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란 무엇인가? 2004년도 원고>
구약성서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강성열 교수(호남신학대학교, 구약학)
1. 왜 정경인가?
현재 한국의 개신교가 사용하는 성서는 전부 66권이다. 그 중에서 전반부에 해당하는 구약성서는 39권으로 되어 있으며, 후반부인 신약성서는 37권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3x9=27이라는 구굿셈 공식을 가지고서 구약 39권, 신약 27권, 도합 66권으로 설명하는 재미난 계산법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일반 성도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것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곧 로마 가톨릭(천주교)이 사용하는 성서의 권수가 개신교의 그것과 같지 않다는 점이다. 로마 가톨릭의 신약성서는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27권이지만, 구약성서는 개신교의 39권보다 12권-개신교가 외경(外經, apocrypha)이라 부르는-이 더 많은 51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로마 가톨릭은 개신교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39권을 제1정경 또는 원정경(原正經, Protocanon)으로, 그리고 추가된 12권을 제2정경(Deuterocanon)으로 부르고 있다. 제1정경과 제2정경은 호칭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을 뿐, 정경으로서의 가치나 비중에 있어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로마 가톨릭이 개신교의 구약성서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12권에는 어떠한 책들이 있는가? 1977년에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이 공동으로 번역한 <공동번역> 성서에 그 책들이 수록되어 있다. 토비트, 유딧, 에스더 부록, 지혜서, 집회서, 바룩, 다니엘 부록,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 등의 아홉 권이 그렇다. 이 아홉 권 중에서도 특히 바룩(1-6장) 안에는 ‘예레미야의 편지’가 마지막 장(6장)으로 편집되어 있고, ‘다니엘서 부록’(3:23-24 사이; 13-14장)에는 ‘아자리야의 기도와 세 젊은이의 노래’와 ‘수산나’ 및 ‘벨과 뱀’ 등이 들어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개신교보다 12권이 더 많은 셈이다(새롭게 추가된 책 자체만을 두고 본다면 7권). 이들은 39권으로 된 제1정경의 여기저기에 삽입되어 있는 바, 토비트와 유딧은 느헤미야 다음에, 에스더 부록은 에스더 안에, 마카베오상과 마카베오하는 말라기 다음에, 지혜서와 집회서는 아가 다음에, 바룩은 예레미야 애가 다음에, 그리고 다니엘 부록은 다니엘 다음에 각각 편집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궁금증을 갖게 된다: 대체 어떤 이유로 하여 개신교의 구약성서와 로마 가톨릭의 구약성서 사이에 이러한 차이가 생겨나게 된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떠한 필요와 동기에 의해서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이 구약성서를 제각기 39권 또는 51권의 책들로 한정하였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이 바로 ‘캐논’(canon)이라는 개념이다. 우리말로 ‘정경’(正經)이라 불리는 이 용어는 본래 히브리어를 포함하는 셈족 언어에 뿌리를 둔 것으로서, ‘갈대’를 뜻하는 낱말이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카네’(왕상 14:15; 욥 40:21)라 불리는 갈대가 각종 측량 작업을 위한 막대기로 자주 사용된 까닭에, ‘캐논’이라는 용어는 측량 작업과 관련된 여러 가지 뜻, 곧 규범, 규칙, 원칙, 척도 등의 뜻을 갖는 낱말로 이해되었고, 초대교회 교부들에 의하여 거룩한 문서들의 수집본인 성서를 가리키는 용어로 고정되기에 이르렀다(R. K. Harrison, 『구약서론(상)』, 327-328; A. E. Hill and J. H. Walton, 『구약개론』, 33).
