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장로교를 대표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과 통합은 목회 세습을 금지하기로 결의했다. 목회 세습은 교회 권력과 부의 대물림이라는 비판과 함께 한국교회의 사회적인 신뢰도를 떨어트린 주범으로 지목돼 왔기에, 교계는 이들 교단이 추락한 한국교회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개혁적인 결단을 내렸다고 박수쳤다. 하지만 최근 예장합동과 통합은 내부에서 총회 결의에 대한 논란을 겪으면서 세습 금지를 천명한 본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먼저 예장합동 총회는 세습 금지를 확정하는 절차를 보류했다. 예장합동은 지난해 9월 98회 총회에서 "교회 세습은 불가하다"고 결의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총회23] 예장합동도 교회 세습 불가) 하지만 총회 임원회는 3월 13일 회의에서, 교회 세습에 대한 내용을 오는 9월 99회 총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세습 관련 회의록 채택을 유보했다.
전체 회의록에서 한 건만 채택을 보류하는 이례적인 상황에 대해, 임원회는 98회 총회 때 정치부가 결론 내린 것과 총대들에게 보고된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를 댔다. 당시 정치부 내에서는 "세습은 불가하고 헌법대로 하기로 하다"라고 결의했는데, "세습은 불가하다"고만 보고했다는 것이다. 몇몇 정치부원들은 98회 총회가 끝난 직후인 작년 10월, 세습 금지 결의가 교단 헌법과 모순된다며 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의를 제기한 목사들은 총회 헌법이 당회장직을 친인척에게 물려주는 행위를 금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은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절차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친인척에게 담임목사직을 승계하더라도 헌법의 절차를 거쳤다면 세습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 9월 총회에서 세습 금지법을 가결하고 즉시 시행하기로 결의한 예장통합도 총회 결의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총회 헌법위원회(조면호 위원장)는 지난 1월 13일 세습 금지법을 가결한 총회 결의는 유효하지만, 법안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즉시 시행하기로 한 결의는 명백한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관련 기사 : 예장통합 세습 금지법 시행, 법리에 가로막히나) 총회 임원회가 재심의를 요청했지만, 3월 18일 회의에서도 헌법위는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목회 세습을 금지하기로 한 총회 결의는 선언적인 의미로 법적인 강제력은 없다고 헌법위는 해석했다. 조면호 위원장은 구체적인 법 조항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교회의 고유 권한인 담임목사 청빙을 제한할 수는 없다고 했다. 만약 헌법 개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총회 결의로만 법을 시행한다면, 헌법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총회 임원회는 3월 20일 회의에서 헌법위의 보고를 받지 않고 보류했다. 헌법위의 해석이 세습 금지법을 가결한 총회의 정신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임원회 최기학 서기는 "총회에서 세습 금지 결의가 효력이 없다고 인정하면 헌법이 개정되기 전에 세습을 감행하려는 교회들을 막기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최 서기는 정기 노회가 끝나는 5월 중순까지 임원회는 헌법위의 보고를 논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