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이의 성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신등급, 4.X, 9월수능모의고사 5.X...
그렇게 공부와 담 쌓고 사는 것에 비해서는 정말 상당한 성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충신이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을 정성스레 하향,적정,소신, 상향 등으로 정리한 엑셀파일을 보면서
눈이 많이 아파왔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은 물론 전무하였고
경기도에도 그런대로 이름있는 대학들도 전무하였으며
경기도에서도 이름없는 혹은 정말 난생 처음 들어보는 대학 몇개와 강원도 충청도에 있는 또는 저 멀리 남쪽이나 동쪽 끝으로 내려가야 하는 학교 이름들의 성찬이었습니다.
추석연휴가 되기전에 페이스북에 녀석이 말한대로 '빡쳐서' 원서를 낸 직업전문학교는
추석연휴 내내 우리 부부의 기분을 참으로 꿀꿀하게 만드는 짓이었습니다.
저는 녀석의 '그냥 아무데나 가고 놀자'는 마음을 읽었으므로 황당하였고
아내는 분노를 어딘가 발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추석연휴가 끝나고 수요예배 후에 충신이를 앉혀 놓고 우리 부부는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고 녀석을 설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직업전문학교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첫 학기에 1/3이 그만 두는 곳이며, 만약 학점은행제를 따라 학점을 이수하지 못하면 그곳을 나와도 그냥 고졸신분인 곳이다.
우리도 네가 2년제 들어가면 경비절감이라는 면에서 매우 고마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다른 많은 기회를 상실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네가 고3 시작하기 바로 전에 원서를 냈던 비파괴전문학교도 마찬가지였지만 2년 기술을 배우고 5년동안 군대에서 부사관 근무를 하면서 경력을 쌓아야 되며 결국 취직도 자기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지 않았느냐. 이곳도 마찬가지다. 왜 똑같은 짓을 반복하느냐?
솔직히 지방대학 그것도 지명도도 없는 대학들 4년제 나와봐야 2년제 마친 사람들보다 더 나으란 법이 없으며 실제로 훨씬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것이다. 2년대신 4년이라는 시간을 말이다.
우리의 말이 다 마치기도 전에 충신이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자기도 자기가 '빡쳐서' 원서냈던 곳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았는데
일단 그곳을 합격해도, 수시, 정시등 다른 시험과정들을 다 칠 수 있다고 해서 이상했으며, 대학을 나오고도 취직이 안 되거나 전공분야를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주로가는 곳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첫 학기를 마치면 1/3이 그만두는 그런 곳인지는 몰랐다.
어쨌든 그래서 이미 선생님과 상담을 하여 몇몇 대학을 추천을 받았다. 특히 폐교의 위기에 처한 대학을 지원하면 그 학교가 없어지면서 주변의 다른 대학에 자동 편입이 되는 것을 노리는 것도 좋겠다고 말씀하셨다.(이런 주장은 과연 사실일지 매우 불분명한 것입니다.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할 때면 가끔 써왔던 녀석의 트릭일 수 있으니까요. 이런 주장도 하였지요. 선생님이 지금 수능 공부해서 되겠느냐? 하시면서 무조건 낮춰서 수시로만 가야한다고 하셨다고. 선생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남은 기간 공부하기 싫다는 것을 합리화 하는 녀석의 전략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날 녀석은 다섯군데의 대학을 지원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경기도의 P대 미국학과, H북대, H세대 다자녀전형 경찰행정, H성대, 그리고 천안의 B대 경영학과?
왜 지원하느냐 물으니
P대 미국학과는 자기가 미국에 가서 살 지도 모르므로 지원
H북대는 붙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제일 커서 지원
H세대는 2명밖에 안 뽑아서 못 붙겠지만 혹시나 해서 그냥 지원
H성대는 달리 지원할 데가 없어서 지원.
B대는 아버지가 그런데는 어떠냐 하셔서 지원...
참 한심한 대답들이었습니다.^^ 이중 다만 H북대라는 곳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검색을 좀 해 보았더니, 어떤 아버지목사가 세운 학교이고 아들 국회의원이 횡령으로 구속된 매우 악명높은 대학이라서 허락하지 아니하고, 4군데 원서를 내고 결제를 하여 주었습니다.
이후 녀석은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주장을 올려 놓았습니다.
"붙을 수 있는 대학에는 아버지가 지원을 못하게 막았다."
허걱!!
물론 H북대를 지원 못하게 하면서 제가 다른 비슷한 수준의 학교를 한군데 추천해 주었었습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J신대학 사회복지과. 녀석이 거부했지요. 거긴 신학대와 음대와 사회복지과밖에 없잖아요? 저는요 여러가지 학문을 맛보고 싶다구요! 크~...