정경이라는 용어가 갖는 이상의 의미는 정경이 형성되기 전에 이미 정경 이외의 많은 다른 문서 자료들이 존재했음을 전제한다. 이를 구약성서의 경우에만 국한시켜 본다면, “여호와의 전쟁기”(민 21:14)나 “야살의 책”(수 10:13; 삼하 1:18), “솔로몬의 행장”(왕상 11:41),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왕상 14:16 등), “유다 왕 역대지략”(왕상 14:29 등),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대상 29:29), “선지자 나단의 글과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과 선견자 잇도의 묵시책 곧 잇도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대하여 쓴 책”(대하 9:29),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족보책”(대하 12:15), “선지자 잇도의 주석책”(대하 13:22),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대하 16:11), “하나니의 아들 예후의 글”과 “이스라엘 열왕기”(대하 20:34), “이사야의 묵시책”(대하 32:32) 등이 그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신구약 중간 시대에 존재했던 무수한 랍비 문헌들이나 쿰란(Qumran) 동굴에서 발견된 각종 문서들 및 후술할 외경(外經)과 위경(僞經) 등도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 많은 문서 자료들이 다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진 것은 아니다. 현재의 구약 정경 39권 또는 51권은 그 시대의 무수한 문서 자료들 중에서 신앙공동체의 삶과 신앙에 꼭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별된 책들이다. 나머지 자료들은 계시의 말씀으로 여겨지지 않거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인정받지 못해 정경의 테두리 밖에 놓이게 되었다. 개신교의 구약 정경과 가톨릭의 구약 정경 사이에 차이가 나게 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1517년의 종교개혁 이후 생겨난 개신교는 구약 시대에 만들어진 무수한 문서들 중에서 39권의 책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앙과 행위에 관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반면에 초대교회 이후 종교개혁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교회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로마 가톨릭은, 일찍부터 39권 외에도 12권의 책들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된다고 믿었다(동방 정교회는 바룩을 제외한 11권을 정경에 포함시킴).
더 정확하게 말하면, 로마 가톨릭이 이미 초대교회 당시부터 구약 정경의 범위를 넓게 인정하여 그 안에 포함된 책들을 신앙과 삶의 유일한 법칙이요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용해 왔지만,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개신교 정경을 확정하는 중에 구약 정경의 범위를 히브리어로 기록된 유대교의 구약성서에 맞추어 지금과 같은 39권으로 축소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축소 작업의 배후에는 로마 가톨릭이 정경으로 사용하는 12권이 정경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따라서 그 책들은 정경 바깥에 있는 책들, 곧 외경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결국 구약 정경의 범위에 있어서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사이에 차이가 나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되는 정경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이냐의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2. 히브리어로 된 구약 정경이 만들어지기까지
(1) 히브리 성서 24권의 형성
개신교가 구약 정경으로 사용하는 39권의 거룩한 문서들은 결코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들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로부터 떨어진 책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 저자들을 도구로 하여 39권의 내용을 일일이 구술하여 적게 한 것도 물론 아니다. 도리어 그것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영감 받은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들이다(딤후 3:16; 벧후 1:21). 그것들은 인간의 언어인 히브리어-아람어도 일부 포함됨(스 4:8-6:8; 7:12-26; 단 2:4b-7:28; 렘 10:11; 창 31:47[‘여갈사하두다’])-로 기록된 것들로서, 특정 시대의 특정 저자들이 제각기 그들 자신이 처해 있던 독특한 삶의 자리를 배경으로 하여 기록한 다양한 종류의 문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성서 39권이 처음부터 아무런 논란 없이 쉽게 정경이 된 것은 아니다. 이 책들은 다른 많은 문서들과 함께 유통되다가 주후 90년에 팔레스타인의 얌니야(Jamnia = 얍느엘 또는 야브네, 수 15:11; 대하 26:6; Johanan Ben Zakkai가 주도함)에서 열린 유대교 공의회에서 최종적으로 유대교 정경으로 확정되었다. 확정될 당시의 구약성서는 전부 24권이었으며, 토라(율법서, Torah), 느비임(예언서, Prophets), 크투빔(성문서, Holy Writings) 등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졌다. 토라는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의 다섯 권으로 이루어져 있었고(5권), 느비임은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까지의 전기 예언서(4권)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12소예언서(호세아~말라기)까지의 후기 예언서(4권)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인 성문서(聖文書)는 시편으로부터 시작하여 욥기, 잠언, 룻기, 아가, 전도서, 예레미야 애가,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느헤미야, 역대상하 등의 11권으로 되어 있었다.
이렇듯이 히브리어로 된 유대교 정경, 곧 히브리 성서(Hebrew Bible)는 개신교의 구약 정경 39권과 동일한 24권의 책들을 삼분법(三分法)에 맞추어 배열하였다. 양자 사이에 배열 순서가 다른 것은, 개신교의 구약 정경이 내용이나 사상이 비슷한 것들을 중심으로 하여 배열한 것과는 달리, 히브리 성서는 정경으로 채택된 시간적인 순서를 따라 배열하였기 때문이다. 히브리 성서는 또한 구약 정경을 구성하는 세 부분을 동일한 중심을 가진 원들로 이해함으로써, 구약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갖는 권위에 토라, 느비임, 크투빔 등의 순으로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이른바 동심원(同心圓) 원칙에 따라 세 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이를테면 동일한 중심을 가진 크고 작은 세 개의 원 중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원을 토라로 보았으며, 그 다음 원을 느비임으로, 그리고 가장 바깥에 있는 원을 크투빔으로 본 것이다. 이것은 히브리 성서가 가장 안쪽 원에 해당하는 토라를 가장 중시하였고, 그 다음에 느비임, 그 다음에 크투빔 등의 순으로 권위를 부여했음을 의미한다.
