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살고 싶다, 최저시급 올려달라”
2014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4월 11일 문을 열었다.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는 국민노총의 참여를 둘러싸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근로자위원이 위원회를 보이콧하면서 파행 속에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6.1% 인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렇게 정해진 것이 시급 4860원이다.일각에서는 현재의 최저시급을 혁명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알바연대는 지난 4월 17일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을 가장 많이 배출한 서울 마포구 소재의 한국경영자총연합회 회관 앞에서 “재벌 사장님들 재산만으로도 가난한 알바들을 구할 수 있다”며 현행 최저시급을 2배가 넘는 1만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은 최저시급 인상을 통해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희망하고 있다.
서울시내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가 물건값을 계산하고 있다. (이 사진과 기사내용은 관련이 없음)/이상훈 기자
한편으로는 시급 4860원마저 지켜지지 않는 현장들이 있다. 주로 중소기업 사업장이다. 지난 2월 청년유니온은 자체조사 결과 2012년 기준 미용실 보조원들의 평균 시급이 3000원이 채 안 되는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청년유니온의 결과 발표 이후 고용노동부는 유력 미용실 프랜차이즈를 대상으로 최저임금 위반 여부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임금노동자 수는 258만2000여명이다. 전체 임금노동자 1751만여명의 14.7%가 이에 해당한다. 최저임금 미만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의 숫자는 2006년 150만3000여명이었으나 해마다 꾸준히 늘어나 지금의 수준이 됐다.
윤가현씨도 258만2000여명 중 한 명이다. 남들이 출근하는 아침 9시, 윤씨는 서울 강동구의 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점에서 퇴근해 집으로 간다. 한 예술계 대학을 휴학 중인 윤씨는 최근까지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생활을 해왔다. 집에서 대학 등록금과 생계비를 지원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지만, 윤씨 본인이 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기 원했기 때문이다. 4년 정도 윤씨는 자유를 찾아 호프집, 카페, 편의점, 콜센터, 백화점 등을 전전하며 버텨왔다.
하지만 결국 윤씨는 집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돈이다. 최저임금 아르바이트를 통해 윤씨가 버는 돈은 한 달 평균 80만원 정도다. 자취를 하던 시절 윤씨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친구 3명과 함께 살았다. 그래도 매달 월세와 식비로 40만원 정도가 고정적으로 빠져나갔다. 여기에 핸드폰비, 간식비, 기호품 구입으로 매달 17만~25만원이 추가로 지출됐다. 아무리 돈을 아껴도 월평균 20만원 이상을 저축하기란 불가능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알바를 병행하면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윤씨는 학교를 휴학하고 두 군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심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카페에서, 저녁 5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달에 150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왔다. 한때는 50만원 이상씩 저축이 가능했던 시절도 있었다. 윤씨는 “아르바이트를 2개 하는 동안 제대로 잠을 잔 날이 거의 없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씻는 시간을 감안하면 하루에 5시간 이상 잘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만 17세의 아리데씨(예명)는 가출 청소년이다. 최저시급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하더라도, 연장근로수당이나 휴일근로수당은 어불성설이었다. 미성년자인 아리데씨는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미성년자가 일을 하기 위해선 사업자에게 부모 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가출상태인 아리데씨는 알고 지내는 성인들의 도움으로 가짜 동의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하루 12시간가량을 일하는 그는 “법적으로 미성년자는 7시간 이상 일하면 안 되는 걸로 안다. 그래도 먹고 살려면 최저임금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불법으로 살아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을 견디며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최저임금으로 사람을 구하는 곳은 많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들은 언제든 시급이 10원이라도 높은 곳으로 이직할 준비가 되어 있다. 사업주도 그들을 ‘오래 일할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우도 최저다. 아리데씨는 문자해고의 경험도 털어놨다. “집에 들어왔는데 문자로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고 하더라. 조금 화가 났지만 그래도 마지막 인사라도 할 겸 사무실에 두고 온 핸드폰 충전기도 가지러 갈 겸 내일까진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바로 ‘충전기는 택배로 보내 줄테니 올 필요 없다’고 답문이 왔다.”
