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남이 5월 24일 결혼했다. 청첩장을 돌리지 않고, 30여 명의 양가 직계 가족만 모여서 조용히 치렀다. 서울시 비서실에서도 언제 어디서 결혼식이 열리는지 몰랐고, 박 시장은 이날도 공식 일정을 수행하다가 잠시 시간을 내어서 결혼식에 참석했다. 언론은 이날 혼례를 '조용한 결혼식'이라면서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공직자에게 기대하는 국민들의 기대가 보도 논조에 묻어 있다.
100주년기념교회 담임 이재철 목사의 아들 네 명 중 장남이 올해 1월 18일 결혼했다. 8000명에 달하는 출석 교인 대부분은 자기 교회 담임목사의 장남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미리 듣지 못했다. 교인들에게 알리지 않은 탓에 40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예배당에는 하객들이 듬성듬성 앉았는데도 빈자리가 제법 많았다. 축의금은 거절했지만 식사는 대접했다. 주례는 이 교회 선임 부목사가 했다.
나쁜 일은 좋은 일을 질투하듯이 뒤쫓아 다니기 마련이다. 65세의 늦은 나이에 첫 아들을 독립시킨 이재철 목사는, 대한민국 중년 이상의 남자라면 절대 반가울 리가 없는 전립선암 판정을 4월 말에 받았다.
전립선 조직을 떼어서 검사를 해 보니 12개 중에 11개 조직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 상태가 안 좋은 데 비해 다행히 다른 부위로 전이되지는 않았다. 가급적 빨리 수술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 LA에 있는 새한교회 집회와 지역 목회자 세미나 인도 선약을 깰 수는 없었다. 5월 중순 일주일 동안 미국에서 두 개의 공식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30일에 열리는 양화진음악회에 참석한 바로 다음날 입원해서 6월 초에 수술할 예정이다. 3개월가량 요양한 다음 9월에 복귀할 계획이다.
장남의 결혼식을 교인들에게 일체 알리지 않았던 이 목사는, 자신에게 전립선암이 생겨서 조만간 수술한다는 내용을 5월 들어 두 번이나 교인들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이재철 목사가 교인들에게 설명한 대목을 옮겨 본다.
"제가 암 판정을 받은 뒤 많은 교우님들이 저를 위해 걱정해 주고 계십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제 나이 올해 우리 나이로 65세입니다. 생로병사로 이루어져 있는 인간의 일생 가운데에 이런 과정이 다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인생 종반부를 맞는 제게 하나님께서 적절한 벗을 제 몸에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제 평생 암을 동반자 삼아 살아가야 하는 저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제 인생을 매듭지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제 인생을 겸손하게 매듭짓고 제 목회 생활을 겸손하게 매듭짓는 것이 100주년기념교회에도 덕이 되고 유익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 처와 저는 이런 복된 상황을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우님들께서도 걱정하지 마시고 이 모든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고, 오히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이런 상황을 주신 하나님의 선한 뜻이 우리 교회를 통해서 이 시대 속에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도해 주시기를 간구드립니다."
한국교회 정서상 목사의 질병은 교인들에게 은혜가 안 된다. 목사들이 자초한 면이 있다. 요한삼서 1장 2절을 토대로 빚은 '삼박자 축복'이라는 괴물이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는 영혼의 복과 물질의 복과 건강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된다는 궤변 말이다. 하물며 주의 종인 목사라면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런 정서 때문에 목사는 자신의 병을 교인들에게 쉬쉬 한다. 물론 교인들에게 걱정거리를 주고 싶지 않아 하는 선의(善意)를 가진 경우도 적지 않다.
아들 결혼식을 알리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암 수술도 교인들 모르게 조용히 해도 되지 않을까. 장남 결혼식 이야기는 교인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는데 수술 이야기는 미리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 같은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목회자와 교인들이 모든 희로애락을 공유하고 공감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아들 결혼식을 미리 알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메일로 물었다.
이재철 목사의 대답을 그대로 옮긴다.
"제기하신 질문은 목사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쉽게 답을 얻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암 선고를 받음으로써 3개월여 동안 주일 설교를 할 수 없게 되었지요. 100주년기념교회 교우님들의 헌금으로 신수비를 받는 제가 상당 기간 공적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따라서 제가 교우님들로부터 위임받은 공적 임무를 일정 기간 왜 수행할 수 없게 되었는지를 교우님들께 보고드리는 것은, 그분들의 헌금으로 살아가는 제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의무이지요.
그러나 제 자식의 결혼식은 공적 임무와 상관없는 개인사였지요. 그래서 결혼식 날짜도 제 근무일이 아닌 피정 중에 잡았지요. 만약 제가 그 결혼식을 사전에 교우님들께 공지하였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마치 주일예배 때처럼 결혼식에 참석하려는 교우님들과 자동차가 양화진으로 밀려들었겠지요.
그것은 제가 그동안 우리 청년들에게 강조해 온 검소한 결혼식에 역행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어려운 처지에서 결혼하는 청년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겠지요. 제 자식만 제 자식이 아니라 100주년기념교회 청년들이 모두 제 자식들임을 감안하면, 그런 일은 피해야겠지요. 그리고 그런 결혼식은 앞으로 자신들의 자력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뎌야 할 제 자식과 며느리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요.
결혼식이 끝난 뒤에, 나중에 그 사실을 안 교우님들께서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담임목사 자식의 결혼식을 사전에 교우님들께 공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목회자와 교인들이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신앙 공동체를 일구지 못하게 되는 것도 전혀 아니지요.
저는 오히려 담임목사가 공과 사, 그리고 선과 후를 바르게 구별함으로써, 목사와 교우님들이 진정으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성숙한 신앙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일구어 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