(2) 율법서의 정경화 과정
이제 시각을 달리하여 히브리 성서를 구성하는 세 부분이 제각기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정경이 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율법서의 경우를 보자. 과거에는 율법서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받은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경화 과정이라는 말 자체가 불필요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로 역사적이고 비평적인 연구가 거듭되면서, 이제는 율법서 전체가 짧은 기간 동안에 모세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율법서 안에 어느 한 시대의 상황이 아닌 다른 여러 시대의 상황과 관련된 내용들이 매우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모세라는 중심 인물이 저작 활동을 했음을 암시하는 본문들이 있기는 하지만(출 17:14; 24:4; 34:27, 28; 민 33:2; 신 31:9, 22, 24), 율법서 전체는 이제 익명의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라 할 수 있다. 신구약성서의 많은 본문들이 율법 또는 율법서를 모세와 관련시킨 것은 친저성(親著性)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에서라기보다는, 모세가 율법서 전체의 기초를 이루는 핵심 인물이요,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율법에 대해서 다루는 내용이 율법서 전체의 중심을 이루기 때문에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율법서가 단일한 한 저자나 편집자에 의해서 일시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시대를 달리하는 몇몇 전승(tradition) 자료들의 결합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전승 자료들의 대부분이 처음에는 구두 전승(oral tradition)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나중에 서서히 문서화되었고, 또 시대 상황이 바뀌면서 새로운 해석이 점차 추가됨과 동시에 다른 자료들과 합쳐지기도 했다. 그 결과 초기의 전승 자료는 점차 큰 덩어리로 확대되었고, 이러한 작업이 되풀이되고 중첩되면서 마침내는 지금 우리가 가진 것과 형태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율법서의 대략적인 완성 시기, 곧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의 율법서가 최종적으로 정경화된 시기는 주전 400년경의 에스라 시대였을 것이라고 본다.
어쩌면 포로기 이후의 복구 시대에 활동한 에스라에 의해 다양한 전승 자료들이 마침내 하나의 단일 저작으로 합성되었을런지도 모른다. 실제로 학사 겸 제사장이었던 에스라는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백성들에게 이미 완성되어 있던 율법책을 백성들에게 읽어 주었다(느 8장).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로부터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느헤미야의 시대에, 국가적인 분열이 생겨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게 되었는데, 그 때 당시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오경만을 정경으로(사마리아 오경, Samaritan Pentateuch)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에스라 시대에 율법서가 정경화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뒷받침한다. 주전 3세기 중반경에 번역된 70인역이 맨 처음에는 오경만을 번역했었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예언서의 정경화 과정
히브리 성서의 두 번째 부분인 예언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의 전기 예언서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12소예언서 등의 후기 예언서로 나누인다. 먼저 전기 예언서의 경우를 보도록 하자. 히브리 성서가 역사서의 성격을 갖는 여호수아에서 열왕기까지를 전기 ‘예언서’라고 부르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이 책들이 예언자적인 관점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그렇다. 즉, 예언자들을 통해서 주어진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관점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쓰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 책들에는 이른바 ‘예언(prophecy)과 성취(fulfillment)’라는 신학적인 주제가 기본 틀을 이루고 있다.
여호수아에서 열왕기까지를 전기 예언서로 칭하는 두 번째 이유는, 바벨론 탈무드에 있는 랍비 문헌들이 역사서의 저자를 예언자라고 보았던 것에 기인한다. 바벨론 탈무드는 여호수아서의 저자를 여호수아로, 사사기와 룻기와 사무엘서의 저자를 사무엘로, 열왕기의 저자를 예레미야로 보았던 것이다. 예언자들이 역사서의 저자라는 것 때문에 이들 역사서는 전기 예언서로 분류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두 번째의 이유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들은 엄밀하게 말해서 예언자들에 의해서 기록된 것들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멸망(주전 587년)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신학적인 반성을 담고 있는 것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지만 불순종하면 저주와 심판을 받는다는 신명기의 주요 신학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587년의 역사적인 재난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려는 의도가 그 중심을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 까닭에 오늘날의 구약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이 책들을 전기 예언서로 칭하기보다는 ‘신명기적 역사서’(Deuteronomistic History)로 즐겨 부른다. 이 역사서는 아마도 바벨론 포로기 때에 그 전 시대의 각종 자료들을 토대로 하여 지금과 같은 형태로 완성되었을 것이다.
