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사회복지관의 횡포와...봉사자 충신

주방보조 2009. 4. 29. 01:52

우리 충신이는
자기 자신의 일에 대하여는 좀 소홀한 편이지만
남을 돕는 일에는 대단히 성실한 면이 돋보이는 아이입니다.
제가 이 아이에 대하여 한숨을 쉬며 속상해 하는 것은 ...자신이 해야할 일에 대하여 불성실하거나 외면하는 때문이지
남을 돕는다던가 다른 아이들을 위해 섬기는 일을 마다하여 그런 적은 없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철없이 어떤 아이를 괴롭히는 짓을 하여 혼이 난 적이 한번 있을 뿐 그 이후로는 학급의 봉사활동이나 친구를 돕는 일에 적극적이어서 특별히 중3때는 모범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위 누나 나실이가 친구의 소개로 J복지관에서 반찬 나르기 봉사를 시작한 것이 재작년부터이고 충신이는 그것을 이어받아 작년 초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봉사를 시작했고
친구들을 여럿 소개하고 그 친구들의 빈 시간들을 틈만 나면 메꿔 주었으며 어떤 날은  대여섯집을 감당해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물론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허비하게 되는 일을 나무랐으며, 녀석은 제게 혼날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다가...또 그런 일이 생기면 여지없이 시간을 아끼지 않고 거기에 투자했었습니다.
작년엔 특별히 수고했다고 ...J복지관에서 작은 주머니 선물도 받아왔었습니다.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다 나누어 준 것을 녀석이 뻥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생이 된 후로도 녀석의 월요일 반찬나르기는 한번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여전히 가끔 친구들 펑크를 때워 주면서... 먼 거리 가까운 거리를 마다 않고...
 
...

지난주 금요일부터 중간고사가 시작되었고
그리고 오늘도 봉사를 나갈 시간을 따지고 있는 충신이에게
'시험기간이니 오늘만 쉬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미리 전화드려서 양해를 구해라' 고 명령을 내렸고
J복지관에 전화를 건 충신이는 ...잠시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제게 전화를 건네 주었습니다.
 
J복지관 담당자의 말은 간단했습니다.
"오늘 빠지면 지금까지 하던 봉사를 그만두게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6개월을 채우지 못한 봉사는 봉사점수를 하나도 인정해 주지 않기로 정해져 있다.
그러니 보내든지, 그만 두게 하든지 하라."
 
시험기간이라도 맡은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요즘 고등학교 학생들의 시험이라는 것이 단순히 학적부에 기록이 남는 것이 아니라 대학입시의 연장선 상에 놓여 있고 엄밀히 따지면 대학 입학시험의 거의 1/10에 해당되는 중요한 일입니다.
책임을 좀 미루는 것에 대하여 미안하고 부끄러우나 ... 자기자신의 일에 충실치 못한 충신이를 위해 아비가 걱정이 되어 딱 하루 시험기간의 봉사를 양해해 달라는 것에 대하여 이토록 냉정하게 사람을 윽박지르는 일은 정말 분통이 터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봉사점수를 확보해야한다는 아이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아이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세이며
그것은 정말 제 귀로 들어 이해하기에는 권력으로 약자들을 착취하려는 자의 태도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봉사하는 학생들의 어려움에 대하여 배려하는 마음도  
봉사한 시간을 계산하는 데 있어서의 공평함도 없이
오직
자기들의 복지 사업을 위하여
혹 하루라도 빠지면 그동안 쌓아놓은 봉사점수가 다 사라지게 될까 두려움에 떨며 복종하는 노예봉사자들만 만들어 마음껏 휘두르려 하는 ...
 
