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세상에 대하여

자살 늘리는 노인정책(구인회, 한겨레펌)

주방보조 2010. 4. 16. 02:37

세상읽기] 죽음의 욕망 키우는 고령사회 정책 / 구인회
한겨레
»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 사회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증표가 여럿 있지만, 가파르게 늘어나는 자살만큼이나 뚜렷하게 우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도 없을 거다. 흔히들 자살률은 십만명당 자살자 수로 따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은 지난 20년간 평균적으로 15명에서 12명으로 자살률이 떨어졌지만, 우리는 유독 10명을 밑도는 수준에서 26명으로 치솟았다. 노인의 자살 증가가 특히 두드러져 같은 기간 15명에서 80명 수준으로 5배가 넘게 늘었다. 75살 이상의 고령 노인만을 보면 자살률이 150명을 넘게 되었으니, 20명대 수준에 몰려 있는 서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가히 경악할 수준이다. 프로이트는 자살은 삶의 욕망보다 죽음의 욕망이 커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는데, 그의 말에 따르자면 한국은 죽음의 욕망을 키우는 데에서 일등 사회가 되었다.

철학자 중에는 자살을 인간의 권리로 옹호한 이도 있었지만, 대다수 사회는 자살에 반대하였고 범죄행위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자살에 대해 우리 사회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자살의 이유에 대한 진단도 엇비슷한 맥락에 서 있다. 생명 경시 태도를 꾸짖는 공개적인 탄식이 있는가 하면, 우울증 등 개인의 심리적 취약성을 들어 수군거리는 뒷말도 들린다. 이렇게 우리는 자살을 개인의 태도나 정신질환 등 타고난 기질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세상의 이런 통념이 가진 허점을 드러내고 자살의 원인을 사회적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 젊은 사회에서는 자살이 드물었고, 사회가 해체 위기를 겪는 곳에서 자살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리스와 로마, 오스만제국이 모두 쇠퇴기에 자살의 증가를 겪었고, 프랑스 또한 전체주의 체제가 붕괴되던 혁명 전야에 자살이 갑자기 늘었다.

노인 자살 문제로 범위를 좁히면, 자살의 사회적 원인을 강조하는 뒤르켐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치솟는 노인 자살의 이면에는 그들의 아프고 외롭고 가난한 삶이 놓여 있다. 조사 결과를 보면, 노인 자살의 가장 큰 이유로 질병·장애 등 건강상의 문제가 꼽힌다. 거의 모든 노인이 적어도 하나씩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절반 이상이 독립적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노인들은 은퇴와 함께 많은 사회적 관계가 끊기는 경험을 하는데, 그중 3분의 2는 가족과도 떨어져 살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노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단연 1위를 할 정도로 심각한 빈곤을 겪는데, 노인의 절반 가까이가 가난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사회적 고립의 위험에 놓인 노인들이 겪는 극심한 경제적 궁핍은 가느다란 희망의 끈마저 놓게 하는 치명타가 된다. 빈곤은 생존과 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자긍심까지 갉아먹어 사회적 관계를 무너뜨리는 몰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목숨을 앗아가는 노인의 고통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감증은 대단하다. 모든 선진 산업국가가 연금제도를 통해 노인 빈곤을 해소하였지만, 우리의 국민연금은 그 많은 논란을 거친 뒤에도 3분의 1도 되지 않는 노인에게만 혜택을 주는 제도로 머물러 있다. 빈곤 노인에 대한 생계보장에 대해서는, 별반 형편이 다를 리 없는 자녀들의 부양의무를 내세우며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이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함께 노인이 인구의 20%를 차지할 때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지만, 노후에 대한 국민의 불안은 정부의 안중에 없는 듯하다. 노인을 외면하는 사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노인에게 남은 선택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물어볼 때이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