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의 종말관 [5] - 무딘스키
종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두가지 최종적인 양자택일, 즉 천국과 지옥이 있을 뿐이다.
교회는 마지막의 최종적 완성을 기다리는데 희랍신학에서는 그것을 만물구원(아포카타시스)이라고 부르며 그리스도께서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심판하기 위하여 대영광속에 재림하실 때이다.
최종적인 만물구원은 우리가 보았듯이 사물의 구원과 영광을 포함한다. 최후의 심판날에 올바른 사람은 무덤에서 일어나 다시 한 번 육신과 결합될 것이고 우리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그러한 몸이 아니라 변모되괴 영적인 몸으로 그 안에서 내적인 거룩함이 외적으로 분명해 진다. 그리고 인간의 육신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적인 질서도 변모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새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다.
그러나 천국뿐만 아니라 지옥도 존재한다. 최근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서방이나 정교회에서도 지옥에 대한 사상이 사랑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조화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논쟁하는 것은 슬프고 위험한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무한한 자비로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을 거부할 수도 있다. 자유의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지옥도 존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옥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지옥을 부인한다면 우리는 자유의지를 부인하는 것이다.'아무도 하느님처럼 선하고 자비로움이 가득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분도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5세기 초의 은수자 마르코스는 썼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 분을 사랑하도록 강요하시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사랑은 자유롭지 않을 때에는 더 이상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님은 모든 화해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자신에게 화해시킬 수 있겠는가?
최후의 심판과 지옥에 대한 정교회의 자세는 사순절 전 3주일간 계속되는 성찬예배중 복음봉독의 선택에서 명백하게 표현된다. 첫주일에는 세리와 바리새파인의 비유, 둘째주일에는 탕자의 비유로서 회개하는 모든 죄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하신 용서와 자비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봉독된다.
그러나 세번째주일의 복음서에서 양과 염소의 비유로 우리는 그 반대의 진리를 생각하게된다. 즉 하느님을 거부하면 지옥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저주 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악마와 그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거라"(마태오 25:41)
하느님에대한 정교회의 교리중 공포적인 것은 없다. 정교회 신자들은 하느님 앞에서 비참한 공포로 움츠러들지 않고 그분에 대해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정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시에는 심판자로 오실 것을 유념한다.
지옥은 사람이 자기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써 자기자신을 가두기로 선택한 곳이지 하느님께서 인간을 가두는 곳은 아니다. 지옥에서도 악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빼앗기지 않으나 스스로의 선택으로 그들은 성인들이 기쁨을 누리는데 반하여 고통을 받는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것을 자신들안에 획득하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지옥은 최종적인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몇몇교부들은, 마지막 날에 모두가 하느님과 일치될 것이라고 믿어왔다. 모두가 반드시 구원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단적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유의지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구원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은 정당하다. 최후의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그 누구의 구원도 단념해서는 안되며, 예외 없이 모든이의 화해를 기다리며 기도해야 한다.
누구든지 우리의 사랑의 傳求 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된다. '자비로운 마음이 무엇인가?"라고 시리아의 이삭은 질문했다. "그것은 전체 피조물, 인간들, 새들, 짐승들, 악신들,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는 마음이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은 악신의 구원까지도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경은 간절한 기대에 대한 기록으로 끝맺는다."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묵시록 22:20)열렬한 희망의 정신으로 초대교회 신자들은 기도하였다. '은총이 오사, 이세상이 지나게 하소서.' 그들은 이 세상을 종말이 거의 즉시 일어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2천년이 흘렀고 아직도 종말은 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 때와 시간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마 현재의 질서는 상당한 시간을 더 게속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더 옳았다. 왜냐하면 종말이 빨리오든 늦게 오든 간에 그것은 언제나 절박하고 영적으로 임박하였기 때문이다. 설사 그것이 일시적으로 임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주님의 날은 인간이 생각하지 않은 때에 "도둑과 같이 밤에 올 것이다."(데사로니카 전서 5: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도시대처럼 오늘에도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계속적인 기대속에 기다려야 한다.
구 소련을 방문중인 한 목사가 러시아 정교회의 긴급한 문제가 무엇이냐고 묻자 한 사제가 주저하지 않고 '빠루시아(주님의 재림)'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재림은 단순히 미래에의 사건만은 아니다. 교회의 생활에 있어서 다가올 세대는 이미 현세속에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느님 교회의 신도들에게는 '마지막 때'가 이미 도래했으며,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 왕국의 첫열매를 즐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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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의 글은 해외러시아정교회 대사제이신 강태용 신부님의 책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동방정교회,강태용,도서출판 정교,1996, 229면 이하] ㅍ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두가지 최종적인 양자택일, 즉 천국과 지옥이 있을 뿐이다.
