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오후 저의 병상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울대학병원 어린이병원 6209호...
정확하게 말하면
병상의 15살짜리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로서의 생활입니다.
벌써 4일이 되었군요.
아마 내일이면 끝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막내놈이 워낙 까다로운 놈이라 하루 더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날은 준비하는 날이니 우리식구 모두 동원되었습니다. 물론 군에 있는 맏아들이나 재수학원에 갇혀 지내는 세째딸은 참석할 수 없었구요.
둘째날 아내는 오후에 시작된 수술과 회복을 지켜보느라 휴가를 내었고, 밤에 진실과 나실은 그 먼 직장에서 그 늦은 시간에 와서 수술받고 신음하고 있는 막내를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내리사랑...의 현장이었습니다.
저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3일에 3만원하는 노트북을 빌렸습니다.
세째날은 가장 아프다는 날인데 과연 소변을 보기위해 휠체어를 이용하여 코 앞의 화장실에 가야만 하는 참상이 새벽 1시, 오전 10시 오후 8시 세번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이건 오로지 소변줄을 끼우지 않겠다는 놈의 자존심이 만들어낸 장면이었습니다. 회복실에서 각성한 채 바지가 입혀진 치욕에 대하여 끔찍해 하면서...
이후 저녁 내내 lol구경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은 네째날
아침에 회진을 온 교수가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아플리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부목을 벗겨내더니, 녀석의 수술한 다리를 들었다 놨다 흔들어 대기 시작하였습니다. 놈은 단말마를 지르고, 교수는 교신이에게 힘을 빼라면서 화를 내고...곁의 주치의 1년차와 치프로 보이는 고참 레지던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겉모습이 상당히 온유해 보여서 유순한 분인줄 알았더니...이분도 독재자 형 교수였던 것입니다. 지켜보면서, 교신이가 불쌍하다 생각이 들면서도, 이렇게 해서라도 빨리 낫는다면 좋겠다...이중적인 생각이 혼재했습니다.
...
그리고
이 아수라장이 끝나자 곧이어 두가지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하나는 메국에 계신 어머니께서 며칠전부터 갑자기 식음을 전폐하시고 기력을 상실해 가셔서 병원을 갔다 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혼 후, 홀로 지내시던 매형이 새벽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급보였습니다.
교신이가 목발을 집고 움직여주기만 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원주로 가보아야 하는데, 이 놈은 노력은 한다면서도 비명을 그치지 않으니...조카와 통화하며 가신 매형이 불쌍하여 한바탕 울고, 내일이나 내려갈 수 있을 것같다고 하고 말았습니다.
...
교신이 침대 곁에 목발을 기대 놓았습니다. 나 좀 살려달라고 하는 의미에서...
그러나 교신이는 몇시간 째 잠을 자기만 하고 있습니다. 자기 좀 살려달라고...
...
아프고, 늙고, 죽고...인생이 참...무상입니다.
병실 밖 세상은 온통 푸른 나뭇잎으로 가득한데...
-
저도 아버지 병상에 드나드느라 오월의 푸르름을 지각하지 못하네요.
답글
아버지 병실은 의식있는 환자들인데 옆 병실은 모든 환자가 콧줄이나 호흡기를 끼고 있어 맘이 심난합니다.
늙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는 것이
큰 복이란 것을 요즘 더욱 느낍니다.
매형이 돌아가셨다니 인따깝네요.
유가족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
힘들고 마음 아픈 상황이군요.
답글
보호자로..환자로 병원에 장기간 있어본 입장에서 헤아려보니
내 건강 뿐 아니라 가족이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
교신이가 수술을 했군요.
답글
제 일이 아니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되네요.
오늘 내일은 도저히 시간을 할애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아쉽네요.
빠른 치유를 기원합니다.
돌아가신 분께는 명복을, 가족께는 위로를 보냅니다.
어머님께서는 좋은 결과 있으시길 아울러 기원합니다.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어요.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게 되는 일들도 많지만 상실감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지속되지 않을까 싶어요.
응원보내드릴게요. -
그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네요
답글
그렇게 우리 인생의 수는 놓아지고 있군요
슬픔과 희락의 섞여가며.
다 완성하신 후에는 우리도 이 장막에서 떠나게 하시겠지요.
그러나 아직은 이 땅위에서의 삶이니 함께 힘내어 가십시다.
그냥 그분 지금도 바라보시고 계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으며
걸어요......힘을 내시고.-
주방보조2014.05.17 09:07
위로 말씀 고맙습니다.
회자정리이니 갈 사람은 가는 것이고 거자필반이라 했으니 하늘에서 다시 보게 되겠지요.
나이가 들어가니 그런지
오늘따라 한강공원의 아침 장미들이 더 예뻐 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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