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네 아들이 너 같다면...

주방보조 2009. 10. 19. 19:27

어제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작은 외삼촌이

우리들과 오랜만에 점심식사를 같이 하였습니다.

 

저는 점심꺼리로 김밥을 사러 가서 잠시 자리를 비웠었고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외삼촌이 충신이 알바를 시켜주겠다며 어깨를 주무르게 하고는...알바비로 2천원을 주었던 것입니다.

 

지난 중간고사 이후 녀석의 통장에 제가 맡고 있던 녀석의 용돈 10여만원을  다 넣어주고 현금카드도 만들도록 알려준 이후

물쓰듯이 일주일간 밤11시넘도록 싸다니며 펑펑 써대더니 ... (필요한 과정이라 믿고 참았지요^^)

돈이 다 떨어지고 나서...시들해 졌었는데^^

갑자기 생긴 2천원에 녀석의 눈빛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를 몇 군데 하더니

4시가 좀 안 되어 다녀오겠다는 말도 없이 사라져서...밤 10시 좀 넘어서 들어왔습니다.

저는 9시50분까지 하는 피씨방을 반드시 들렀으리라...짐작은 하면서도

혹 물어보지 않으면 나중에 '아버지는 제게 무관심하셨잖아요!'라고 따질 것이 틀림없는 놈이므로^^... 부드럽게 물어보았습니다.

 

"너 어디 갔다가 지금에야 들어 오는 것이냐?"

 

"건대쪽으로 나가다가 "우연히" 다른 학교 간 친구를 만나 중학교 동창들 축구하는 데 같이 가서...골키퍼나 했고요500원으로 어묵 사먹고 500원으로 떡볶기 사먹고 그걸로 저녁을 때웠고요..."

 

한참 동안 녀석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 다시 물었습니다.

 

"만약 말이다. 네가 꼭 너같은 아들을 두었을 경우 너라면 어떻게 가정교육을 시키겠느냐?"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녀석이 입을 열었습니다.

 

"일단요...저라면 말로도 안 되고 때려도 안 되는 아들이라도아들이 바라는 것 다 해 주겠어요. 엠피3도 하게 해 주고(학교에 가지고 가서 마음대로 듣게 해 준다는 의미-아버지 주^^)핸드폰도 하게 해 주겠어요.그리고공부하기 싫어 한다면 이과나 가게해서 적당히 돈이나 벌라고 해 주겠어요"

 

...

 

울컥 치미는 것을 간신히 누르고"됐다" 하고 말았습니다. 뭘 제대로 알고나 이야기하면 좋겠는데...이건 순 초딩수준의 뻔한 발언이니^^

 

아내의 핸드폰을 이 아들이 몰래 가져가는 것에 대해... 통제했더니 지난달 보다 5만5천원이나 적게 요금이 나왔습니다.전자사전에 엠피3가 장착된 것을 학교에 가져가지 못하게 다른 전자사전을 사주었는데...알람용으로 쓴다면서 우기고 그것을 학교에 가져가서 이어폰 꼽고 시간마다 듣고 있습니다. 여러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누나들에게 음악없이 못산다고 하면서 말이지요...물론 수업시간엔 안 듣는다 주장은 하지만요.야자에 가서 공부한다고 가방 놓고 매일 피씨방을 들리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이번 중간고사는 얼마나 엉망인지(방학 내내 학교가서 공부한다며...놀기만 했으니...)...한동안 양순한 척 하고 다녔구요...^^

 

...

 

부모 말 안 듣는 자식 ...저러다 부모를 떠나 인생에게 얼마나 혹독하게 배우려 저러나...한숨이 절로 납니다.

 

성경의 인물들아담이나 노아나 이삭이나 야곱이나 모세나 엘리나 사무엘이나 다윗이나 히스기야나 요시야나...모두 훌륭한 분들이면서 공통적으로 자식 농사에 실패한 분이라는 것과우리나라 역사속 인물들중연개소문이나 세종대왕 성종 같은 분들도 훌륭하신 분들이면서 자식농사에 실패한 분들이라는 것이 제 머리로 짜내어 위로 받을만한 내용들이긴 한데...

 

전 전혀 '훌륭'하곤 상관도 없는데...허허...이게 왠 일인가...그런 생각까지 미치면서...참 인생이 씁쓸하다 싶어집니다.

 

...

 

아내와 이런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몇몇 제대로 된 정치가분들껜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충신이는 정치가가 딱인듯 싶소.왜요?할 말 안 할말 잘 섞어서 거짓말을 일단 잘하잖소.그리고요?남의 탓이라든가 자기 합리화도 너무나 잘하고...호호호게다가 낯짝도 두꺼워서 뻔뻔하기도 그지없고...군대가면 괜찮아지겠지요.혹 어떤 놈은 더 악화된다 하더이다.그래요? 그럼 정말 정치가가 딱이겠네요.

