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세상에 대하여

책을 내려는 분들을 위한 8계명(임태주)

주방보조 2013. 5. 15. 06:16

요즘 부쩍 투고 원고가 많아졌습니다. 책을 내려는 분들이 많은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좋은 일이긴 합니다만 투고 원고의 수준이 열의만큼 높지 않아서 무척 안타깝습니다. 출판사마다 투고 원고를 검토하는 담당자를 지정해 놓기 마련인데 저희는 제가 그 일을 떠맡아 합니다. 가장 한가하게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인의 소개를 통해 제 개인 메일로 직접 보내오는 원고도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원고 검토를 가장 빠르고 간결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최종 결정권자인 저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함량 미달의 원고는 어느 출판사를 가든 퇴짜를 맞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그 출판사와 출판방향이 맞지 않아 거절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저자에게 원고에 대한 피드백을 빨리 드리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리라 여겨 저는 가급적 빠르게 가부의 답을 보내는 편입니다.

 

사실 투고 원고가 책으로 출판되는 경우는 매우 희박합니다. 투고하신 분 입장에서야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쓴 옥고일 테지만,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는 출판사업자 입장에서는 정말 의미 있는 원고가 아니라면 냉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원고를 돌려보낼 때 거절의 말을 하는 게 여간 고역스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는 분들께 몇 가지 팁을 드리려고 합니다.

 

 

 


1. 원고만 보내지 마시고 원고의 개요서를 함께 보내는 게 좋습니다. 자신의 프로필도 첨부해주시고요. 투고 원고는 정말 매력적이지 않다면 어느 출판사든 전체 원고를 다 읽어볼 물리적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투고 원고만 읽다가 날 샐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개요서가 있으면 전체 원고 내용을 파악하는 데 용이합니다.

2. 신춘문예 심사도 그렇다고 합니다만 원고의 첫 페이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글 솜씨가 있는지 없는지는 첫 페이지만 읽어봐도 전문가들은 바로 압니다. 투고 원고의 첫 장이 그래서 매우 중요합니다.

3. 목차와 머리말(서문)이 있어야 원고 파악에 용이합니다. 머리말과 목차는 저자가 왜 이 원고를 쓰게 됐는지에 대한 경위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개괄적으로 밝힌 글이라서 검토자 입장에서는 매우 유용합니다. 이것도 없이 보내오는 원고도 무척 많습니다.

4. 편집자는 함량 미달의 원고 수준을 높여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원고의 수준이나 컨텐츠 완성도는 전적으로 저자의 역량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빨리 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생이 걸리더라도 나만의 가치 있고 독특한 책 하나를 갖겠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5. 원고를 투고하기 전에, 혹은 원고를 쓰기 전에 서점에 나가서 유사도서 시장조사를 꼭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쓰려고 하는 내용이 이미 서점에 책으로 나와 있고, 그 책들을 뛰어넘기가 힘들다고 판단되면 출판사에 보내봐야 채택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 경쟁도서들을 보면 내가 쓴 원고의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고, 기꺼이 나무 수십 그루를 베어내도 좋은지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6. 원고를 집필하기 전에 편집자와 미리 집필 방향이나 콘셉트를 의논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다 된 원고를 새로 뒤집어엎고 난리 브루스를 치는,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는 일이 왕왕 있거든요. 물론 잘 아는 편집자가 있거나 집필 콘텐츠가 확실하게 있을 경우에 말입니다.

7. 출판사는 당신의 원고를 책으로 만들기 위해 거금을 투자하게 됩니다. 독자는 그 책을 일이만 원을 들여 구매하고, 또 읽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요. 이 점을 깊게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져야 판매용(상업) 출판이 가능합니다. 그런 정도의 원고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소량 주문 인쇄 해주는 POD회사들이 여러 곳 있으므로 그런 데를 이용해 몇 백부 자비를 들여 찍어 가족이나 친구들과 즐겁게 나누는 것도 바람직하고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8. 출판사로부터 짧고 냉정한 거절의 답신을 받더라도 결코 낙담하거나 노여워하거나 자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엔 롤링의 ‘해리 포터’도 수많은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은 투고 원고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요. 좋은 원고는 언젠가는 눈 밝은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고, 또 출판사와의 궁합이라는 게 있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임태주/ (주) 행성:B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