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반 친구에 물고문까지 당한 중학생 끝내…
대구=최재훈 기자
같은 반 학생들의 시달림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 중학생 김모(14·대구 수성구)군이 남기고 간 편지에는 부모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이 절절히 묻어났다.
아래는 유서 전문.
◇유서 전문
제가 그동안 말을 못했지만, 매일 라면이 없어지고, 먹을 게 없어지고, 갖가지가 없어진 이유가 있어요. 제 친구들이라고 했는데 ○○○하고 ○○○이라는 애들이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절 괴롭혔어요. 매일 라면을 먹거나 가져가고 쌀국수나, 용가리, 만두, 스프, 과자, 커피, 견과류, 치즈 같은 걸 매일 먹거나 가져갔어요.
3월 중순에 ○○○라는 애가 같이 게임을 키우자고 했는데 협박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매일 컴퓨터를 많이 하게 된 거에요. 그리고 그 게임에 쓴다고 제 통장의 돈까지 가져갔고, 매일 돈을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 등수는 떨어지고, 2학기 때쯤 제가 일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그 친구들이) 계속 돈을 달라고 해서 엄마한테 매일 돈을 달라고 했어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담배도 피우게 하고 오만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고, 빡지까지 써줬어요. 게다가 매일 우리 집에 와서 때리고 나중에는 ○○○이라는 애하고 같이 저를 괴롭혔어요.
키우라는 양은 더 늘고, 때리는 양도 늘고, 수업시간에는 공부하지 말고, 시험문제 다 찍고, 돈벌라 하고, 물로 고문하고, 모욕을 하고, 단소로 때리고, 우리가족을 욕하고, 문제집을 공부 못하도록 다 가져가고, 학교에서도 몰래 때리고, 온갖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는 등 그런 짓을 했어요.
12월에 들어서 자살하자고 몇 번이나 결심을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 아빠가 생각나서 저를 막았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저도 정말 미치겠어요. 또 밀레 옷을 사라고 해서 자기가 가져가고, 매일 나는 그 녀석들 때문에 엄마한테 돈 달라하고, 화내고, 매일 게임하고, 공부 안하고, 말도 안 듣고 뭘 사달라는 등 계속 불효만 했어요. 전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너무 죄송했어요. 하지만 내가 사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족이었기에 쉽게 죽지는 못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몸은 성치 않아서 매일 피곤했고, 상처도 잘 낫지 않고, 병도 잘 낫지 않았어요. 또 요즘 들어 엄마한테 전화해서 언제 오냐는 전화를 했을 거예요. 그 녀석들이 저한테 시켜서 엄마가 언제 오냐고 물은 다음 오시기 전에 나갔어요.
저, 진짜 죄송해요. 물론 이 방법이 가장 불효이기도 하지만 제가 이대로 계속 살아있으면 오히려 살면서 더 불효를 끼칠 것 같아요. 남한테 말하려고 했지만 협박을 했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쯤에 ○○○이나 ○○○이란 애들이 자세하게 설명해줄 거예요.
오늘은 12월 19일, 그 녀석들은 저에게 라디오를 들게 해서 무릎을 꿇리고 벌을 세웠어요. 그리고 5시 20분쯤 그 녀석들은 저를 피아노 의자에 엎드려놓고 손을 봉쇄한 다음 무차별적으로 저를 구타했어요. 또 제 몸에 칼등을 새기려고 했을 때 실패하자 제 오른쪽 팔에 불을 붙이려고 했어요. 그리고 할머니 칠순잔치 사진을 보고 우리 가족들을 욕했어요. 저는 참아보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걔들이 나가고 난 뒤, 저는 제 자신이 비통했어요. 사실 알고 보면 매일 화내시지만 마음씨 착한 우리아빠, 나에게 베푸는 건 아낌도 없는 우리엄마, 나에게 잘 대해주는 우리 형을 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거예요.
제가 일찍 철들지만 않았어도 저는 아마 여기 없었을 거에요. 매일 장난기 심하게 하고 철이 안든 척 했지만, 속으로는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사랑했어요. 아마 제가하는 일은 엄청 큰 불효인지도 몰라요. 집에 먹을 게 없어졌거나 게임을 너무 많이 한다고 혼내실 때, 부모님을 원망하기보단 그 녀석들에게 당하고 살며 효도도 한번도 안한 제가 너무 얄밉고 원망스러웠어요. 제 이야기는 다 끝이 났네요. 그리고 마지막 부탁인데, 그 녀석들은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알고 있어요. 우리 집 도어키 번호 좀 바꿔주세요. 저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저희 가족을 기다릴게요.
