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에 제보 전화가 한 통 걸려 왔습니다. 제보자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 담임목사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려 한다고 했습니다. 부천동광교회(류철랑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소속으로 출석 교인 수는 2500여 명에 달하는 중형 교회였습니다. 제보자에 따르면 이 교회는 담임목사 아들을 청빙하기 위해 공동의회를 열어 위임목사 청빙 투표까지 진행했는데 부결됐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한 달이 지나 제직회에서 다시 아들 목사를 임시목사로 청빙했다고 했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몇몇 교인들은 말없이 교회를 떠났고, 자신도 교회를 떠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단 헌법상 제직회에서 임시목사를 청빙하는 것은 가능한데, 한 번 낙마한 목사를 임시목사로 데려온 점이 께름칙했습니다. 전후 사정이 궁금했습니다. 류철랑 목사에게 세습하려는 게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류 목사는 웃으면서 "그 사람들(세습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세습이 맞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정식 인터뷰를 요청하고, 류 목사를 만났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세습은 맞지만, 후계자로 봐야 한다"고 류 목사는 말했습니다. 이는 당회에서 아들 목사를 청빙하기로 결정한 사항이기에, 엄밀히 따지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위임목사가 되면 세습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당회가 청빙한 것이기 때문에 후계자로 봐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류 목사는 "가뜩이나 교회 세습으로 시론이 뜨거운 판에 덜컥 세습했다가 사회로부터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면서 세습이 아닌 후계자로 봐달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아들 류재상 목사는 지난 6월 초에 열린 공동의회 위임목사 청빙 투표에서 26표 차이로 낙마했습니다. 류 목사에 따르면 투표가 부결됐음에도, 당회의 러브콜이 끊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류 목사는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아들 목사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술교수로 있는 아들 류 목사는 처음엔 거절했지만, 당회뿐 아니라 제직회까지 나서서 요청하는 바람에 나서게 됐다고 고백했습니다. 임시목사로 컴백한 류재상 목사는, 지난 9월부터 틈틈이 주일 오후 예배 등 설교를 해 오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거부한 목사를 '임시목사'로 데려온 당회와 제직회의 저의가 궁금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어렵사리 한 장로와 전화 통화했습니다. 당시 운전 중이던 장로는 차를 급하게 세운 후 짧고 굵게 말했습니다. "당회와 교인들이 청빙한 것이다. 세습이 아니다." 마치 위임목사로 청빙한 것처럼 말했습니다.

류재상 목사와도 통화했습니다. 그는 위임목사 청빙 부결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습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여론 역시 개의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편으로 세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이해는 하지만, 청빙 절차가 제대로 진행된다면 세습 딱지를 붙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공동의회 투표 당시 교인들과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부결된 것으로 믿고 있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3년 동안 임시목사를 맡게 됐는데, 교인들과 소통해 나가겠다고 합니다.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정공법으로 응수했습니다. "이미 공동의회 투표를 통해 낙마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결된 직후 교회 협력교수직을 사임했다면서 충분한 책임을 졌다고 합니다. 이어 그는 "교인들이 원하는데, 모른 체 가만히 있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다"면서 임시목사를 맡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아버지 목사는 "당회가 위임목사 청빙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아들 목사는 "교인이 원하기 때문에 임시목사로 오게 됐고, 투표에 의해 적법한 절차를 거치면 문제 될 게 없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는 어디서 많이 듣던 멘트입니다. 지난 10월 7일 세습을 확정지은 왕성교회가 떠오릅니다. "교단 헌법에 따라 민주적으로 후임 목사를 결정했다." 아들 길요나 목사를 후임 목사로 앉히는 데 성공한 길자연 목사가 공동의회를 마치고 한 말입니다. 앞서 왕성교회는 당회가 중심이 돼 길요나 목사를 청빙했습니다.

대형 교회인 왕성교회가 먼저 나서 세습을 주도했으니 중형 교회는 눈치 한번 살피고 세습하면 될 거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류철랑 목사는 은퇴 시기까지 3년 정도 남았지만, 올해 안에 은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늦어도 내년 4월에는 위임목사 청빙 투표를 할 거란 이야기도 했습니다. 류 목사는 "부디 세습이라 부르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세습은 세습입니다"로 답해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