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을 바로 알자
- 무딘스키
십자가 전쟁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동유럽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나중에 전후사정을 알게 된 이후 십자군전쟁에 대해서 종래의 생각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십자군전쟁이란 서로마제국의 교황이 교황대리권에 반대하는 그리스도교 4개 총대주교청을 공격한 사건입니다. 로마제국이 AD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후에 5개의 총대주교청을 만듭니다. 아프리카는 알렉산드리아, 아시아는 안티오키아,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발생지 예루살렘, 로마의 수도 로마를 일단 4개의 총대주교청으로 만듭니다.
각 총대주교청은 재정이나 살림들을 독자적으로하면서 각 총대주교청 간에는 상호 독립,불가침이었습니다. 계급구조식으로 로마교황이 정점에 있고, 총대주교들이 그 밑의 부하들이 아니라 상호동등한 상황에서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의 총대주교가 영예상 서열1위였습니다.
로마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콘스탄티노스 대제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이 로마제국의 수도가 되었을 때 콘스탄티노플도 총대주교청이되면서 로마총대주교청과 동일서열이 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마제국이 지탱되어가는 과정에서 이슬람이 등장합니다. 아시아,아프리카, 아라비아가 모두 이슬람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동북쪽에서는 훈족의 대 이동이 일어납니다.
훈족의 이동결과 많은 민족이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지방을 중심으로 프랑크제국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프랑크제국과 로마 총대주교청이 결탁을 하게 됩니다.
우선 로마의 총대주교청이 교황대리권이라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5개의 총대주교청이 독립적이고 상호평등인데 그중에서 로마가 서열 1위라는 교황수위권의 개념이 아니라 교황이 예수그리스도의 지상대리자로서 다른 총대주교청과는 격이 다른 아버지(Pope)이라는 교황대리권을 들고 나옵니다. 물론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청은 교황대리권을 인정하지 않고, 로마총대주교청과 4개총대주교청은 결별을 합니다.
그 교황대리권에 근거하여 로마의 총대주교청은 프랑크제국의 국광을 서로마제국의 황제로 임명하고 즉위식을 거행합니다. 그 결과 정통성이 있는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둔 로마(우리는 동로마라고 부름)와 적대적인 관계에 놓이게 되고 유느티니아누스 황제 같은 동로마의 황제들은 실지회복을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합니다.
서로마지역에서 교황을 정점으로하는 봉건제도가 정착이 되자 교황은 4개의 총대주교청을 무력으로 공격합니다. 우선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지역 그리고 예루살렘을 공격하는데 이 지역은 이미 이슬람의 영토안에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공격에서 그 지역의 그리스도교인들과 이슬람이 합세하여 십자군을 방어합니다.
그리고 십자군은 이슬람이 아닌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함락시킵니다. 이 때 콘스탄티노플의 수많은 서적들과 유산들을 약탈해갑니다. 그 결과 서유럽은 중상주의의 등장과 함께 인문주의운동 발생의 단초가 됩니다.
결국 십자군 전쟁은 교황대리권 전쟁이며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간의 전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네이버 지식인에 올린글]
십자군전쟁이란 서로마제국의 교황이 교황대리권에 반대하는 그리스도교 4개 총대주교청을 공격한 사건입니다. 로마제국이 AD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후에 5개의 총대주교청을 만듭니다. 아프리카는 알렉산드리아, 아시아는 안티오키아,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발생지 예루살렘, 로마의 수도 로마를 일단 4개의 총대주교청으로 만듭니다.
각 총대주교청은 재정이나 살림들을 독자적으로하면서 각 총대주교청 간에는 상호 독립,불가침이었습니다. 계급구조식으로 로마교황이 정점에 있고, 총대주교들이 그 밑의 부하들이 아니라 상호동등한 상황에서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의 총대주교가 영예상 서열1위였습니다.
로마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콘스탄티노스 대제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이 로마제국의 수도가 되었을 때 콘스탄티노플도 총대주교청이되면서 로마총대주교청과 동일서열이 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마제국이 지탱되어가는 과정에서 이슬람이 등장합니다. 아시아,아프리카, 아라비아가 모두 이슬람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동북쪽에서는 훈족의 대 이동이 일어납니다.
훈족의 이동결과 많은 민족이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지방을 중심으로 프랑크제국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프랑크제국과 로마 총대주교청이 결탁을 하게 됩니다.
우선 로마의 총대주교청이 교황대리권이라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5개의 총대주교청이 독립적이고 상호평등인데 그중에서 로마가 서열 1위라는 교황수위권의 개념이 아니라 교황이 예수그리스도의 지상대리자로서 다른 총대주교청과는 격이 다른 아버지(Pope)이라는 교황대리권을 들고 나옵니다. 물론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청은 교황대리권을 인정하지 않고, 로마총대주교청과 4개총대주교청은 결별을 합니다.
그 교황대리권에 근거하여 로마의 총대주교청은 프랑크제국의 국광을 서로마제국의 황제로 임명하고 즉위식을 거행합니다. 그 결과 정통성이 있는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둔 로마(우리는 동로마라고 부름)와 적대적인 관계에 놓이게 되고 유느티니아누스 황제 같은 동로마의 황제들은 실지회복을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합니다.
서로마지역에서 교황을 정점으로하는 봉건제도가 정착이 되자 교황은 4개의 총대주교청을 무력으로 공격합니다. 우선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지역 그리고 예루살렘을 공격하는데 이 지역은 이미 이슬람의 영토안에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공격에서 그 지역의 그리스도교인들과 이슬람이 합세하여 십자군을 방어합니다.
그리고 십자군은 이슬람이 아닌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함락시킵니다. 이 때 콘스탄티노플의 수많은 서적들과 유산들을 약탈해갑니다. 그 결과 서유럽은 중상주의의 등장과 함께 인문주의운동 발생의 단초가 됩니다.
결국 십자군 전쟁은 교황대리권 전쟁이며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간의 전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네이버 지식인에 올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