12월 19일 전 엄마한테 무지하게 혼났어요. 저로서는 억울했지만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그 녀석들은 그날 짜증난다며 제 영어자습서를 찢고 3학년 때 수업하지 말라고 ○○○은 한문, ○○○는 수학책을 가져갔어요. 그리고 그날 제 라디오 선을 뽑아 제 목에 묶고 끌고 다니면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라 하였고, 5시 20분쯤부터는 아까 한 이야기와 똑같아요.
저는 정말 엄마한테 죄송해서 자살도 하지 않았어요. 어제(12월 19일) 혼날 때의 엄마의 모습은 절 혼내고 계셨지만 속으로는 저를 걱정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부모님한테나 선생님, 경찰 등에게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걔들의 보복이 너무 두려웠어요. 대부분의 학교친구들은 저에게 잘 대해줬어요. 예를 들면 ○○○, ○○○, ○○○, ○○○, ○○○, ○○○, ○○○, ○○○, ○○○, ○○○, ○○○, ○○○, ○○○, ○○○, ○○○, ○○○ 등 솔직히 거의 모두가 저에게 잘해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저는 매일매일 가족들 몰래 제 몸의 수많은 멍들을 보면서 한탄했어요.
항상 저를 아껴주시고 가끔 저에게 용돈도 주시는 아빠, 고맙습니다.
매일 제가 불효를 했지만 웃으면서 넘어가 주시고, 저를 너무나 잘 생각해주시는 엄마, 사랑합니다.
항상 그 녀석들이 먹을 걸 다 먹어도 나를 용서해주고, 나에게 잘해주던 우리 형, 고마워.
그리고 항상 나에게 잘 대해주던 내 친구들, 고마워.
또 학교에서 잘하는 게 없던 저를 잘 격려해주시는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바꿔주세요. 걔들이 알고 있어서 또 문 열고 저희 집에 들어올지도 몰라요.
모두들 안녕히 계세요.
아빠 매일 공부 안 하고 화만 내는 제가 걱정되셨죠? 죄송해요.
엄마 친구 데려온답시고 먹을 걸 먹게 해준 제가 바보스러웠죠? 죄송해요.
형. 매일 내가 얄밉게 굴고 짜증나게 했지? 미안해
하지만, 내가 그런 이유는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란 걸 앞에서 밝혔으니 전 이제 여한이 없어요. 저는 원래 제가 진실을 말해서 우리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지만 제가 진실을 말해서 억울함과 우리가족 간의 오해와 다툼이 없어진 대신, 제 인생 아니 제 모든 것들을 포기했네요. 더 이상 가족들을 못 본다는 생각에 슬프지만 저는 오히려 그간의 오해가 다 풀려서 후련하기도 해요. 우리가족들, 제가 이제 앞으로 없어도 제 걱정 없이 앞으로 잘 살아가기를 빌게요.
저의 가족들이 행복하다면 저도 분명 행복할 거예요.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언젠가 우리는 한 곳에서 다시 만날 거예요. 아마도 저는 좋은 곳은 못갈 거 같지만 우리가족들은 꼭 좋은 곳을 갔으면 좋겠네요.
매일 남몰래 울고 제가 한 짓도 아닌데 억울하게 꾸중을 듣고 매일 맞던 시절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그리고 제가 없다고 해서 슬퍼하시거나 저처럼 죽지 마세요. 저의 가족들이 슬프다면 저도 분명히 슬플 거예요. 부디 제가 없어도 행복하길 빌게요.
-우리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는 막내 ○○○ 올림-
P.S. 부모님께 한 번도 진지하게 사랑한다는 말 못 전했지만 지금 전할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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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중학생은 '인간 리모컨'처럼 협박 당했다
대구=최재훈 기자
잔인한 아이들 - '디질래? 내 숙제 대신 해' '살고 싶으면 용돈 갖고와'
친구 2명이 하루 최대 50건, 수개월간 휴대폰 문자 날려
자기 레벨 올리려 "잠자지마, 게임해" "빈폴 옷 사와라" 자살 전날까지 협박
친구들의 괴롭힘을 못 견뎌 지난 20일 스스로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대구의 김모(14·중2)군은 가해 학생들로부터 분 단위로 휴대전화 메시지로 협박받으며 온라인게임 레벨 올리기와 숙제를 대신 해주고, 돈과 옷 등을 갈취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조폭보다 더한 것 같다"고 했다.
