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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에 있는 먹이사슬(프레시언펌)

주방보조 2012. 2. 10. 03:47

"1년차 레지던트 삥뜯어 교수는 룸살롱 간다"

[분석] 의료계에 뿌리 깊은 군대식 위계질서

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2-09 오전 10:49:33

지난해 5월 고려대 의대생들이 동기 여학생집단 성추행한 사건은 세간의 분노를 일으켰다. 같은 해 12월 서울대병원 송년회에서 한 교수장기자랑을 한 의사와 간호사에게 "옷을 하나씩 벗었으면 1등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몇몇 의대생과 간호대생은 이러한 사건을 두고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상당수 의국(병원에서 전공의들이 머무는 곳) 내에서 남성 중심적인 문화와 군대식 위계질서가 뿌리 깊다"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계질서를 내면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잇따른 성추행·성희롱 사건들이 의료계 내부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프레시안>은 피라미드 서열의 말단에 있는 의대와 간호대 신입생들이 어떻게 의국의 '조직 문화'를 학습하는지를 당사자의 증언을 통해 소개한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그들의 신상정보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편집자>

의사가 되고 싶은 꿈을 안고 모 대학 의과대학입학했던 A 씨. 그는 대학에 입학하고 만만치 않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신입생 행사에서 군대식 위계질서를 접하면서다.

선배들은 갓 입학한 신입생에게 군대식으로 자기소개를 시켰다. 후배는 무대 앞에 서서 뒤를 돌아볼 수 없고, 선배는 뒤에 앉은 채였다. 군대식으로 제대로 인사하지 못하면 고성이 들렸다. 학기가 진행되면서는 선배 여러 명이 후배 한 명을 세워놓고 '인민재판'을 열기도 했다. "넌 평소 행실이 나쁜데 여기서 자기반성을 해보라"는 식이었다.

A 씨는 "위계질서 강화 프로그램은 어느 의대에나 다 있는 걸로 안다"며 "형태는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전원 필참에 군대식 자기소개라는 본질은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엔 이런 행사에는 종종 폭력이 뒤따랐지만, 이제는 물리적인 폭력은 대부분 사라졌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다른 의과대학에 다니는 B 씨의 증언은 달랐다. 여전히 물리적인 폭력이 남아 있다는 게다. B 씨는 "'빡센 선배'에게 '줄 빠따'로 맞았다"고 증언했다.

"주로 후배가 인사를 제대로 안 한다는 트집을 잡았습니다. 학교에 잡히는 게 뭐든 간에 닥치는 대로 때리는 선배가 있었어요. 단체기합도 세 번 정도 있었습니다. 개인 기합을 줄 때는 선배 다섯 명이 후배 한 명을 집단 폭행하는 분위기를 조성했고요."

"레지던트 1년차 삥 뜯어서 교수는 룸살롱 간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의과대학이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폭력을 암묵적으로 용인한다는 점이다. A 씨는 "의대 교수들이 더 강력하게 위계질서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병원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만큼 전쟁과 같이 긴급한 상황에 놓여 있고, 조직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병원이 잘 돌아간다는 논리다.

B 씨도 "어떤 병원은 위계적인 분위기가 의대보다 더 심각하다"며 "모 의국의 경우 "레지던트(전공의) 1년차는 '의국비'라는 명목으로 교수나 레지던트 4년 차에게 알아서 월급을 바쳐야 하는데, 그 돈으로 교수나 레지던트들이 룸살롱에 간다"고 고발했다.

또 다른 의대 졸업생 C 씨는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돈을 많이 버는 안과성형외과는 의국비를 걷어서 룸살롱에 간다"며 "비인기학과인 외과는 그런 관행이 없다는 점을 광고의 초점으로 삼는다"고 전했다. 학생들에게 의국비를 안 걷는다는 점을 들어 해당 과에 지원하라고 홍보한다는 것이다.

▲ 상당수 의료 관계자들은 "병원이 생명을 다루는 곳인 만큼 병원과 의대에서 위계질서는 필수적"이라고 말한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모 의대 교수, 여학생에게 "내 애를 낳아줘"

의대 내에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가 자리 잡으면서 성희롱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다는 지적도 일었다. B 씨는 "여자 동기와 함께 있는 술자리에서 교수가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며 "그 여자 동기는 교수 앞에서 화도 못 내고 혼자 삭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술자리에서 술이 주어지면 흑기사 게임을 해요. 술을 마시고 싶지 않은 사람 대신에 누군가가 마셔주는 건데, 거기서 교수가 '흑기사는 필요 없다'며 여자 동기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는 여자한테 부탁 하나밖에 안 한다. 내 애를 낳아줘.'"

