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세상에 대하여

제주 해군기지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한겨레:조선일보)

주방보조 2012. 1. 9. 09:31

이사람] “해군기지 반대” 글발·악발 모아 강정까지…

등록 : 20120108 19:58

 

‘평화걷기’ 전국순례 동참한 전북 문인들
1번 국도 따라 25박26일 릴레이
안도현·고광헌씨 등 200명 참여
“지향할 가치 있고 성찰하는 계기”

» ‘글발글발 평화걷기’에 동참한 전북작가회의 회원들이 8일 오전 완주군 삼례읍 우석대 정문 앞에서 출발에 앞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안도현 시인, 문규현 신부.
“돌멩이 하나, 꽃 한송이도 건드리지 마라.”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이 분단의 상징 임진각에서 제주도 강정마을까지 걸으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외치고 있다. 구간을 정해 릴레이 형식으로 ‘글발글발 평화걷기’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6일 1번 국도를 따라 임진각을 출발해 오는 20일 강정에 도착하는 25박26일 일정이다. ‘글발글발’은 글발이 좋은 작가들이 글발로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외친다는 뜻이다.

전북작가회의는 지난 7일부터 오는 10일까지 전북 구간을 걷고 있다. 정양·김용택·안도현 시인 등 80여명이 함께 했다. 문규현 신부, 고광헌(전 한겨레신문사 사장) 시인과 경북작가회의 회원도 동참하고 있다.

8일 오전 9시 전북 완주군 삼례읍 우석대 정문에서는 출발에 앞서, 이병초 시인이 직접 쓴 ‘쑥고개 편지’를 낭독했다. 이 시인은 “사람같이 좀 살자는 우리의 목소리가, 까지고 깨지다 못해 쑥빛으로 변하더라도 강정마을에 미치기를 바란다”고 노래했다.

경주에서 온 강미정 시인은 “아름다운 경관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자연을 살려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한다. 왜 이런 당연한 일에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심각성을 알려야 한다”며 동참 이유를 설명했다.

7일부터 이틀째 참여한 문 신부는 “힘을 보태려고 왔다”고 말했다. 새만금사업 반대를 온몸으로 외치며 65일 동안 부안에서 서울까지 3보1배를 했던 그는 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 사태 때 단식 농성을 지원하다 쓰러져 큰수술을 했던 허리와 최근 오른 손가락까지 다쳐 불편한 상태였지만 묵묵히 함께 걸었다.

평화걷기 행사는 강정마을에 건설 중인 해군기지의 폭력성을 철폐하고 평화·생명의 가치를 호소하기 위해 이뤄졌다. 안도현 시인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해군기지 부당성을 지적해왔으나,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윤리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 사회에 묻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단 원로에서 젊은 작가까지 200여명이 나서 1번 국도 임진각에서 목포항까지 482.6㎞와, 제주항에서 강정마을까지 44.4㎞를 합해 527㎞를 걷는다. 걷는 동안 강정으로 보내는 작가들의 편지가 우편배달부 가방에 실려 전달될 예정이다.


이 모든 걷는 과정은 모두 영상으로도 기록중이다. 다큐멘터리 작가인 조성봉(51) 감독은 “문인들과 함께 하기 위해 동참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1997년 제주 4·3관련 다큐 <레드헌트>를 만들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다가 무죄를 받았다. 조 감독은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기록을 출품할 예정이다. 전주/글·사진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최보식이 만난 사람] '강정 해군기지' 유치한 뒤 탄핵… 윤태정 전(前) 마을이장

  • 최보식 선임기자 신저

  • 입력 : 2012.01.09 03:06

    "神父들이 '강정 멸치젓' 팔아 기금 모아… 강정엔 멸치가 안 나는데"

    15대째 강정마을에 산 토박이
    "내가 海軍서 돈 받았다 퍼뜨려… 승용차에 호신장비 싣고 다녀"
    喪服을 입고서 마을 돌아다녀
    바다 밑 산호가 많다고 반대… 결국 세금 21억원 들여 조사

    "국회의원쯤 되면 국가관이 있어야지. 야당은 그렇다 쳐도, 내가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한나라당이다. 해군기지는 좌파세력이 타깃을 삼아온 상징적 사안이었다. 이런 대결에서 명색이 여당이 엿 바꿔먹는 식으로 해버렸다."