며칠을 버티더니
어제 결국은 그곳에도 원서를 넣었습니다. 이번에 어디든 반드시 붙어야 놀 수 있을테니...
그러나 지원한 곳마다 경쟁률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학교 선생님들이 특별히 올해는 수시를 강력하게 권하고 있고, 충신이 지원한 정도 되는 학교엔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가장 많이 몰릴 것이며 여전히 무한지원이 가능한 체제이니까요.
오늘은 제법 초조함도 보이더라구요. 10월6일에 발표라면서 말이죠.
...
요즘 아침마다 학교 가는 녀석에게 인삿말을 이렇게 합니다.
수능 공부를 포기하지 말아라. 특히 영어는 수능이 아니더라도 못하면 안 되는 것이니 영어를 열심히 해라.
녀석은
저의 이 처량한 인삿말에 피식 웃으며 뒷 걸음 치고, 다녀오겠습니다 한마디 외치고는 쏜 살같이 사라집니다.
그래도 본인은 나름대로 고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가면 철이 들 것이고...
반드시 스스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그런 날이 찾아올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저 자신을 세뇌시키며.
그 녀석의 피식 웃고 뒷걸음치는 모습을 제 눈에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낮고 굵은 저음의 인삿말을 제 귀에
행복한 잔상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ㅜㅜ...
-
아이들 입시 때가 되면 모든 부모들이 가슴앓이를 하는데,들어 갔다고해도 취업문제로 더 큰 고민덩어리가 있으니....
답글
인생이 고해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
조동수2011.09.26 22:58 신고
항상 눈으로만 읽다가 처음 남겨봅니다. 부모님의 마음과 자녀의 마음은 다르겠죠?^^; 저는 자녀의 마음으로써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고 대안들을 제시해주는 부모님이 참 부럽군요. ^^ 반드시 스스로 책임질 날이 닥쳐왔을 때, 왜 그때 날 더 공부시켜주지 않았냐 라고 따지는 아들이 아니라,,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성숙하게 책임감있게 잘 헤쳐나갔으면 좋겠네요^^ 어렸을 적 공부못했던 애들이 나중에 꿈을 찾아서 열심히 매진하여 좋은 결과를 향해 과정을 잘 밟고 가는 모습들을 보면 아드님은 잘할 거에요!!^^ 항상 좋은글들 감사합니다.
답글 -
특히 이제 1년도 남겨 놓지 않은 한빛이의 일상을 읽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백배 공감합니다.
답글
좀더 나은 성적이라고해서 별로 다를 건 없답니다.
수시든 입학사정관제든 스펙이나 논술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기에
내신이 약간 더 낫고, 오락가락하는 모의고사 등급이 좀 낫다고해서 시원한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처음으로 일전에 교장,교감,진로주임 선생님과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가 있었답니다.
학교활동과는 담을 쌓고 있는터에 뒤늦게 독서,토론동아리를 주도해서 만든 엄마를 따라
부화뇌동하는 건 아닐까 모호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경과로 인해서요.
아직도 많은 부분 부모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스펙이 대학에서 요구하는 길이라는 생각인데
그것마저도 자격지심에서 오는 부모의 항변같은 것일 수도 있거든요.
저는 일단 모든 게 여의치 않으면 한얼이와 같은 진로를 결정하겠다고 말씀드렸답니다.
지방대, 재수는 시키지 않겠다는 제 말에 교장선생님께서 참 슬프다고 하시더군요.
이유야 여하튼 학교에서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바라보는 아이 엄마가 하는 말이 그렇겠지요.
충신이가 시행착오를 겪는 만큼 자기 길을 잘 찾아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좀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갔던 길을 다시 돌아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요.
충신이도 부모님께서 그리고 저랑 한빛이에게도 건투를 빌어 봅니다. -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에는 나쁜 것, 모난 것도 들어 있는 거라던데...
답글
충신이는 잘 될 겁니다. 기본적으로 긍정적 사고와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잖아요.
울집은 2학년 차이인 두 녀석 모두 재수를 했으므로 4년 동안 늘 입시생이 있었던 셈인데,
고민하며 진로 걱정을 나눈 적이 없습니다.(저만?)
저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승낙한 것이지요.
지나고 보니 관심갖고 지도해 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성 문제로 정민이가 힘들어 했었거든요.
다행이 스스로 적응해서 역전에 성공한듯 싶긴한데...첫 단추를 잘끼웠으면 좀 더 효율적이었지 싶습니다.
(힘들었던 게 나중에 인생 전반적으론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요)
장래 희망...어릴 때 부터 정해져서 그에 맞게 노력함이 바람직한데,
유민이는 동물 사육사가 꿈이라던데...그래서, 강아지...고양이...키워야된다고 합니다만~~^^-
주방보조2011.09.27 16:11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일...저도 그게 믿는 구석이랍니다.