4월 17일 서울 마포구 경영자총연합회 회관 앞에서 알바연대 회원들이 최저시급 1만원으로의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알바연대 제공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두 가지 결핍에 시달린다. 첫째는 시간의 결핍이다. 아리데씨는 단돈 1000원이라도 아끼기 위해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을 한다.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쓰러져 자는 날이 많다. 외국어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피곤함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 일단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두 번째 결핍은 돈이다. 윤가현씨는 “나도 또래 20대 초반 대학생들처럼 마음 편히 소비하고 싶다. 물건을 살 때마다 ‘이건 1시간 시급짜리’라는 생각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올해 최저임금은 과연 얼마로 결정될까? 알바연대의 주장처럼 시급 1만원이 당장 현실화할 수 있을까? 현재 민주노총·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최저시급 5910원을 주장하고 있다. 시급 5910원은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노동자의 평균 급여의 50%에 해당하는 액수다. 최근 몇 년간 최저임금이 5~6% 인상된 것을 감안하면, 올해 결정될 ‘2014년 최저임금’은 역시 시급 5000원을 조금 넘는 수준에서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구교현 알바연대 집행위원장도 “심지어 최임위 근로자위원 중에도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결론은 뻔하다. 잘 돼야 시급 5500원을 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경영계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강력 반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3년도 최저임금이 전년 대비 6.1% 상승된 시급 4860만원으로 결정된 직후인 지난해 7월, 경영자총연합회는 “최저임금 인상이 과도하다”며 “어려운 경제상황과 영세·중소기업의 절박한 현실에 대한 고려가 빠진 결정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앞서 중소기업중앙회는 36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에 응답한 중소기업체의 48%가 최저임금이 5~6% 이상 오를 경우 신규채용을 줄일 것이라고 답했고, 26%는 정리해고, 16%는 노동자에 대한 임금 삭감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구교현 위원장은 “최저시급을 무턱대고 1만원으로 올리자는 말이 아니다. 지나치게 높은 임대료, 프랜차이트 본사 납입금, 대기업의 하청구조 등을 바꿔 영세한 사업장에서도 최저시급 1만원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상태를 만들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0년 정도 중소 요식업계에서 일해온 정진웅씨(가명)는 “최저임금을 올리면 중소기업이 고용을 줄이겠다는데, 상당수 중소기업은 현행법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4월부터 서울 시내에 위치한 소규모 프랜차이즈인 ㄱ식당 인사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ㄱ식당은 70명 정도가 근무하는 24시간 음식점으로, 수도권에 몇 군데의 지점을 낸 바 있다.
정씨는 지난 1년 동안 50명 이상의 주방·서빙 노동자들이 퇴직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최저임금도 챙겨주지 못하는데 사람들이 오래 일할 맛이 나겠나”라며 “서류상으로는 ㄱ식당에서 최저임금 이상을 주고 있지만 실제로는 최저임금에 한참 못미친다”고 말했다.
ㄱ식당에서 주간에 서빙을 하는 한춘실씨(가명)은 한 달에 180만원을 받는다. 한씨의 월급명세서에 따르면 그는 월평균 약 124만원의 기본급을 받는다. 주 40시간 사업장의 법정 근로기준시간인 월 209시간으로 기본급을 나누면 한씨의 시급은 5952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야근수당, 연장수당, 휴일수당 등이 합쳐져 월급 180만원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ㄱ식당의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주 5일간 일을 했을 때의 이야기다. 정씨는 “실제로 우리 회사에선 일주일에 6일씩 출근시키고 있다. 게다가 24시간 식당이 2교대제로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청소를 하고 있다. 경비업은 대표적인 최저임금 직종 중 하나다./김창길 기자
한춘실씨의 하루를 보자. 주간조인 한씨는 아침 10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한다. 출근하자마자 한씨는 홀 청소를 시작하고 주방에서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설거지를 돕는다. 어느 정도 일이 정리되면 12시가 되어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손님이 빠져나간 오후 3시가 되어서야 한씨는 겨우 점심밥을 먹을 수 있다. 식사 도중에 손님들이 종종 찾아오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빠르게 식사를 하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는 상황이다. 오후 5시쯤이 되면 퇴근 때까지 거의 쉴 틈이 없다. 밤 10시에 퇴근할 때까지 서빙 직원들을 찾는 손님들의 목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한씨의 저녁식사는 퇴근 이후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한씨의 실제 월간 노동시간은 법정 근로시간을 한참 초과한다. 2교대제로 근무하는 한씨의 실제 노동시간은 하루 12시간, 주 6일로, 주간 총 72시간이다. 여기에 기본시급의 최소 50%를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연장근로, 휴일근로시간 등을 고려해야 한다. 한씨는 매일 4시간의 연장근로를 하고 있고, 주말 이틀 중 하루는 출근한다. 실제 한씨의 주간 노동시간은 기본근로시간 72시간에 연장근로 24시간(4시간×6일), 휴일근로 12시간의 절반을 합친 총 주 90시간인 것이다. 여기에 한 달 평균 4.34주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씨의 월간 실제 노동시간은 약 391시간으로, 시급은 4615원이다. 이것은 한씨의 휴가수당 등이 포함되지 않은 액수다.
정씨는 “정석대로라면 야간조는 주간조보다 20%는 월급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월급이 딱 10만원 높은 19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ㄱ식당의 야간노동자의 경우 야근근로수당시간을 포함하면 월간 495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급은 3838원 수준이다. 정씨는 “서류상으로 이들은 시급 5200~5400원을 받고 실제보다 훨씬 적은 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돼 있다. 노동부에서 근로감독을 오면 최저임금 위반이라는걸 금세 알 수 있는데, 기대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의 김요한 노무사는 “그동안 우리 본부에서 상담한 사례와 비교해보면, ㄱ식당보다 더 심각하게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례가 수도 없이 많다. 최저임금 자체도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그마저 지키지 않는 것도 일반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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