후기 예언서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의 예언자들은 주전 8세기 이후에 활동한 자들로서, 전기 예언서에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초기 예언자들과는 달리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가지고 있다 하여, 흔히 문서 예언자들(writing/written/literary prophets)로 불린다. 정경 예언자(canonical prophets) 또는 고전 예언자(classical prophets)라고도 불린다. 주전 8세기에 이르러 예언자들의 활동이나 메시지에 관한 기록이 이처럼 별개의 책으로 문서화된 것은, 그 때부터 사람들이 예언자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했는가(activity)의 문제보다는 예언자들이 실제로 무슨 말을 했는가(message, word)에 더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최초의 문서 예언자인 아모스 이후로 대부분의 문서 예언자들이 한 개인이나 집단보다는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메시지를 전하였다는 사실도, 주전 8세기부터 문서화된 예언서가 남겨진 이유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예언서가 세 권의 대예언서와 열두 권의 소예언서로 구성된 것은 아마도 최종 편집자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세 사람의 족장과 야곱의 열두 아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이 책들은 위에서 언급한 전기 예언서와 함께 주전 4세기를 전후한 시기 또는 그 이후에 정경으로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사마리아 공동체가 분열 당시에 오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했다는 것이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한다.
(4) 성문서의 정경화 과정
히브리 성서의 세 번째 부분인 성문서는 어떠했는가? 신약성서가 히브리 성서를 “율법과 예언”으로 칭하는 것으로 보아(마 5:17; 7:12; 눅 16:16, 29, 31; 행 13:15; 24:14; 26:22), 성문서는 신약 시대 당시에 아직 정경으로 완성되지 않은 채로 있었음이 분명하다. 성문서를 암시하는 듯한 표현은 단지 누가복음 24:27(“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과 24:44(“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에서만 나타날 뿐이다. 이는 당시에 성문서가 율법서와 예언서에 대한 비공식적인 부록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실제로 성문서에는 주제 또는 내용에 있어서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율법서나 예언서와는 달리 시편, 지혜문학, 역사서, 묵시문학 등의 다양한 장르에 속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성문서가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정경 안에 편입되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특히 ‘메길롯’(Megilloth, ‘다섯 두루마리’)으로 알려진 룻기와 아가, 전도서, 애가, 에스더 등의 다섯 책은 제각기 오순절, 유월절, 장막절, 예루살렘 성전 파괴일인 아브(Ab)월 9일, 부림절 등의 주요 절기 때에 낭독되던 것들로서, 성문서가 히브리 성서 전체에서 가장 통일성을 갖지 못한 부분임을 금방 알게 해준다.
그래서인지 성문서에는 정경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책들이 일부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신약성서에 전혀 인용되지 않은 아가,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등의 책들과 잠언이 그에 해당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가, 전도서, 에스더 등의 세 권이 정경의 가치가 약한 책으로 자주 지적당했다. 아가는 그 안에 수록된 노래가 너무 세속적이라 하여, 전도서는 지나치게 허무주의적인 색채가 강하다 하여, 그리고 에스더는 ‘야웨’나 ‘엘로힘’이라는 낱말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데다가 신구약성서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부림절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하여 정경으로부터 제외시켜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던 것이다.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 사본이 구약 정경 24권 중에서 유일하게 에스더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논란이 많았던 성문서도 주전 2세기 이후 어느 정도 수집 작업이 완료되면서 정상적인 정경화의 길을 걸었다. 앞서 말한 대로 주후 90년의 얌니야 유대교 공의회에서 24권으로 된 유대교 정경 안에 포함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 후에도 일부 책들에 대하여 논란의 있기는 했지만, 얌니야 회의의 최종 결론을 뒤집지는 못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얌니야 회의가 24권(39권)의 책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이미 일반 대중 사이에서 계시의 말씀인 정경으로 폭넓게 사용되던 책들의 범위를 얌니야 회의가 공식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이다. 얌니야 회의의 정경 확정은 외경이나 위경으로부터 비롯되는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아울러 가지고 있었다. 정경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 말이다. 아울러 얌니야 회의의 결정은 성전이 파괴된 상황에서 그레꼬-로만 세속 문화의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구약 정경을 유대교 정통 신앙의 구심점으로 정립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3. 개신교의 구약 정경은 어떠한가?