교회는 마지막의 최종적 완성을 기다리는데 희랍신학에서는 그것을 만물구원(아포카타시스)이라고 부르며 그리스도께서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심판하기 위하여 대영광속에 재림하실 때이다.
최종적인 만물구원은 우리가 보았듯이 사물의 구원과 영광을 포함한다. 최후의 심판날에 올바른 사람은 무덤에서 일어나 다시 한 번 육신과 결합될 것이고 우리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그러한 몸이 아니라 변모되괴 영적인 몸으로 그 안에서 내적인 거룩함이 외적으로 분명해 진다. 그리고 인간의 육신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적인 질서도 변모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새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다.
그러나 천국뿐만 아니라 지옥도 존재한다. 최근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서방이나 정교회에서도 지옥에 대한 사상이 사랑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조화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논쟁하는 것은 슬프고 위험한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무한한 자비로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을 거부할 수도 있다. 자유의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지옥도 존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옥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지옥을 부인한다면 우리는 자유의지를 부인하는 것이다.'아무도 하느님처럼 선하고 자비로움이 가득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분도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5세기 초의 은수자 마르코스는 썼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 분을 사랑하도록 강요하시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사랑은 자유롭지 않을 때에는 더 이상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님은 모든 화해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자신에게 화해시킬 수 있겠는가?
최후의 심판과 지옥에 대한 정교회의 자세는 사순절 전 3주일간 계속되는 성찬예배중 복음봉독의 선택에서 명백하게 표현된다. 첫주일에는 세리와 바리새파인의 비유, 둘째주일에는 탕자의 비유로서 회개하는 모든 죄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하신 용서와 자비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봉독된다.
그러나 세번째주일의 복음서에서 양과 염소의 비유로 우리는 그 반대의 진리를 생각하게된다. 즉 하느님을 거부하면 지옥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저주 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악마와 그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거라"(마태오 25:41)
하느님에대한 정교회의 교리중 공포적인 것은 없다. 정교회 신자들은 하느님 앞에서 비참한 공포로 움츠러들지 않고 그분에 대해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정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시에는 심판자로 오실 것을 유념한다.
지옥은 사람이 자기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써 자기자신을 가두기로 선택한 곳이지 하느님께서 인간을 가두는 곳은 아니다. 지옥에서도 악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빼앗기지 않으나 스스로의 선택으로 그들은 성인들이 기쁨을 누리는데 반하여 고통을 받는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것을 자신들안에 획득하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지옥은 최종적인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몇몇교부들은, 마지막 날에 모두가 하느님과 일치될 것이라고 믿어왔다. 모두가 반드시 구원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단적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유의지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구원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은 정당하다. 최후의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그 누구의 구원도 단념해서는 안되며, 예외 없이 모든이의 화해를 기다리며 기도해야 한다.
누구든지 우리의 사랑의 傳求 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된다. '자비로운 마음이 무엇인가?"라고 시리아의 이삭은 질문했다. "그것은 전체 피조물, 인간들, 새들, 짐승들, 악신들,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는 마음이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은 악신의 구원까지도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경은 간절한 기대에 대한 기록으로 끝맺는다."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묵시록 22:20)열렬한 희망의 정신으로 초대교회 신자들은 기도하였다. '은총이 오사, 이세상이 지나게 하소서.' 그들은 이 세상을 종말이 거의 즉시 일어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2천년이 흘렀고 아직도 종말은 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 때와 시간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마 현재의 질서는 상당한 시간을 더 게속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더 옳았다. 왜냐하면 종말이 빨리오든 늦게 오든 간에 그것은 언제나 절박하고 영적으로 임박하였기 때문이다. 설사 그것이 일시적으로 임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주님의 날은 인간이 생각하지 않은 때에 "도둑과 같이 밤에 올 것이다."(데사로니카 전서 5: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도시대처럼 오늘에도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계속적인 기대속에 기다려야 한다.
구 소련을 방문중인 한 목사가 러시아 정교회의 긴급한 문제가 무엇이냐고 묻자 한 사제가 주저하지 않고 '빠루시아(주님의 재림)'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재림은 단순히 미래에의 사건만은 아니다. 교회의 생활에 있어서 다가올 세대는 이미 현세속에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느님 교회의 신도들에게는 '마지막 때'가 이미 도래했으며,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 왕국의 첫열매를 즐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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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의 글은 해외러시아정교회 대사제이신 강태용 신부님의 책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동방정교회,강태용,도서출판 정교,1996, 229면 이하] 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