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가 되면서부터
교신이는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3학년 2학기 학급회장, 4학년 1학기 학급회장, 5학년 1학기 학급회장을 하였지만
지난 1학기때 전교 부회장에 출마하지 않은 것이 영 후회되는 눈치더니
이번엔 출마를 결심하고 출사표를 던진 것입니다.
전교부회장 선거에는 학부모 사인도 받아야 하더군요.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해 주면서...잘 해봐...단 한마디를 건네주었습니다.
교신이가 그동안 학급회장이 된 것은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이기 때문이지 공부를 잘 한다든가 허여멀겋게 잘 생겨서가 아닙니다.
물론 사귐성이 우리집 다른 네 아이에 비해 좋고 당연히 친구들도 많은 아이라는 또 다른 장점이 있지만 말입니다.
이번에 5학년 2학기 전교부회장 자리는 여자는 두명 출마해서 1명, 남자는 네명 출마해서 1명이 선출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은 모르겠고
남자아이들은 둘은 지난번 전교부회장 선거에 나왔던 역전의 용사들이며, 나중에 합류한 친구는 두개나 되는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는 다크호스입니다. 게다가 세 녀석 다 교신이 정도의 학급회장은 했으며 생긴 것도 안경 낀 범생이들의 전형적인 모습들입니다.
네거티브적 선거운동은 안된다, 알지? 네~
네 선거니까 너 혼자 해야 한다, 알지? 네~
떨어져도 괜찮다, 알지? 네~
즐겁게, 알지? 네~
그래도..전 걱정이 되어...조금이라도 도와줄 요량으로 "연설문 준비는 잘 되었느냐?" 물었지만 교신이의 답은 언제나 명쾌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50초짜리로 이미 다 해 놨어요."
수요일
교신이는 4절지 두 장을 받아왔습니다.
선거용 포스터를 만들라고 학교에서 나누어준 것인데...녀석의 표정이 무척 침울 했습니다.^^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안방에까지 들리는 듯하여
나가보니...흐릿한 사진한장 프린터로 뽑아놓고, 기호4번 김교신!!!이라고 해 놓은 굵은 글자 뽑아놓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습니다.
투표날인 토요일에 연설이 있지만...이 두장의 포스터가 목,금 이틀동안 현관에 붙어서 자기를 알리는유일한 수단인데 나름 고민이 컸나 봅니다.
저는 끝까지 혼자 힘으로 하게 하려 했지만...마눌님의 간곡한 당부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포스터만 도와주는 것으로^^
딸 셋을 수요일 저녁예배가 끝난 후 소집하여 '김교신일병 구하기'에 투입하였습니다.
새집의 컴퓨터로 사진도 비록 흑백이지만 선명하게 다시 뽑고, 글자들도 크게 다시 뽑아 일일이 자르고...
그 다음은 전 자러 가서 잘 모르지만 새벽 3시나 되어서 두장의 포스터가 완성되었다고, 태풍으로 방충망이 날아갔다는 6시경 전화통에서 나는 진실이의 비명소리와 함께 전해졌습니다.
교신이는 누나들에게 붙으면 한 턱을 내고, 떨어지면 두 턱을 내기로 했다지요?^^
목요일
온 세상이 태풍 때문에 어수선하였습니다.
우리집은 별 탈이 없었는데, 날아간 새집 방충망을 행길가에 세워둔 1톤트럭 위에 망 위쪽이 ㄱ자로 찢어진 채 올려져 있는 것을 겨우 찾아내었습니다.
...다친 사람이 없어 천만 다행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만 해도 대여섯 그루의 나무들이 꺽기거나 뿌리채 뽑혀있었지요.
살아 생전 처음보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태풍 속에서도 비바람에 젖을 지 모르는 교신이의 포스터를 보호하기 위해 비닐을 사러 학교 앞 문방구들을 뒤지며 다녀야 했습니다.^^ 물론 마눌님 명령때문에 말이죠. 결국은 습기차서 오히려 더 나쁠 수 있다는 주장에, 사용되지도 않을 것을...
11시에 학교를 갔다가 3시쯤 돌아온 교신이 왈
"선생님이 제가 전교부회장 출마하는 것에 대해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셨는데, 아이들 반은 좋다고 하고 나머지 반은 별로라고 했어요"
"남자애들은 찬성이고 여자애들은 반대고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힘들겠어^^ㅎㅎㅎ
금요일
학교에서 돌아온
영 힘이 없어보이는 녀석의 표정에서 '떨고 있군' 생각하고,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아빠는 말야 선거에 나가기만 하면 더블 스코어 차로 당선되곤 했단다. 고1때는 공부 1등하는 놈 반장으로 뽑아놓고 부반장을 뽑는데 그 선거에서 28:14로, 대학부 회장으로는 거의 만장일치, 대학원에서는 14:7로 말야, 넌 내 아들이니까 잘 될꺼야"
'전 3학년1학기 회장선거에서 떨어진 적이 있는걸요' ... 허걱...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녀석의 발가락을 제 발가락으로 꼭 잡고
"이건 아바타식 교감인데 말야 아빠의 기운이 너한테 전달되는거야. 어때 기운이 샘솟지? 뭐? 아프다고?ㅋㅋㅋ"
그래서 마지막으로 외쳤지요.
"외식하자"... 나실과 원경 그리고 교신과 저 넷이서 송림식당에 가서 돼지 불백을 사 먹었습니다.
흠...막내 아들 기 살려 주려고 좀 애를 썼지요.^^
오늘 토요일
교신이는 소화가 안 된다면서 아침도 거의 먹지 못하고 학교에 갔고
아내는 교신이의 연설을 들어보겠다며 9시 좀 넘어서 학교에 갔습니다. 진실이 수능볼 때처럼 떨린다면서.
그리고...
고개를 팍 숙이고 돌아왔습니다.
포스터는 다들 칼라사진으로 선명한데 교신이만 흑백이라 맘에 안 들고
교신이는 왜 그렇게 초라해 보이는지, 연설은 왜 그렇게 짧게 하는지,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연설을 길게 잘 하는지, 제스쳐가 얼마나 멋진지, 속만 상했다고...
요즘은 학생회장선거를 위해 쪽집게 과외도 한다하고, 아이들 일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도 열심히 도와주고 한다 하니
다들 잘 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지않소. 그러나 교신이는 연설문도 스스로 작성하고 표어나 공약도 스스로 만들었으니 그냥 그것 자체로 장하다고 여겨줍시다...때아닌 위로를 해야만 했답니다.^^ 참 여자들이 문제야...이 소리를 추임새로 두어번 넣고 말이죠.^^
...
결과는 월요일에 나온답니다.
태풍과 함께...교신이의 선거는 우리집에 이번 주 가장 큰 이야기거리였습니다.
결과는 붙을 놈이 붙을 것이겠지만...기왕이면 교신이가 붙었으면 좋겠습니다. 녀석의 벌겋게 달아오른 눈시울을 보고 싶지는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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