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의 추락을 들으면서 옮기는 글... [5]
- 무딘스키
자본주의적 패러다임과 관상기도
오순절 교회 탄생 이후 복음의 전파와 교회의 설립이 로마제국 영내와 인도지역에 까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였다. 그러나 통상 로마라는 제국과 각 지역의 국가들은 그리스도교를 억압하였고, 박해를 자행하였다.
이에 대한 교회의 국기에 대한 대응은 비폭력, 무력적 저항 지양, 도덕적 우수성 등을 실천해 나갔다.
그 결과 밀라노 칙령에 의해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국가 공인종교로 인정받게 되었고, 뒤이어 로마제국의 국교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로마제국의 국가공인종교가 되면서 로마제국과 그리스도교는 '우리가 믿는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정리하기 시작하엿으며, 그 핵심논의의 주제는 '예수는 시작이 있는 분인가 아닌가" "존재하지 아니한적이 있는가 없는가"에 관한 문제였다.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예수님은 시작이 있는 존재"라고 주장하였고 아타나시오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교회들은 예수님은 시작이 없는 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아리우스주의는 사도전승에 위배되는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 받았지만 아리우스주의자들은 거부하여 세계교회협의회(에큐메니칼 시노드)에서 협의회를 함께 할 수 없다고 선언되었다.
이 때까지만해도 그리스도교의 주제외 포커스는 예수그리스도였고, 예수그리스도는 현재(지금) 완전한 하느님이자 완전한 인간으로 고백되어야할 주제였다.
그런데 프랑크제국이 들어서고, 로마교회에 의해서 프랑크제국의 왕이 서로마제국의 황제로 대관식을 하면서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는 토지배분과 신분제를 근간으로 하는 봉건제도와 무의식중에 결합을 하게 된다.
그 결과 교회는 과거의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내세우고, 미래의 천국을 제시하면서 과거와 미래의 사이에 있는 '현재'는 의무를 다하는 삶을 다하라는 형태의 '의무중심'의 교회패러다임을 형성하였다.
동로마에서는 쌍독수리 문양이 나타내듯이 '현재'에도 존재하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개념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예배와 타협중심의 패러다임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이른바 십자군전쟁이후 중상주의의 발흥과 인문주의 운동에 따라 서유럽에서는 종래의 신분제도와 토지분배를 근거로 한 봉건제도의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도시가 발달하고, 상업의 발달에 따른 시민계급이 등장하면서 서유럽의 세계는 변혁의 소용돌이속에 휘말리게 되었다.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상업이 발달한 각국은 로마교황권과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게 되었고, 로마교황권을 대적해야할 대상으로 삼았으며, 스페인과 한 통속인 로마교회에 대항하는 근거를 종교개혁에서 찾았다.
로마교황권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믿을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다름아닌 '오직 성경으로'였다. 즉 로마교회와 성경을 대립적인 패러다임으로 설정한 것이다. 성경을 내세우다보니 점진적으로 성사의 중요성에서도 멀어져 갔다.
'오직 성경으로'를 내세우면서 서유럽 대륙의 관념주의와 언어중심의 분위기가 종교개혁 교회들을 휘감고 있었지만 교회는 그러한 흐름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지 못하였다.
각 국가내에서도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국가를 인권 침해의 당사자로 보고 헙법을 만들어 국가에게 기본적 인권의 보장을 요구하는 패러다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와 그 침해를 막아주는 '근거''버팀목'으로서의 헌법 그리고 그 헌법에 근거하여 권리를 주장하는 권리중심의 패러다임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는 종교개혁교회내에서도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사람은 죄인이다. 죄인인 사람에 대하여 사탄은 참소하고, 하느님은 심판한다. 죄인인 사람은 억압받는 존재이다. 이러한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상정은 국가를 대립구조로 보는 패턴과 유사하다.
그러한 하느님의 심판과 사탄의 참소를 막아주고 보장해 주기 위하여 에수님의 대속이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속에 근거하여 하느님과 사탄을 향하여 권리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본주의 국가의 헌법과 유사한 위치에 예수님이 자리매김이 된것이다.
