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예수와 안티예수

<제55호> 독자와의 대화... 2001년 05월 20일

주방보조 2011. 9. 3. 21:57

<제55호> 독자와의 대화... 2001년 05월 20일
1. 개신교쪽에서는 단군상을 '우상'이라고 규정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타파해야할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우상'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새겨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우상은 대단히 주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어떤 대상을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것이 우상이 될 수도 있고
예술품이 될 수도 있고 교육적 조형물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는 탐심이라는 말씀이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단군상이 타파해야할 대상으로서의 우상이라는 명제가 맞으려면
"기독교내부"에서 혹은 기독신자 중 어떤이가 그 단군상에 소원을 빌고 경배하고
구원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타파해야할 우상이라는 말은 적절한 말이 아닙니다.

2. 단군상을 파괴한다든지, 거리에서 '주여'를 외쳐부르며 '시위'를 하는 개신교의 '전투적인' 신앙태도 때문에 많은 비신자 혹은 일부 신자들이 심한 거부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하면 사회와 괴리되지 않는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까?
-제가 칼럼에서도 밝힌 것이지만
성경대로 하면 절대로 사회와 괴리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때 구제에 힘쓴 것은 교회는 그만큼 사회적 역할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또 길거리전도의 경우도 양해를 구하고 원치 않으면 물러서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부분에서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오만하고 어떤 경우는 무례하기까지 합니다.
단군상 파괴의 경우도 바울의 예를 참고하면 답은 자명합니다.
바울이 전도하던 시절도 지금우리나라와 같이 종교다원주의적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이 신상을 파괴한 적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이 스스로 마술책을 불태우고
우상을 버리는 것입니다. 단군상을 파괴하는 행위는 범법행위일 뿐입니다. 사회에서 보면
그러므로
기독교가 사회적 베품의 역할은 도외시하고 이렇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모습들로 인하여
복음전파의 길을 스스로 막아서고 있는 것입니다.

3. 이번 구속 사태에 대해 개신교쪽에서는 항소는 물론 대정부투쟁을 벌이겠다고 크게 흥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또한 이 상황에서 개신교가 바른 믿음으로 대처해 나가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항소는 물론 가능합니다.
그것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법에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도 문제 삼을 일이 못됩니다. 비록 일부 반기독세력의 비난은 따라다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동원한 대 정부 투쟁은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목사님들의 범법은 명백한 사실이고 법원의 판결 또한 법을 떠난 제 3의
다른 세력이 개입했다고 볼 수는 없는 정황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런 식으로 대규모집회를 통한 투쟁을 시도한다면 기독교는 법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법원에 주신 그 권위를 무시함으로서 집단 이기주의적이며 비 성서적인 집단임을 온세상에 공표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므로
단군상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근원을 다시 살펴서 감정적으로서 대응하기보다는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학교에 세워진 단군상은 단학선원의 뇌호흡광고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광고물을 몰래 절단하여 믿음을 과시한 위의 여러 목사님들 때문에 그 광고효과는 기대했던 것의 몇배를 나타냈을 것입니다.)
학교에 교육적 목적으로 인물조형물을 세우는 것은 전혀 문제될것이 없습니다.
이순신이나 세종대왕 김구 유관순등의 조형물들은 이미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단군상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지혜로운 자세일 것입니다.
단, 한문연이라는 단학선원의 광고물로서의 단군상들은 모두 폐기처분하고 말입니다.

이번경우는
너무 성급하게 행동함으로 오히려 오류를 정당화시켜주는 누를 범한 것으로 저는 진단합니다.
항소하여 법의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종교다원사회속에서의 기독교라는 입장을 재삼 숙고하여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