(1) 종교개혁 이후에 만들어진 개신교의 구약 정경
위에서 밝힌 것처럼 유대인들은 히브리 성서 24권을 유대교의 정경으로 확정지으면서 삼분법에 따라 배열하였지만, 초대교회 당시에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의 정경인 히브리 성서를 구약 정경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주전 3세기 중반경에 헬라 문명의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라어로 번역-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알지 못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된 70인역(LXX, Septuaginta)을 구약 정경으로 사용하였다.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던 당시 세계가 헬라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했던 까닭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히브리어로 된 유대교 정경보다는 헬라어로 된 70인역을 구약 정경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본래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 만들었던 70인역이 이제는 유대인들의 손을 떠나, 초대교회의 다수를 차지하게 된 이방인 기독교인들-히브리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의 정경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어쩌면 얌니야 회의가 구약 정경의 범위를 24권으로 확정한 동기에는 이처럼 70인역이 초기 기독교인들의 정경으로 바뀐 현실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반감)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70인역은 두 가지 점에서 히브리 성서와 차이를 보였다. 그 하나는 70인역이 유대교 정경에는 없는 15권의 책들(외경)을 추가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70인역에 번역되어 있는 24권의 유대교 정경이 히브리 성서와는 다르게 배열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70인역이 구약성서 전체를 내용이나 사상 또는 주제가 비슷한 책들을 중심으로 하여, 율법서(Torah), 역사서(Historical Books), 시가서(Poetical Books), 예언서(Prophetic Books) 등의 네 부분으로 배열 순서를 재조정한 까닭에 생겨난 것이다. 이른바 사분법(四分法) 원칙에 따라 구약 전체를 재배열한 것이다. 이러한 차이로 인하여 학자들은 흔히 외경을 포함하는 70인역을 일컬어 ‘알렉산드리아 정경’(Alexandrian Canon)이라 부르고, 24권(실제로는 39권)으로 되어 있는 히브리 성서를 ‘팔레스타인 정경’(Palestinian Canon)이라 부른다.
어쨌든 초대교회 이후로 서방 세계의 기독교(로마 가톨릭)는 알렉산드리아 정경인 70인역을 구약 정경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팔레스타인 정경을 따르는 유대인들보다 더 많은 책들을 구약 정경으로 널리 사용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주후 390-405년에 신약성서를 포함하는 성서 전체를 라틴어로 번역한 제롬(St. Jerome)의 불가타역(Vulgate 또는 Vulgata)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본래 제롬은 구약 정경과 외경을 구분하기 위하여 세밀한 각주를 달고서는, 외경에 해당하는 책들을 비정경적인(noncanonical) 것들로 규정하였지만, 후대의 개정본에서 그러한 구분 자체가 사라지면서 불가타역은 자연스럽게 정경과 외경을 구별하지 않는 책으로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A. E. Hill and J. H. Walton, 『구약개론』, 38). 그 결과 서방 기독교는 70인역의 정경 전승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던 불가타역을 로마 가톨릭의 공식 정경으로 채택하였다. 그러다가 로마 가톨릭은 반종교개혁(Counter-Revolution)으로 알려진 트렌트 공의회(Council of Trent, 1545-1563년)에서, 불가타역에 포함되어 있는 15권의 외경에서 3권(제1에스드라, 제2에스드라, 므낫세의 기도)을 제외한 12권을 정경으로 인정하였다. 그것이 지금의 공동번역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반면에 1517년의 종교개혁에 뿌리를 둔 개신교는 히브리 성서를 개신교 자체의 구약 정경으로 받아들였다. 1500년 정도의 오랜 기간 동안 서방 기독교가 외경을 포함하는 알렉산드리아 정경을 구약 정경으로 사용하여 왔으나, 루터는 외경을 제외한 채로 히브리 성서의 24권만을 구약 정경으로 인정함으로써 구약 정경의 범위를 대폭 축소시킨 것이다. 이는 그가 1534년에 처음으로 완성한 독일어 성서 번역본에서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외경을 번역본 말미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을 통해서 확인된다: “외경, 그것은 거룩한 경전과 동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그러나 읽기에 유익하고 훌륭한 책들이다”(J. H. Hayes, 『구약학 입문』, 38).
그러나 루터에 의해 시작된 개신교 정경은 외경을 제외한 히브리 성서 24권을 구약 정경으로 채택하되, 그 순서만큼은 70인역의 배열 원칙을 그대로 따랐다. 그 이유는 히브리 성서의 마지막 책인 역대기보다는 70인역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가 마태복음으로 시작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훨씬 더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시발점은 앞서 언급한 바가 있는 제롬(St. Jerome)의 불가타역이었다. 제롬은 신약성서가 완성된 후에 구약과 신약을 함께 묶어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히브리 성서의 배열 순서보다는 70인역의 배열 순서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는 신약성서 첫 구절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개신교 정경이 제롬의 이러한 판단을 존중한 것은 물론이다.