예수님의 대속사역에 보이지 않게 조용히 결합된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은 종교개혁 교회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는 봉건제도와 무의식중에 결합된 의무중심의 패러다임과 유사한 흐름으로 당시의 체제들을 유지시키는 이데올로기의 구실을 해왔다. 무의식중에...
이러한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을 간직한 교회들은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시대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이념 갈등의 냉전시기에 세계 곳곳으로 전달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대속의 강조뒤에 숨어 있는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은 현재 권리주장이 난무한 교회의 모습들을 양산해내고, 권리 주장에 상응하는 교회직제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주목할 만한 방향은 '아버지'에 대한 강조이다. 하느님을 향하여 하느님은 생육하시는 분, 즉 생& #47744;의 근원이자 보호의 원천이신 분으로 강조하게 되면서 하느님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는 패러다임과는 다른 양상을 나타내었다.
열악한 환경과 생활형편에서 자식이 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부르 짖는 모습이 자리매김되었고, 간절함이 사무치는 '심정(心情) '의 관계로 하느님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떠나는 님을 부여 잡고, 가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애이불비의 민족 심성과, 떠난 님을 찾아왔건만 님은 온데 간데 없는 상황을 노래로 표현하는 민족적 정서에, 모든 것을 알고 찾아와서 아버지의 심정으로 따스하게 해결해 주는 '아버지 하느님'은 서유럽의 대립적 관계의 패러다임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교회는 '아버지 하느님'의 신앙 형태를 더욱 계승 발전 시켜야 한다고 본다. 서유럽이 만들어 놓은 교파간의 갈등을 지양하고...
최근 관상기도에 대한 관심의 분위기는 그러한 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모습으로 비쳐진다.
"하느님 주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셨으니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가 찬미받으시도다"라는 초대교회의 성가처럼...
직접 내 속에 찾아 오신 예수그리스도와 조용히 대화는 하는 경험은 세상의 여러가지 패러다임을 배제하고 성삼위하느님과 직접적인 대좌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오순절 교회 탄생 이후 복음의 전파와 교회의 설립이 로마제국 영내와 인도지역에 까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였다. 그러나 통상 로마라는 제국과 각 지역의 국가들은 그리스도교를 억압하였고, 박해를 자행하였다.
이에 대한 교회의 국기에 대한 대응은 비폭력, 무력적 저항 지양, 도덕적 우수성 등을 실천해 나갔다.
그 결과 밀라노 칙령에 의해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국가 공인종교로 인정받게 되었고, 뒤이어 로마제국의 국교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로마제국의 국가공인종교가 되면서 로마제국과 그리스도교는 '우리가 믿는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정리하기 시작하엿으며, 그 핵심논의의 주제는 '예수는 시작이 있는 분인가 아닌가" "존재하지 아니한적이 있는가 없는가"에 관한 문제였다.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예수님은 시작이 있는 존재"라고 주장하였고 아타나시오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교회들은 예수님은 시작이 없는 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아리우스주의는 사도전승에 위배되는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 받았지만 아리우스주의자들은 거부하여 세계교회협의회(에큐메니칼 시노드)에서 협의회를 함께 할 수 없다고 선언되었다.
이 때까지만해도 그리스도교의 주제외 포커스는 예수그리스도였고, 예수그리스도는 현재(지금) 완전한 하느님이자 완전한 인간으로 고백되어야할 주제였다.
그런데 프랑크제국이 들어서고, 로마교회에 의해서 프랑크제국의 왕이 서로마제국의 황제로 대관식을 하면서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는 토지배분과 신분제를 근간으로 하는 봉건제도와 무의식중에 결합을 하게 된다.
그 결과 교회는 과거의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내세우고, 미래의 천국을 제시하면서 과거와 미래의 사이에 있는 '현재'는 의무를 다하는 삶을 다하라는 형태의 '의무중심'의 교회패러다임을 형성하였다.
