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6.11 03:06
체험학습 간 딸 12층서 추락死… 학교는 책임 회피에 급급
아버지 정대호씨, 딸 얼굴서 멍 발견하고 '폭력 증거' 수집
민사소송 제기… 大法서 "학교·교육청 관리소홀" 판결받아
2009년 12월 18일 오전 7시쯤, 부산에 사는 정대호(51·의사)씨에게 전화가 왔다. 전날 아침, 정씨의 딸 다금(당시 17세)양을 데리고 전남 화순으로 1박2일 체험학습을 간 부산 A여고 인솔 교사였다. 교사는 "다금이가 다쳤다"고 했다. "어떻게 다쳤느냐"는 질문에, 머뭇거리며 "떨어졌다"고 했다. 딸은 리조트 12층에 묵고 있었다.
정씨 부부는 딸이 실려갔다는 광주광역시 전남대병원 응급실까지 정신없이 달렸다. 도중에 학교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영안실로 바로 오십시오."
정씨 부부는 그날부터 3년 6개월에 걸친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경찰은 단순 추락사로 처리했지만, 부모가 끈질기게 '취재'한 결과 사건 전날 숙소 곳곳에서 술판과 학교 폭력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씨 부부는 "그런데도 학교 측은 우리 부부가 영안실에 들어설 때부터 '저희는 책임 없다'는 말부터 했다"고 말했다.
◇두 가지 쟁점―술과 멍
다금양은 체험학습을 떠나기에 앞서 같은 방 친구가 시키는 대로 소주 5병과 맥주 2병을 사갔다. 체험학습 당일 자정 무렵부터 이튿날 새벽 5시 40분까지 이 술을 같은 방 친구 등 5~6명과 나눠 마셨다. 사망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07%였다.
정씨 부부는 딸이 실려갔다는 광주광역시 전남대병원 응급실까지 정신없이 달렸다. 도중에 학교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영안실로 바로 오십시오."
정씨 부부는 그날부터 3년 6개월에 걸친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경찰은 단순 추락사로 처리했지만, 부모가 끈질기게 '취재'한 결과 사건 전날 숙소 곳곳에서 술판과 학교 폭력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씨 부부는 "그런데도 학교 측은 우리 부부가 영안실에 들어설 때부터 '저희는 책임 없다'는 말부터 했다"고 말했다.
◇두 가지 쟁점―술과 멍
다금양은 체험학습을 떠나기에 앞서 같은 방 친구가 시키는 대로 소주 5병과 맥주 2병을 사갔다. 체험학습 당일 자정 무렵부터 이튿날 새벽 5시 40분까지 이 술을 같은 방 친구 등 5~6명과 나눠 마셨다. 사망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07%였다.
-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요? 한 번도 해본 적 없습니다.” 의사 정대호씨가 10일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개인병원에서 지난달 대법원에서 나온 확정판결문을 읽고 있다. 그는 2009년 12월 여고생 딸이 학교 체험학습 도중 학교 폭력으로 숨진 뒤, 부산시교육청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서 이겼다. /부산=남강호 기자
쟁점은 또 있다. 높은 데서 떨어진 다금양은 뒤통수가 바닥에 닿은 채로 숨져 있었다. 그런데도 왼쪽 눈에 멍이 들어 있었다. 다금이 어머니(48)는 "딸의 멍을 보는 순간 '무슨 일이 있었구나' 직감했다"고 했다. 경찰 조사 결과, 같은 방에 묵은 학생 4명이 만취한 상태에서 30분간 다금양에게 "왜 뒷담화를 하고 다니느냐"고 욕하면서 마구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세면대에 박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 중에서 처벌받은 사람은 폭행을 주도한 학생 1명뿐이었다(사회봉사명령). 나머지는 징계 없이 졸업했다.
◇개미처럼 증언을 모으다
정씨 부부는 "검찰과 경찰이 너무 느렸고, 내놓는 결론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고 했다. 검찰과 경찰이 다금양 주위 학생 10여명을 불러 조사한 끝에 폭행에 가담한 학생 4명을 가려내고, '폭행 사실은 인정되지만 꼭 그것 때문에 뛰어내렸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꼬박 11개월 걸렸다.
다금이 어머니는 "경찰과 검찰이 손 놓고 있다는 판단이 들어, 점심시간에 내가 직접 학교에 찾아가 딸 친구들을 불러내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다"고 했다. 교사들이 저지했다. 숨진 다금양과 절친했던 B양은 "당시 그런 선생님들을 보면서 혐오감을 느꼈다"고 했다.
정씨 부부는 주위 학생들의 증언을 토대로 부산시교육청과 A여고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작년 2월 부산지법은 부산시교육청과 A여고에 대해 "정씨에게 6300만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최근 "이자까지 붙여서 7500만원을 물어주라"고 원심을 확정판결했다.
◇"나는 왜 싸웠나"
정씨는 본지 통화에서 "이런다고 내 딸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 줄 나도 잘 안다"고 했다.
"저는 폭력에 대해, 학교와 검경의 직무유기와 은폐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제가 정말 원하는 건 학교가 사건 발생 당시 진상을 제대로 밝히기보다 덮으려 했던 데 대해 사과하는 겁니다. 경찰과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는 겁니다."
사건 당시 교사들은 소지품 검사도 하고 순찰도 했다. 하지만 형식적이었다. 정씨는 "실제로는 그냥 소홀히 한 정도가 아니라, 교사들이 순찰하다가 학생들이 건넨 술을 받아 마시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경찰과 검찰이 수사해서 밝혀낸 사실이 아니라, 정씨 부부가 민사소송 법정에서 밝혀낸 사실이다.
다금이 어머니는 "우리처럼 아이를 잃은 사람들에게 공판은 고문받으러 가는 자리"라고 했다. 그래도 부부는 "학교 폭력이 있어선 안 되고, 일단 발생하면 학교와 공권력이 투명하고 철저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