'청소 그만하고 방에 가서 빨리 (내 숙제) 15장 써라', '(내 숙제) 안 하면 내일 50분 맞지 뭐', '1분 안에 두 가지 중에서 정해라. 50분 맞을래 15장 쓸래? 다른 답 할 때마다 5분씩 맞는다'….
김군 휴대전화에 들어와 있던 문자메시지다.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수개월 동안 김군은 같은 반 친구인 서모(14)군과 우모(14)군으로부터 마치 리모컨으로 조종당하듯 시시각각 시달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23일 경찰이 숨진 김군과 가해 학생들의 휴대전화에서 삭제된 문자메시지를 복원한 기록에 따르면, 서군 등은 하루에 적게는 3∼4건, 많게는 40∼50건씩 메시지 지시를 보내며 김군을 괴롭혔다. 경찰은 "서군이 김군에게 컴퓨터게임을 대신 시키면서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한 '메이플 스토리'라는 온라인게임은 오래 할수록 레벨이 높아지고 아이템도 얻을 수 있어, 서군은 자신의 캐릭터 레벨을 높이기 위해 김군이 자기 이름으로 게임하도록 시켰다.
- 숨진 김모군을 괴롭혀온 가해학생 2명이 진상조사를 받기 위해 교사와 경찰관과 함께 학교 내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TV조선 제공
서군은 김군의 잠자는 시간까지 체크하며 게임을 대신 하도록 했다. 서군이 무려 40여통의 메시지를 보낸 지난 9월 14일에는 '자고 싶으면 빨리 해라. 못 잔다', '지금 가서 샤워하고 잠 깨라. 그리고 바로 겜' 등의 메시지를 보내며 게임을 시켰다.
김군이 말을 잘 듣지 않았는지 새벽 2시가 넘은 시각 ‘○○아. 디질래?’ 하며 욕까지 퍼부었다.
며칠 뒤엔 ‘빈폴 바람막이 사라고’ 등의 메시지를 보내며 옷을 가져오라고 강요했고, ‘일하고 돈 받으라니까 똥파리 새끼야’, ‘어제 많이 했으니까 용돈 주세요. 이렇게’ 등 어머니에게 돈을 받는 방식까지 지시했다.
10월부터는 ‘5대 추가. 닥치고 하라는 대로 하라고^^ 요즘 안 맞아서 영 맛이 갔네’, ‘문자 답 늦을 때마다 2대 추가’, ‘그냥 해라 미친 것. 살고 싶으면 해라’ 등 구체적 폭행과 협박의 정황이 드러났으며, 수시로 ‘지금 내 기록 다 삭제하고 전체잠금으로 비번 걸어놔라’, ‘기록 다 삭제’ 등의 문자로 흔적을 없애려고도 했다.
김군이 숨지기 전날인 지난 19일 밤 11시 36분엔 ‘게임 빨리 안 하나’라고 보냈고, 대답이 없자 3분 뒤 ‘와 대답 안 하노’라고 보냈다. 김군이 받은 마지막 메시지였다.
경찰은 이처럼 벼랑끝에 몰리면서도 김군이 주위에 알리지 못한 이유를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서군과 우군을 다시 불러 2차 조사를 벌였고, 이들은 숨진 김군의 유서내용 대부분을 시인했다.
경찰에 따르면, 서군은 숨진 김군과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고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가까워졌다. 게임을 함께 하면서 우군이 끼어 셋이 친구처럼 지냈다. 셋 다 키가 비슷(약 170㎝)하고 덩치는 오히려 숨진 김군이 제일 컸다. 셋 다 학교에서 잘못을 저질러 처벌을 받은 적도 없었고 성적도 평균 수준은 됐다.
셋 모두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중산층 가정 출신이다. 하교 후에는 매일 3∼4시간씩 함께 놀았는데 먹을거리가 많고 부모가 늦게 오는 김군 집에서 주로 놀았다.
이 과정에서 서군이 대장 노릇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서군이 평소 ‘사촌형이 깡패다’, ‘우리 형 뭐 하는지 알제’, ‘말 안 들으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하며 겁을 준 것으로 조사됐다”며 “같은 반 학생 18명을 조사한 결과 서군에게 돈을 뺏겼다는 학생도 찾았다”고 말했다.
서군은 경찰에서 “괴롭히긴 했지만 죽을 만큼 힘들었는지 몰랐다”고, 우군은 “서군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나도 모르게 폭행 등에 가담하게 됐다. 김군에게 미안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해당 학교와 교육당국은 “세 학생 모두 내성적 성격의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