 

...

 

ㅎㅎㅎ우리 아들 김충신이 만일 정치가가 된다면아버지가 적어 놓은 이 "충신실록"을 영원히 말살해버리려 하지 않을까요? ^^

 

 

 

 

  • malmiama2009.10.20 14:50 신고

    엉뚱하든 기대에 어긋나든..한심하든..일단,
    물음에 답하거나 대꾸했다는 건 고무적입니다.

    아예 답이 없거나 그냥..건성으로 답하는 것 보다는요..훨씬.

    답글
    • 주방보조2009.10.20 18:42

      어제는 허접한 함수문제를 들고 와서 제게 물어보더군요.
      공부를 한다는 티를 내야할 상황이다 판단한 듯 합니다. 어제 성적표가 나왔거든요.
      얼마나 성적이 떨어졌으면 저럴까...덜컥 심장이 떨어지는 듯 했습니다.
      오늘 가져온다 했는데...기대가 됩니다.^^

      아직은 녀석의 하는 짓이 귀여운데가 없지 않습니다. 잘못한 정치가들중 일부가 나는 결백하다고 우기다가...명백한 증거 앞에서 결국 귀엽게 머리를 조아리듯...ㅎㅎ

      집에도...말 안듣는 자식들에 대한 '공통적'인 징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아들놈은...다른 애들도 다 그래요...라는 것으로 저를 얼마나 압박하는지...^^

  • 리닙니다2009.10.20 21:31 신고

    요리왕님, 지금도 함수문제 풀어주실 실력이 있으시군요!
    놀랍습니다!
    저는 수학이라면 집합부터 찍던 사람인데~
    지금은 오죽하겠습니까?

    또 한편, 충신군의 아버님을 향한 신뢰의 단면도 봅니다.
    좀처럼 아버지께 수학문제 들고가는 아들을 본 일이 없습니다.


    "만약 말이다. 네가 꼭 너같은 아들을 두었을 경우 너라면 어떻게 가정교육을 시키겠느냐?"
    이 질문에 대하여 충신군이 입술로 표현한 답은 여기 아버님의 충신실록에 남겠지만,
    또 다른 답이 충신군의 머리와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머리를 많이 돌리게 하고(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가슴을 운동시키는(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질문으로 들립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9.10.21 02:30

      충신이의 수학문제 물어보는 제스쳐는 매우 정치적인 행위랍니다.^^
      자신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고자하는 아주 오래된 수법이지요.
      그리하여...중간고사 성적이라는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하고...

      전 어떤 때 진심으로 녀석이 자기를 꼭 닮은 아들 하나 두고 절절매는 꼴을 보고 싶습니다.^^ 아주 꼬소할 것같아요.ㅎㅎ

      혹 하나님께서 지금 제 모습을 보시며...꼬소해 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모르겠습니다.^^

  • 김순옥2009.10.22 11:43 신고

    어떤 이유로든 사춘기를 심하게 앓던 한얼이를 대책없이 지켜 봤던 시절이 있었지요.
    물론 아직도 마음에 썩 들지 않는 것들이 많지만 이제는 자기 할 일에 대해서는 믿음이 있습니다
    길게10년을 바라보면 그 아이의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싶네요.
    한빛이 시험 끝났다고 3일간 꼼짝하지 않고 밤11시까지 컴퓨터 앞을 지키더군요. 바로 어제까지.
    물론 억지로 제지할 수도 있지만 지나가다 한 번씩 언급만 했을뿐 기다렸습니다.

    따지고보면 마마보이보다는 자기 의견이 분명한 아이가 더 낫지 않을까요?
    어차피 인생은 스스로의 몫이고, 성공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 게 분명하구요.
    한얼이가 가끔 엄마만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 정작 공부해야 함을 깨닫고 밤 늦게 돌아오는 아이를 보면서
    이미 마음으로는 믿고 있답니다.

    부모는 기다리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한다는 것을 공부하게 됩니다.
    고등학생이 될 한빛이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지만 잘해주면 고맙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부모로써 강력한 대안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이래도 저래도 부모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면 자식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것...
    어쩌면 충신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답글
    • 주방보조2009.10.23 02:35

      고뇌하고 ...방종하고는 비록 방황하는 모습이 비슷하다 해도 차원이 좀 다르지 않을까요.
      한얼이는 고뇌하였고
      충신이는 방종을 하고 있다...여겨집니다.

      사실...핸드폰과 엠피3 그리고 컴퓨터...조금씩 통로를 열어주었었는데...모두 중독으로 결과가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현재도 앰피3는 자기 마음대로 가져가 쓰고 있고 컴퓨터는 피씨방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며 하고 있습니다.
      저도 별 뾰족한 대책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기가막혀
      허허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지요^^

      그래도...녀석에게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 사랑하는 때문이겠지요.
      아직도 자는 모습은 무척 귀엽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