요컨대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 정경 39권은 내용상으로 보면 히브리 성서 24권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히브리 성서가 사무엘상과 사무엘하, 열왕기상과 열왕기하, 역대상과 역대하 등을 제각기 한 권으로 취급하였고, 호세아에서 말라기까지의 12권도 한 권으로 취급하였으며,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묶어서 한 권으로 취급했을 뿐이지, 실제로는 개신교의 구약 정경에 속한 39권의 책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양자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배열 순서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개신교의 구약 정경이 배열 순서나 원칙에 있어서 팔레스타인 정경을 따르지 않고, 도리어 알렉산드리아 정경을 따른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이로써 개신교의 구약 정경은 전 세계의 모든 번역본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의 오경(5권), 여호수아에서 에스더까지의 역사서(12권), 욥기에서 아가까지의 시가서(5권),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의 예언서(17권) 등의 순서로 39권의 책들을 배열하고 있다. 이는 개신교의 구약 정경이 내용상으로는 팔레스타인 정경을 따르고 있는 반면에, 형식상으로는 알렉산드리아 정경을 따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2) 정경에서 비켜간 책들: 외경과 위경
외경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하여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책들,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말씀인 정경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성도들이 읽어서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가리킨다. 주전 200년경부터 주후 100년 사이에 기록된 것들이 대부분이며, 히브리어, 아랍어, 라틴어, 이디오피아어, 콥트어, 아람어, 시리아어, 아르메니아어 등의 다양한 언어로 씌어 있다. 그 중에 로마 가톨릭에서 정경으로 사용하는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외경은 결코 경시되어도 좋은 책들이 아님이 분명하다. 사실 초기의 기독교는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외경을 포함하고 있는 70인역을 구약 정경으로 사용했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외경은 어디까지나 종교개혁 이후에 생겨난 개신교의 구약 정경에 들어오지 못한 책들을 가리킨다. 그 책들은 주로 70인역이나 불가타역 등에 포함되어 있는 바, 이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제1에스드라, 제2에스드라, 토비트, 유딧, 에스더 부록, 솔로몬의 지혜, 집회서, 바룩, 예레미야의 편지, 다니엘 부록, 므낫세의 기도,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참조: B. Metzger, 『외경이란 무엇인가』, 9-10; 천사무엘, 『구약 외경의 이해』, 26-27).
이들은 대부분이 신구약 중간사 시대에 기록된 탓에, 그 시대에 이루어진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변화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마카베오 상하권이다. 이 두 책은 시리아의 안티오커스 4세(Antiochus Epiphanes) 때에 이루어진 마카베오 혁명과 그 이후의 시대 변화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주전 180년경에 예수스 벤 시락(Jesus Ben Sirach)이 히브리어로 저작한 것으로 알려진 집회서(Ecclesiasticus)는 히브리 성서의 형성 과정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 책은 실제 저작 연대보다 한참 후인 주전 132년에 벤 시락의 손자에 의해 헬라어로 번역되었는데, 시락의 손자는 번역판 서문에서 자신의 조부가 토라와 느비임 및 조상들의 다른 책들을 연구하는 데 전념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그가 언급하고 있는 ‘조상들의 다른 책들’이 앞서 언급한 ‘크투빔’(성문서)을 가리키고 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는 벤 시락이 집회서를 기록할 당시에 이미 토라와 느비임, 크투빔 등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히브리 성서의 삼분법에 대하여 알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유력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가경(假經)으로도 불리는 위경(Pseudepigrapha)은 정경과 외경에서 제외된 것들로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꾸며진 문서들 내지는 신앙생활에 나쁜 영향을 줄 것으로 간주되어 금지된 문서들을 일컫는다. 