만 살살 보고 있습니다.
시장에 갈 때도 혼자서 그냥 갑니다.
자전거도 혼자서 그냥 탑니다.
한강에 갈 때도 혼자서 그냥 갑니다.
딸들에게 거절 당하여 마음 상할까봐 겁이나서...아예 제안을 안 하고 있습니다.
...
자식들에게 부모는 자기 정체를 들키면 안 됩니다.
들키는 순간 즐거움은 사라지고 초라한 추억만 남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제일 작은 화분에 심겨져 주변으로 온통 덩굴을 뻗치는 나팔꽃은 두 송이 작은 연보라빛 나팔꽃을 피워내었습니다.
제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하는 데는 이 나팔꽃이 자식들보다 낫습니다.^^ ㅎㅎ
-
저야 뭐...제가 특이케이스였으니 저한테는 자율은 안주는게 맞았죠.
답글
시장갈때나...자전거 타거나, 한강갈때 저 부르세요.하는일이 없다면 같이 가드릴게요 ㅋㅋㅋㅋ
다들 바빠서 같이 하기가 힘든것이겠죠...누나들은 일하느라(혹은 일 구하느라) 바쁘고, 원경이는 음...자기계발하는데 바쁠테고, 교신이는 그래도 같이 가자고 하면 거절은 안할텐데.
나실이누나가 아버지가 변해온것을 잘 알아서 하는 말일거에요.
아버지 말씀대로 여성호르몬이 많아지고 계시니...저 어릴때의 아버지와는 많이 달라진거죠.외강내유 자체인 아버지가 아니고 외강내유(이것도 맞는말은 아닌것같은데)로 천천히 변해오신거에요.
맘상해하지 마세요.우리에겐 영원히 든든한 아버지신데... [비밀댓글] -
-
-
아이들 교육에는 '외유내강'이 좀더 나은 것 같아요.
답글
외강이라는 게 따지고보면 정말 강해서가 아니라 교신이 말처럼 '쎈척'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아이들에게 쎈척할 때는 멀리 도망가더니 저를 죽이고 접급하니까 좋다고 곁으로 다가오더군요.
'지는 게 이기는 것'그게 단지 부부사이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라는거죠?
슬프다기보다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한 것 같네요. -
하하..
답글
아버지..
알면서 져 주고 속아주는 존재 아닌가요
내 손으로 낳은 자식이니 어쩌겠어요
외유내강이든 외강내유든
사랑하고 있음이 서로에게 확인된다면 안될까요?
충신이가 걱정말라 하였으니 걱정마시고요 ^^
'칠스트레일리아 > 다섯아이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년전 사진처럼 보이는...부부 (0) | 2015.08.16 |
---|---|
충신아 생일 축하 한다... (0) | 2015.08.08 |
아침고요수목원3(풍경) (0) | 2015.07.25 |
아침고요수목원2(사람사진) (0) | 2015.07.25 |
아침고요수목원에 가다... (0) | 2015.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