    윤태정(57)씨의 말은 순화되지 않았다. 제주 강정포구에서 펜션을 하는 그는 해군기지를 신청했던 마을 이장이었다. 반대 측의 탄핵을 받아 이장 임기를 못 채웠지만 그는 계속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외부에서 온 시위대가 집으로 찾아와 술병 던지고 확성기로 떠들어댔다. 작년 여름에는 아예 장사를 못 했다. 이놈들은 혼자가 되면 가만히 있다. 하지만 셋만 모이면 내게 시비를 걸고 욕을 해댄다. 혹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승용차에 호신장비를 싣고 다닌다. 그렇게 난리를 쳤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윤태정 전 이장은 “국회의원쯤 되면 국가관이 있어야지 한나라당에는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해군기지 공사를 위해 쳐놓은 펜스에서./최보식 선임기자
    올해 해군기지 예산은 당초 1327억원이 편성됐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와 여당의 '협조'로 49억3000만원(4%)만 통과됐다. 2014년 완공은 어려워졌다.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다수당이 되면 해군기지의 장래는 더 불투명해질 것이다.

    ―반대 측은 "해군기지는 끝났다"고 장담하고 있다.

    "주민들도 당황해서 내게 전화를 많이 걸어왔다. '이러면 공사 끝 아니냐'고. 반대 측의 공사 방해로 집행하지 못한 작년 예산을 올해 사용하면 된다고 들었다. 지금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다만 명분과 상징성에서 타격을 본 것은 사실이다."

    마을에는 '해군기지 결사반대' '불순세력 해군은 물러가라' 등의 깃발과 현수막이 빽빽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한 종교인이 상복(喪服)을 입은 채 삼보일배를 하고 있었다. '농성장 150m' 화살표를 따라가 보니, 가건물을 지어놓고 외지인 네댓 명이 반대서명을 받고 있었다.

    그는 농성장 근처로 안 가려고 했다. "무엇이 겁나서 그러느냐?" 물으니, "저놈들을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남의 마을에서 두 달 가까이 상복 입고 돌아다니는 인간이 없나. 한때는 전문시위꾼들이 다 내려왔다. 밤이면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난장판을 벌였다. 자연생태계를 떠들던 놈들이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제멋대로 버렸다. 신부(神父)들이 돈을 대주니 '니나노판'이 된 것이다. 이런 광경은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른다. 대체 마을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됐다."

    ―신부들이 돈을 대다니?

    "신부들이 '강정 멸치젓'이라고 팔아 투쟁 기금을 모았다. 여기는 멸치도 안 나는데. 10억원 이상 모아 도로변 입구에 집까지 지었다. 매일 해군기지 반대 미사를 한다. 성당마다 여기로 신도들을 보낸다. 내가 천주교를 좋아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겪고는 도대체 성직자들이란 뭔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붉은발말똥게를 살리자'는 현수막 구호처럼, 자연 생태계를 위한다는 것은 늘 호소력이 있다.

    "제주도 어느 해변에도 붉은발말똥게가 서식한다. 이걸로 시끄럽게 하자 해군들이 우리 마을의 말똥게들을 잡아 옮겨놓았다. 저네들은 '해군기지가 들어설 바다 밑에 산호(珊瑚)가 많아서 안 된다'며 반대도 했다. 결국 국민세금 21억원을 들여 조사에 응했다. 안 나왔다. 그러고는 그만이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찬성하던 주민들이 어떻게 그렇게 돌아섰는지 믿을 수 없다."

    ―같은 마을 안에서 반대 측 주민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지금은 서로 말도 안 한다. 유치 결정(2007년 8월)이 된 뒤 민노총과 참여연대 사람 서너 명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얼마 안 넘어가더니 나쁜 말을 계속 퍼뜨리니 주민들이 확 넘어가더라. 대체 어떻게 교육시켰는지, 글도 잘 모르는 아줌마들이 무슨 법(法)을 그렇게 잘 아는지 원."