외경과 비슷하게 주전 200년에서 주후 200년 사이에 기록된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 문서들이 이 범주에 들어가는 바, 주로 묵시문학의 성격을 갖는 이 문서들의 제목은 주로 아담, 에녹, 모세, 이사야 등과 같은 성서의 유명 인물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담의 유언, 아담과 하와의 전기(또는 모세의 묵시록), 이디오피아 에녹서(에녹 1서), 슬라브 에녹서(에녹 2서 또는 에녹의 비밀에 관한 책), 노아의 책, 열두 족장의 유언, 모세 승천기, 솔로몬의 시편, 엘리야 묵시록, 욥의 유언, 이사야 승천기, 바룩의 계시, 예언자들의 전기, 에스라의 계시, 시빌리의 신탁,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희년서, 마카베오 3~4서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 중에서도 신약성서의 유다서 1:9(“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는 모세 승천기 일부를, 그리고 히브리서 11:37(“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은 이사야 승천기를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유다서 1:14-15는 이디오피아 정교에서 정경으로 인정되던 에녹 1서의 1:9와 60:8을 인용함으로써, 에녹서가 한때 정경성을 인정받을 정도로 초대교회에서 널리 읽히고 유통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비록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정경성을 상실하여 위경으로 귀착되기는 했지만 말이다(강사문 외, 『구약성서개론』, 218-219):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유 1:14-15)
4. 한글로 번역된 구약성서
구약 정경인 히브리 성서는 많은 다른 언어들로 번역되었는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개신교의 구약 정경에 국한시켜 생각할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1887년에 최초의 신약 번역이라 할 수 있는 로스(John Ross) 역 신약전서, 곧 <예수셩교젼셔>가 나온 지 11년 후인 1898년 12월 6일에 처음으로 피터스(彼得; A. A. Pieters, 1871-1958)에 의해 구약성서 중에 시편이 <시편촬요>(詩篇撮要)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이 시편촬요는 기독교로 개종한 러시아계 유대인 피터스가 개인적으로 번역한 것으로서, 시편에 있는 150개의 노래들 중에 62개의 노래를 발췌 번역하여 수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번역은 개개인이 사사로이 번역한 사역(私譯) 성서여서, 공인된 기관의 검증을 받지 못한 번역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선교사들은 전문가들의 공동 노력에 의하여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인번역(公認飜譯) 성서를 출판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서, 1893년에 처음으로 공인번역위원회(The Board of Official Translators)를 조직하였다.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된 공인번역위원회는 1900년에 <신약전서>를 출간하였으며, 1906년에는 비록 낱권이기는 해도 구약 중에서 <창세기>를 처음으로 출간하였다. 이어 공인번역위원회는 1910년 후반에 구약 번역원고를 확정한 후, 이듬해인 1911년 3월 9일에 이 구약 번역원고를 기존의 <신약전서>와 합하여 한글로 된 최초의 공인 <신구약전서>를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흔히 이 때 출판된 신구약전서를 <옛번역> 또는 <구역(舊譯)>이라 부른다(민영진, 『국역성서 연구』, 156;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 188). 일본에서 인쇄한 후 서울에서 출판한 이 <구역>은 구약 두 권과 신약 한 권, 도합 세 권으로 되어 있었는데, 구약 두 권 중의 첫 번째 책은 창세기에서 역대하까지를 수록하였으며, 두 번째 책은 에스라에서 말라기까지를 수록하였다(김중은, 『구약의 말씀과 현실』, 32).
공인번역위원회는 이 역사적인 구역 신구약전서의 출판을 계기로 하여, 이듬해인 1912년에 개역위원회(The Board of Revisers)로 발전적인 해체를 보았다. 개역위원회가 새롭게 구성된 이유는, 구역이 기존의 영어 성서나 한문 성서에 너무 의존하고 있어서 완전한 번역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성서 원어에 의존한 개정판을 새롭게 출판하려는 것이 개역위원회의 새로운 구성 목적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강압적인 제국주의 통치로 인하여 구역의 개정 작업이 중간에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개역위원회는 마침내 1936년에 <구약 개역>을 출판하였고, 2년 후인 1938년에는 <신약 개역>을 완성하여 구약 개역과 합한 <개역(改譯) 신구약전서>를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일종의 구역 개정판에 해당하는 번역성서였다. 비록 이 개역이 처음부터 끝까지 히브리어 원문으로부터 직접 번역한 작품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당시의 제약된 상황으로서는 히브리어 원전에 충실한 최초의 한글판 신구약전서라 할 수 있었다.