충신이는 다음과 같은 말을 페이스북에 펼쳐 놓았습니다.^^
>>우리는 아직 젊어
벌써부터 체념따위 배울 나이가 아니란 말이야
대학?꼭 4년제를 가야하는것도 아니고
꼭 대학 자체를 나와야 하는것도 아니야
대학이라는것은 세상에 나가는 좋은 조력자이지만
이런 교육체제가 맞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길이 있는거야
대학을 생각할때,꼭 마음에 드는 대학에 가야한다는 법은 없어
그래서 나는 (정)x균이를 볼때마다 불안해
눈높이가 너무 높은것은 아닌지
그래서 더 큰 절망과 회한에 빠지는것이 아닌지
재수할 생각이 없다면,안전권의 대학을 넣고
희망을 가지자
안좋은 대학 나오면 어때?
그 분야 안에서는,우리 모두...천재가 되자 이거야
그리고 마음에 안드는 분야라면
과감하게
다른것을 찾아갈수도 있어
우리의 진학문제 하나로 인생을 결정짓는것처럼 말하지 마
인생은 정말 가치가 높은 상품이야
지금까지 살아온 700억명의 사람이 인정해온,최고의 상품이야
이런 상품을
주변 환경이 안좋다고
그렇게 결과론적으로 말할수 있는걸까?
다시 말하지만
우린 아직 젊어
다른건 몰라도
젊은것 빼면 시체인 사람들이잖아
희망을 가지자
나의 친구,나의 사람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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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사용자2011.09.27 23:52 신고
신분과 계급의 타파...
답글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 민주주의 체제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에게 적절한 말인가 모르겠습니다.
과연 이 세대를 '신분의 차별이 철폐된 사회'로 볼 수 있을까요?
오늘의 현대사회에서 철저하게 개인의 신분을 규정해 주는 것이 있지요.
가장 체감도 높은 '돈'이라는 것과 '학력'이라고 하는 것...
(이것이 권력으로 직결되는 시스템인 것 같이 보이기도 하네요)
특히, 학력이라고 하는 영역에서,
유치한 표현 쓰자면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하는 것.'
열등한 인간의 볼맨 소리 같기도 하겠지만,
이러한 사회적 정신시스템 속에서 끊임없이 사회적 약자층이 더해지고 있다고 봅니다.
결국 '양극화'라는 치명적 사회악으로 치닫게 하는 한 요인으로 보구요.
그런데도, 그러하기에 더욱 격렬해지는 신분상승을 위한 온갖 부정적 의지의 결과물들에 회의적이지요.
실제 삶의 체감 온도가 그러할지라도...
그래도 이러한 기준이 개인의 인격마저 규정하는 도구가 되지않길 바라지만,
분리될 수 없는 세트속성을 가졌다고 보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세태가 거절할 수 없는 물결이라면
그저 죽은 물고기처럼 떠내려 갈 것이 아니라 헤엄치는 방법을 배워야 겠지요...(_._)*
그러나 그 방법의 모색이라는 것이 몹씨도 회의적이어서... 생각하는 자체가 피곤하네요.-
알 수 없는 사용자2011.09.27 23:52 신고
그래요.
올려주신 글은 위의 제 답글과는 관점이 다른 얘기지요.
저의 답글은 글의 소스가 된 사회적 분위기, 그 정서에 대한 오랜 제 감각에서 나온 쉰소리일뿐이겠습니다.^^*
표면적 갈등을 보이지만,
소박하면서도 진정 가득한 아버지의 자애(염려)가 담긴 글이네요.
드러나진 결과의 어떠함보다도 아들의 태도에 대해서 염려하시는...
또 아들의 장래와 직결되는 중요한 선택의 시점이기에
더욱이 간절해지는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런 아버지의 아들인 충신군이 정말 많이 부러워요.
충신에게 제 이 마음을 보여주고 싶을정도로요~
저는 이런 아버지에 대한 유사경험이 전무하거든요... -
주방보조2011.09.28 00:43
충신이의 꿈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것입니다.
대학에 가면 세가지를 하고 싶답니다. 핸드폰, 렌즈,염색... 공부는 아니지요^^
그런데 세상이 그리 녹녹치 않음을 저는 녀석이 빨리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어느과를 전공했느냐?
만일 그 사람이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면 그런 것은 정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라고 저도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충신이는"...문제 있습니다.
앞으로 변화되어야할 일이지요.
...
저도 제 아버지에 대한 경험은 매우 제한적이고 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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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이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보니 앞으로 크게 될 인물입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저런 아이는 한 번 필 받으면 열심히 할 사람입니다.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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