    ―반대 측에서는 유치신청 과정에서 하자가 있었다고 문제삼았던데.

    "그놈들이 무슨 말을 못 만드나. 누차 이야기해왔다. 마을 향약(鄕約)에 주민 51명만 참석하면 총회 성원이 되게 되어 있다."

    ―주민이 몇 명인가?

    "1500명인데, 총회에 참석을 잘 안 한다. 당시 130명이 참석했다. 마을회관에서 1시간 동안 회의해 신청 여부를 결정했다."

    ―선생은 여기서 얼마나 살았나?

    "15대째 살고 있다."

    ―지금 와서 보니 풍광이 참 좋다. '올레길 7코스'가 여길 지나고 있다.

    "제주도에서 아름답지 않은 동네가 어딨나. 해군기지를 하려는 땅은 '유원지 지구'로 20년 동안 묶여 있었던 곳이다. 논들이 띄엄띄엄 이어져 있고, 도로가 없는 맹지였다."

    ―마을 이장을 맡았을 때 굳이 해군기지 유치신청을 할 이유가 있었나?

    "지역개발지원금이 1조5000억원이 된다. 우리 마을은 도로망이 안 좋아 낙후돼 있었다. 과거에 초등학교에는 학생 수가 250명까지 있었다. 지금은 80명도 안 된다. 작년에 입학생이 8명이라고 들었다. 밀감 농사만 지어서는 될 일이 아니다. 처음 유치했을 때는 동네 유지들이 술 사주며 '마을 발전을 100년 앞당기게 됐다. 정말 고생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돌아서서 나를 매도하더라. "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발전은 되겠지만 강정마을의 본래 모습이 사라지지 않겠나?

    "나도 고민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주고받는 게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난개발이 될 리 있겠나. 1조5000억원의 지원금이면 우리 마을을 더 매력적으로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 개발하지 말라면 서울에서도 아파트나 문화시설을 짓지 말아야 한다. 자기 가족은 제주시로 나가 살면서 여기에 집과 땅이 있다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상복 입고서 반대하는 시위.
    ―반대 주민 수가 더 많았다고 들었는데.

    "유치 결정 직후 외부세력이 들어와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해군기지를 짓고나면 공군 전투비행장도 들어와 마을이 없어진다' '군부대 근처에 술집이 생겨서 애비 없는 자식이 생긴다'고 했다. 찬성 주민들을 향해서는 '매향노(賣鄕奴)'라고 했다. 이렇게 계속 교육시키니까 결국 무너지더라. 어어어 하다가 넘어간 꼴이다."

    ―찬성하는 주민들을 규합해 대응해본 적은 없었나?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막 나서질 않는다. 저들처럼 얼굴에 철면(鐵面)을 깔면서 할 줄 모른다.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을 내놓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저쪽에서는 시위 모금도 잘 걷히지만, 우리 추진위원회는 운영 경비가 없다. 해군기지 들어오면 좋고 안 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저네들처럼 집요하게 조직적으로 할 줄을 모른다."

    ―반대세력과 직접 부딪힌 적은 없었나?

    "2007년 설명회장에 들어가다가 집단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 일주일 살았다. 7명을 고발했는데, 다들 안 했다고 발뺌했다. 저네들은 돌아서면 거짓말했다."

    ―마을 이장을 언제 그만뒀나?

    "이장 임기는 2년이다. 2007년 12월까지가 임기였다. 하지만 해군기지 유치 신청을 하고 난 뒤로 반대 측에서 탄핵을 했다. 그해 8월말로 그만뒀다."

    ―지금 선생이 맡고 있는 '해군기지추진위'는 언제 만들었나?

    "내가 마을 이장을 할 때다. 당초 시의원을 지냈던 분께 맡아달라고 하니 안 하겠다고 했다. 마을 총회에서 내게 맡으라고 해서 받아들였다. 반대 측에서 거짓말로 기자회견을 열면, 내가 '그렇지 않다'고 반박회견을 하는 입장이 됐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하지 않나."