해방 이후 1946년에 대한성서공회가 조직된 다음에는, 한글 맞춤법에 따라 종래의 개역본문을 고쳐나가기 시작하였고, 부산으로 피난 중이던 1952년에 마침내 당시의 한글 맞춤법에 맞추어 수정한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을 피난지인 부산에서 출판하였다. 그러나 이 수정판이 최종 확정된 것은 1956년에 이르러서였다.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개역성서는 이 1956년판을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수정한 1961년도의 최종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다수의 한국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판 개역성서가 1938년판 <개역 신구약전서>를 기본 틀로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1952년과 1961년에 두 차례에 걸쳐서 당시의 한글 맞춤법에 기초하여 일부 내용을 수정하는 한편으로, 잘못된 번역을 고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대한성서공회는 한글판 개역성서에 만족하지 못하고서 또 다시 새로운 번역 작업을 시도했다. 그 이유로는 새 세대를 위하여 성서를 최대한 그들이 사용하는 쉬운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과, 구약 언어인 히브리어와 아람어 및 이스라엘 주변 세계의 다양한 언어들에 대한 연구의 증대로 인하여 구약 본문들에 대한 이해에 상당한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지나치게 선교사 중심적인 번역으로부터 벗어나 한국 신학자들 중심의 독자적인 번역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리하여 1960년부터 순수하게 한국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번역위원회를 구성하여 이른바 새번역의 출판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 첫 열매가 바로 1967년에 출판된 <새번역 신약성서>이다. 이 새번역 신약은 당시 우리나라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30세 이하의 청년들을 위한 전도용으로 번역한 것이었다(민영진,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 189).
그렇지만 새번역 신약의 출간이 곧바로 새번역 구약 작업의 시작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로마 천주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의 결정에 따라 개신교와 함께 성서 전체를 새롭게 번역하자는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한성서공회는 즉시 새번역 구약 작업을 중단하고서, 1968년에 개신교 각 교파와 로마 천주교의 대표들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번역 신약번역위원회와 구약번역위원회를 조직하였고, 이들의 꾸준한 노력에 힘입어 1977년 부활절을 기해 <공동번역 성서>를 출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동번역은 개신교가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외경을 포함하고 있는데다가, ‘하나님’이라는 호칭 대신에 로마 천주교가 즐겨 사용하는 ‘하느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하여, 개신교에서 공식 예배용 성서로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로마 천주교의 성서로 귀착되고 말았다. 이 공동번역은 로마 천주교에서1999년에 개정판을 출판한 이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공동번역이 이처럼 로마 천주교의 정경으로 자리잡게 되자, 대한성서공회는 새번역 구약성서의 출간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동번역이 개신교에서 사용되지 않는 터에, 이미 출판된 새번역 신약에 더하여 새번역 구약 작업을 완료함으로써, 통일된 새번역 성서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다른 때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이 소요되기는 했지만, 많은 고생 끝에 마침내 1993년 1월에 구약 번역이 완성됨으로써, 구약과 신약을 합한 <성경전서 표준새번역>이 출판되기에 이르렀다. 이 표준새번역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번역되어, 한국교회 성서 번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기념비적인 번역성서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일부 교단의 반대에 부닥치는 바람에 교회용 성서로 폭넓게 사용되지는 못했다.
이에 대한성서공회는 곧바로 표준새번역의 개정 작업에 착수하여 2001년에 표준 새번역 개정판을 출간하는 한편으로, 1961년판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더 정확하게는 1938년에 출간된 <개역 신구약전서>-자체에 대한 개정 작업을 벌여, 1998년에 <성경전서 개역 개정판>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역 개정판은 개역의 기본 틀을 유지한 까닭에, 여전히 젊은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낱말이나 표현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한국교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
이 외에도 대한성서공회 같은 공인된 기관이 아닌 일반 기독교 출판사에서 출판한 번역성서가 두 권 있는 바, 이들 역시 일반 대중에게 그리 널리 읽히는 편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그 하나는 생명의 말씀사가 발행한 <현대인의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성서교재간행사가 발행한 <현대어 성경>이다. 전자는 1977년에 신약성서가 먼저 출간된 다음에, 1985년에 구약 번역이 완료되어 <현대인의 성경>으로 합쳐져서 출판된 것을 가리키며, 후자는 1978년의 신약성서 출간에 이어, 13년이 지난 1991년에 구약 번역의 완료와 함께 <현대어 성경>으로 통합, 출판된 것을 가리킨다.
참고로,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에서 천주교 전래 200주년(1784-1984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추진 중에 있는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성서>도 출판이 완료되면, 성서 연구에 적지 않은 도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91년에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가 출판되었으니, 머잖아 구약성서도 번역이 완료될 것으로 믿는다. 아울러 현재 한국교회에는 성서 본문-주로 개역 한글판-에 주석이나 주해 자료를 합한 일종의 연구용 성서가 널리 보급되고 있으며, 독서 능력에 제한을 받는 이들을 위한 녹음 성서나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점자(點字) 성서, 관주 성서, 우리말과 외국어의 대조 성서, 만화 성서, 비디오 성서 등의 다양한 성서 자료들이 출판되고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멀티미디어 시대에 적합한 방식으로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폭넓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 가능하다면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그들이 쓰는 언어로 성서 전체를 번역하는 작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는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항상 새롭게 번역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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