동로마에서는 쌍독수리 문양이 나타내듯이 '현재'에도 존재하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개념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예배와 타협중심의 패러다임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이른바 십자군전쟁이후 중상주의의 발흥과 인문주의 운동에 따라 서유럽에서는 종래의 신분제도와 토지분배를 근거로 한 봉건제도의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도시가 발달하고, 상업의 발달에 따른 시민계급이 등장하면서 서유럽의 세계는 변혁의 소용돌이속에 휘말리게 되었다.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상업이 발달한 각국은 로마교황권과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게 되었고, 로마교황권을 대적해야할 대상으로 삼았으며, 스페인과 한 통속인 로마교회에 대항하는 근거를 종교개혁에서 찾았다.
로마교황권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믿을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다름아닌 '오직 성경으로'였다. 즉 로마교회와 성경을 대립적인 패러다임으로 설정한 것이다. 성경을 내세우다보니 점진적으로 성사의 중요성에서도 멀어져 갔다.
'오직 성경으로'를 내세우면서 서유럽 대륙의 관념주의와 언어중심의 분위기가 종교개혁 교회들을 휘감고 있었지만 교회는 그러한 흐름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지 못하였다.
각 국가내에서도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국가를 인권 침해의 당사자로 보고 헙법을 만들어 국가에게 기본적 인권의 보장을 요구하는 패러다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와 그 침해를 막아주는 '근거''버팀목'으로서의 헌법 그리고 그 헌법에 근거하여 권리를 주장하는 권리중심의 패러다임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는 종교개혁교회내에서도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사람은 죄인이다. 죄인인 사람에 대하여 사탄은 참소하고, 하느님은 심판한다. 죄인인 사람은 억압받는 존재이다. 이러한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상정은 국가를 대립구조로 보는 패턴과 유사하다.
그러한 하느님의 심판과 사탄의 참소를 막아주고 보장해 주기 위하여 에수님의 대속이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속에 근거하여 하느님과 사탄을 향하여 권리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본주의 국가의 헌법과 유사한 위치에 예수님이 자리매김이 된것이다.
예수님의 대속사역에 보이지 않게 조용히 결합된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은 종교개혁 교회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는 봉건제도와 무의식중에 결합된 의무중심의 패러다임과 유사한 흐름으로 당시의 체제들을 유지시키는 이데올로기의 구실을 해왔다. 무의식중에...
이러한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을 간직한 교회들은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시대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이념 갈등의 냉전시기에 세계 곳곳으로 전달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대속의 강조뒤에 숨어 있는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은 현재 권리주장이 난무한 교회의 모습들을 양산해내고, 권리 주장에 상응하는 교회직제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주목할 만한 방향은 '아버지'에 대한 강조이다. 하느님을 향하여 하느님은 생육하시는 분, 즉 생& #47744;의 근원이자 보호의 원천이신 분으로 강조하게 되면서 하느님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는 패러다임과는 다른 양상을 나타내었다.
열악한 환경과 생활형편에서 자식이 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부르 짖는 모습이 자리매김되었고, 간절함이 사무치는 '심정(心情) '의 관계로 하느님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떠나는 님을 부여 잡고, 가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애이불비의 민족 심성과, 떠난 님을 찾아왔건만 님은 온데 간데 없는 상황을 노래로 표현하는 민족적 정서에, 모든 것을 알고 찾아와서 아버지의 심정으로 따스하게 해결해 주는 '아버지 하느님'은 서유럽의 대립적 관계의 패러다임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교회는 '아버지 하느님'의 신앙 형태를 더욱 계승 발전 시켜야 한다고 본다. 서유럽이 만들어 놓은 교파간의 갈등을 지양하고...
최근 관상기도에 대한 관심의 분위기는 그러한 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모습으로 비쳐진다.
"하느님 주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셨으니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가 찬미받으시도다"라는 초대교회의 성가처럼...
직접 내 속에 찾아 오신 예수그리스도와 조용히 대화는 하는 경험은 세상의 여러가지 패러다임을 배제하고 성삼위하느님과 직접적인 대좌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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