    ―이장을 그만뒀으면 손을 떼버리면 되지, 왜 여전히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나?

    "이걸 하면서 인간적으로 얼마나 배신감이 들었는지 모를 것이다. 우리 가족까지 욕을 먹고 있다. 정말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만두면 찬성해온 주민들이 나를 배신자라고 욕할 게 아닌가. 내가 유치 신청을 꺼냈으니 물러설 수가 없게 된 거다. 10년만 지나면 우리 마을이 달라질 것이다. 그때는 평가해주지 않겠나."

    ―혹시 추진위원장을 맡아 개인적으로 다른 이득을 보는 게 있나?

    "젠장할, 바로 반대 측에서 '해군에서 돈 받고서 저런다'고 퍼뜨렸다. 내가 돈 받고 마을을 팔아먹었다고 욕해대니, 주민들이 그렇게 믿을 것 아닌가. 이장 시절 자문위원을 맡았던 이들조차 나를 매도했다. 이 공사를 현대나 재벌그룹이 하면 몰라도, 어떻게 군이 돈을 주고 할 수 있겠나. 내가 겪어보니 군은 쓸 수 있는 예산도 별로 없더라. 해군기지 문제로 서울에 올라갈 일이 있어도 다 내 돈을 썼다."

    ―어쨌든 주민들에게 보상은 다 이뤄진 상태인가?

    "2010년에 다 끝났다. 그게 충분했으니까 보상 말은 나오지도 않는다. 충분하지 않았으면 '빼앗았다'고 떠들었겠지."

    ―선생은 얼마나 보상을 받았나?

    "나는 받은 게 없다. 수용 토지가 있는 주민이나 해녀들이 보상을 받았다(모두 626억원)."

    ―지금 주민들 사이에서 찬반 비율은?

    "반반쯤 될까. 주민들이 전부 거짓말만 들었으니까. 넘어갈 사람은 다 넘어갔다. 유치 직후에는 몇 명만 들어와 세뇌시키다가, 작년 3월부터 '평화버스'니 '평화비행기'니 하며 단체로 내려왔다. 집회 전날이면 우리 펜션에서는 아예 외부 손님을 안 받는다."

    ―정치인도 많이 내려왔다. 선생 입장에서는 누가 가장 보기 싫었나?

    "정동영 의원이다. 여러 번 내려왔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대통령 후보까지 했는지, TV에 그 인간 낯짝만 나와도 채널을 돌려버린다."

    ―본인은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할 텐데.

    "착각 속에서 사니까. 그런 인간들이 마을 주민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북한에서 내려보낸 놈들이 아닌가 의심들 때도 있다."

    ―순수한 뜻도 있지 않겠나?

    "나라 전체를 생각해봐도 국가 안보사업이 아닌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안보 없이 평화를 지킬 수 없다'며 추진했다. 그때는 내게 '선생님 같은 분이 있어야 한다. 용기를 내라'고 말했다. 이제 유치한 사람은 역적이 되고, 반대한 사람은 영웅이 됐다."

    ―선생은 "진해·부산에 해군기지가 들어서 마을이 망한 적이 있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주민들에게 그렇게 못 믿겠다면 한번 가보자고 했다. 해군의 협조를 받아 주민 30명씩 7차례나 해군기지를 시찰갔다. 샌디에이고와 하와이까지도 가봤다. 반대 측 주민도 네댓명 데리고 갔는데, 이들은 철조망 등을 찍어와 반대 선전을 하더라. 반대세력은 북한 편인지, 중국을 두둔하는 것인지."

    ―혹시 군(軍) 출신인가?

    "육군을 사병으로 제대했다. 마을 이장을 맡고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해야겠다고 시작한 것이 이렇게 된 것이다."

    ―반대 측에서는 선생을 '보수꼴통'이라고 하지 않겠나?

    "과거에는 이렇게 확고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이들의 본색을 알면서 내가 그런 소릴 들어도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숫자만 많았지, 줏대가 없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이날은 포구의 바닷바람이 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