저는 학생들이 봉사에 꾸준히 참여하지 못하고 많이 들쑥 날쑥하는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또한 중간고사나 학기말 고사 같은 특별한 기간에는 봉사자의 수가 대폭 줄어 어려움이 가중되리라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각종 지원이 줄어 유료 봉사자를 쓰는 일도 쉽지 않아졌으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학생들을 봉사자로 쓰는 복지관에서 미리 예상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할 문제이지
6개월중 하루라도 빠지면 ...그것도 무단이 아니라 미리 양해를 구한 경우에도...무조건 퇴출, 그리고 기존 봉사점수 백지화 라는 ...실로 어처구니 없는 악랄한 수법이 동원되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연히 그 전화를 이렇게 끝맺었습니다.
"그만 두게 하겠습니다. 봉사점수가 0점이 되더라도.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왔고
제 전화를 이어받은 충신이...뭐라 뭐라 한참을 이야기 한 후 ...오늘은 안 될 것같다고 하니까 이번은 어떻게 대타를 마련해 보시겠다고 하더라고 제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착한 아들 덕분에...더 이상 화를 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
 
음...
저처럼 속좁은 아버지가 되어서도 안 되겠습니다만...
 
학생들의 봉사점수라는 것을 ... 지나치게 악용하려는...그런 규정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할 일입니다.

 

 

 

 

  • 알 수 없는 사용자2009.04.29 11:45 신고

    에궁... 신통한 충신이...
    아버지보다 낫다 싶네요.^^
    (물론 저도 요리왕님처럼 했겠죠.)
    그간 성실히 봉사한 덕에 대타를 마련해 주는군요.
    봉사 하나도 안하고 기관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봉사증 끊어주던데
    그런 이유로 충신이가 더욱 빛나보입니다.^^

    답글
    • malmiama2009.04.29 16:00 신고

      = ^^

    • 주방보조2009.04.30 15:37

      충신이에 대한 대부분의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봉사하려는 자세는 마음에 듭니다.
      정확하게...피아노 실력만큼 저보다 더 낫습니다.^^

  • 청랑2009.04.29 12:20 신고

    아이씨... 나도 열받네요...
    나 같으면, 가서 따지고
    학교에도 그런 점수 제도에 대해 따졌을 텐데....
    혈압 오릅니다....
    되먹지 못한 ... 같으니라고...

    답글
    • 주방보조2009.04.30 15:44

      전 혈압이 이미 많이 높기 때문에
      참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학교를 비롯한 공적 기관들은..."책임" 지는 일 잘 안 합니다. 회피하는 일이 전문이거든요.
      따지면...혈압 고공행진합니다.
      이렇게 블로그에 알리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누구...혈압 좀 낮은 분이 나서 주시면 좋겠지요?

      이런 일이 알고보니...다른 봉사점수 주는 기관에서도 비일비재하답니다.
      아이들이 오는 것 귀찮아 하고...괄시하고...
      그러니...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봉사하라고 한 것은 좋은데...그 마당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하니 이런 부조리한 일이 발생하는 것같습니다.

  • 이쁜맘2009.04.29 12:36 신고

    봉사점수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선한마음으로 임한 청소년들까지도 기관에서 형식적인것으로 몰아가고있는것이 안타갑습니다..
    진실되게 꾸준히 봉사하려는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 계속적으로(어른이되어서도) 하고싶은마음이 들까 싶네요...ㅠㅠ

    답글
    • 주방보조2009.04.30 15:51

      이 복지관에서 충신이를 실망시킨 일이 작년에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자기가 맡은 일이니 책임감 있게 하려고 해서 기특합니다. 공부빼곤 뭐 다 하려고 하지요만^^
      어쩌면 봉사활동점수라는 것때문에
      아이들이 권력의 속성과 편법을 더 빨리 익히게 될른지도 모르겠습니다.

  • 김순옥2009.04.29 12:55 신고

    복지관에서 일하는 사람의 소양이 의심되는 일이네요.
    어떤 의미로든 군림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득권?자의 횡포는 못말립니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목에서 한번쯤 재고해야 할 일일 것 같아요.
    얼마든지 융통성있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을 극단적으로 이끌어가는 태도가 불쾌합니다.

    충신이의 봉사활동이 참 기특하다고 생각했었답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부모님의 배려가 바탕이 된다고도 생각했구요.
    저도 규칙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겠다고 하면서도 쉽게 되지 않는 부분이더군요.
    좀더 적극적으로 찾아보도록 해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방학 때 몰아서 하는 쪽이거든요.