B 씨는 병원 내의 성차별적인 분위기가 고스란히 의대에도 내려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본과 3,4학년들은 의예과 1,2학년에게 '작은 교수' 수준"이라며 "교수조차 성희롱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래로 그대로 내려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자 선배들이 미팅을 가장해서 여자 4,5명을 불러내라는 의무를 신입생에게 강제 할당했어요. '여자애들 좀 데려와 봐라. 너희가 선배들에게 얼마나 성의를 표하는지 보겠다'는 웃기지도 않은 얘기를 하면서요. 어쩔 수 없이 알음알음 여학생들을 소개받아 데려갔는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선배들이 노래방 도우미를 불렀나 싶을 정도로 그 여학생들에게 못하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려대 의대 성폭력 사건'을 접할 때 전혀 놀라지 않았다. B 씨는 "고려대 사건은 피해자가 용기가 있어서 세상에 알려졌지만, 의학계열에서는 이런 일이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다"며 "학생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교수와 수련의,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언제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 고려대 정문 앞에서 성추행한 고려대 의대생의 출교 조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결국 이들은 출교 조치됐다. ⓒ프레시안(최형락)

"간호사는 당연히 춤을 잘 춘다?"

여학생이 많은 간호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B 씨는 "간호대의 경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저학년을 불러서 강제로 춤을 추게 한다"면서 "내가 다니는 학교의 의대 교수는 간호사들이 당연히 춤을 잘 춘다고 생각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기도 모 대학교간호학과 학생 D 씨는 장기자랑에 나가기 위해서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한 달간 춤을 연습했다. D 씨는 "행사가 있으면 무조건 장기자랑을 하고 쓰러질 때까지 술을 마신다"면서 "나도 잘 추지도 못하는 춤을 네다섯 개씩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위에서 마음만 먹으면 신규 간호사를 한 달 만에 관두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을 선배들에게 들었다"면서 "선배들은 학생 때 배우는 것들이 병원에 가면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식으로 (춤 강요 등을) 합리화시킨다"고 말했다.

"꼭 위압 주고 강제로 술 먹여야 하나?"

학생들은 의대 내의 촘촘한 위계질서 관계망 때문에 폭력에 저항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또 일종의 '연좌제'를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A 씨는 "잘못을 하더라도 차라리 나만 혼났으면 싶은데, 그게 아니다. 연좌제로 학년 전체를 혼내는 시스템이 있다. 그래서 부당한 질서에 결국 무릎을 꿇게 된다"고 지적했다.

B 씨는 "의료계는 세 다리만 이어지면 업계가 모두 연결된다"며 "이 때문에 '너 그렇게 해서 의사질 해먹겠느냐'는 압력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D 씨는 "하다못해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려고 노조에 가입하면 병원이 곧바로 출신 학교에 압력을 행사한다"며 "노조 조합원이 다녔던 학교에서는 앞으로 신규 간호사를 뽑지 않겠다고 위협한다"고 거들었다.

A 씨는 "병원에서 어느 정도 위계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직무상의 상명하달을 위해서 반드시 때리고 위압을 주고 강제로 술을 먹여야만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폭력은 의지만 있으면 지금 당장 없앨 수 있다"며 "대부분의 학교에서 물리적인 폭력은 사라졌는데, 원래부터 없던 게 아니라 80~90년대까지 있었다가 누군가가 없앤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사에 소개된 A, B, C, D 씨의 사례에 대해 공감하는 정도는 의료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편차가 컸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바로 '옛날'입니다. 어떤 이는 "옛날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안 그렇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어떤 이는 "옛날엔 훨씬 심했다. 그리고 지금도"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결국, 어떤 계기를 통해 부당한 관행이 줄거나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그 '계기'를 먼저 겪은 곳에선 기사 속 사례가 '옛날 일'로 여겨집니다. 아직 그런 '계기'를 충분히 겪지 않은 곳에선 기사 속 사례가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 기사, 그리고 취재에 응한 분들의 증언이 부당한 관행을 바꾸는 새로운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아울러 <프레시안>은 다른 전문가 집단에 남아있는 비슷한 관행 역시 취재를 하려 합니다. 관련 제보는 dongglmoon@pressian.com 으로 보내주십시오. <편집자>)
 

/김윤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