    요즘이야 진학과 관련해서 봉사가 점수화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봉사가 생활화되어 가는 나라거 진정으로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예전에 한얼이가 미국의 병원에 있을 때 실감했습니다.

    충신이에게 화이팅을 보냅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9.04.30 16:02

      그 복지관 선생이 특별히 기분 좋지않은 일이 있었느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사무적인 말도 안되는 말을 툭 내뱉어...
      듣는 순간 정말 머리로 피가 쭉 몰리는 기분이었답니다.

      10여년전 작은 소파를 분해하여 남은 나무를 종량제 봉투에 넣어도 되느냐...(가져가질 않아서)...구청에 문의하였더니
      아무리 작은 소파라도 분해하면 안되고 그러므로 그런 식으로 버리면 안 되니가...다시 소파를 맞추어 내어 놓으라고 하는 말을
      듣고 열받은 이후로...처음...

      전 사실 봉사점수가 충신이의 대입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요. 그래도 학교에서 하라는 것이니 성실히 하기를 바라고 좋은 일이니 잘하기를 바라지만...공갈과 협박에 의한 것이라면...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 봄빛2009.04.29 21:48 신고


    충신이가 당한 일을 읽으며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부지중에 위와 같은 누를 범한 건 혹 없는지.. 하구요.

    순수한 열정으로 자원 봉사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그래서 자원봉사에 대해 부정적이미지를 심어줄 그런 예이네요.
    덕분에 간접이지만 좋은 경험 얻었습니다.

    충신이에게 말해주세요.
    담당자는 그리 냉정하고 매몰차게 봉사점수라는 올무로 충신이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세상엔 충신이가 해주는 봉사로 한끼 식사의 반찬을 해결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구요.
    그래서 봉사점수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 행위는 그리스도의 빛이며 향기며 편지가 되어
    우리 모두에게 전달된다구요.

    답글
    • 주방보조2009.04.30 16:07

      그러게요.
      봉사점수따위로는 따질수없는 가치가 있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나라 복지기관에 대한 지원은 참 열악하고 일하는 분들도 고생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해하면서도...매너리즘에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이해와 사랑이 없는 봉사라는 것이 얼마나 서로에게 상처를 더해주는 일이 되겟습니까?
      허긴...복지라는 것이 요즘은 거액의 사기 대상이 되기도 하니,,,그런 일만 없애도 좋으련만...

  • 왕언니2009.04.29 22:11 신고

    저도 아버지보다 충신이가 낫다에 한표!!^^
    언제부터 우리나라도 서구식으로 사회봉사점수가 진학때 가산점을 주는 방편으로 편입이 되었는지 확실히 잘모르겠지만...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없는관계로...]

    작년초 서해안 기름닦기 갔을때 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다녀온건 그놈의 봉사점수때문이었던걸 알았습니다.
    가서 보니 일은 별로 안하고 밥먹고 낄낄거리고 헤작질하다
    돌아오는길엔 봉사확인때문에 전세차량을 길에 세워두고 다른 사람들을 많이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하니 1년만에 바다가 깨끗해지긴했습니다만...

    그런봉사에 비하면 충신이의 봉사는 참 예쁩니다. 아빠의 조바심보다...
    본인이 하겠다고 하면 ..그게 진심이면 지가 다 알아서 할겁니다. 너무 노심초사하지마셔요.
    복지관측의 태도가 얄밉기는 하지만 결과는 없던걸로 하지는 않게 되었으니 다행이고,
    그게 또 충신이의 진심이 반영된거니 더욱 다행이네요.

    어쨌거나 아들 잘 키우셨습니다. ^^

    답글
    • 주방보조2009.04.30 16:10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저도 압니다. 충신이가 저보다 낫습니다.
      시험공부보다 봉사를 가여고 했었고
      말도 안되는 말에도 불구하고 혈기내는 아버지보다 훨씬 침착하고 으젓했으니...ㅜㅜ

      점차 좋아질 것이란 말씀이시죠?
      예..그렇게 되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