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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랑...장미혜님 글 23

주방보조 2005. 3. 6. 02:57

Love of Life (35): 매직 워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별로 읽지 않았습니다.
책 읽을 시간 있으면 피아노를 두들기곤 했었지요.
피아노 치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입시 준비를 해야 했던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야말로 책 읽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리고 다 아시다시피, 이건 전부 핑계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 와서부터입니다.
정희씨는 오치에게 책을 읽히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치가 에이비씨를 알아먹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뛸 듯 좋아하더군요.
그리고는 유아용 책을 사 나르는가 하면 동네 도서관에서도 부지런히 책을 빌어 왔습니다.
아무래도 정희씨는 바쁘다보니까 오치 책 읽히는 일은 제 소관이 됐지요.
덕분에 오치 뿐 아니라 저까지도 책 읽는 재미에 감염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책을 잡기 시작한 데에는 또 다른 계기가 있었습니다.
정희씨는 이런저런 일로 뉴욕 시에 갈 때마다 꼭 들르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플러싱 유니온 스트릿 한아름 마켓 옆에 있었던
<뉴욕 종로서적>이라는 이름의 책방이었습니다.
정희 씨는 알바니에 올라오기 전 1년 남짓을 뉴욕에서 지냈었는데
그때 그 서점을 운영하시던 김가일 장로님과 교분을 쌓았습니다.
잠시동안 김 장로님의 기독교신문 발행하시는 일을 돕기도 했답니다.

김가일 장로님은 참 특이한 분이셨습니다.
뉴욕 한인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비즈니스가 확대되고 있는데도
책방하나 제대로 없는 것을 개탄하시고는 스스로 서점을 여셨습니다.
교민들께서 아무리 이민생활에 바쁘고 시간이 없더라도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어야 한다고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미국 생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뿐 아니라
한국 사람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런데 <뉴욕 종로서적>에는 도저히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책도 많았습니다.
미국의 교포 서점에다가 <전환시대의 논리>라든가 <함석헌 전집> 같은
80년대 운동권 성향의 책을 갖다놓은 분은 김가일 장로님 밖에 없었을 거랍니다.
게다가 그 이후의 민주화 운동이나 통일 운동에 관한 책들도 즐비했습니다.
물론 그런 책들은 전혀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책들이 서가에 꽂힌 채 색이 바래고 먼지만 모으는 것을 저도 많이 봤습니다.

그러니 정희 씨와 김 장로님이 서로 죽이 잘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로 '뜻'이 통하는 사람임을 알아본 것이지요.
그래서 정희 씨는 알바니에 올라온 뒤에도
뉴욕에 내려갈 기회만 있으면 그 서점에 들렀습니다.
새로 도착한 책도 훑어보고 이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지요.
덕분에 저나 오치도 한국 책을 자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정희 씨는 택도 없이 오치에게 천자문을 가르치겠다면서
족자처럼 된 천자문 책을 사온 것도 그때였습니다.
(덕분에 오치는 지금도 뜻도 모른 채 '하늘천 따지' 하면서 몇구절을 욉니다.)

김 장로님은 아예 베이사이드에 있는 그분 댁의 열쇠 한 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방학이면 우리는 그 댁으로 휴가를 가곤 했지요.
사모님은 다니시던 리틀넥 교회의 오르간을 연주하고 싶어하셨는데
저와 함께 이른 새벽에 교회에 가서 찬송가를 함께 연주해 보곤 했었습니다.
두분의 딸 사라와 조카 에이미도 덩달아 따라나서곤 했었는데
덕분에 우리의 하루는 아주 즐겁게 시작되곤 했습니다.

제가 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두 분께서는 진심으로 마음 아파해 주셨습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왕래가 잦을 수는 없었지만
장로님께서나 사모님께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카드로 안부를 전해 주셨고
우리가 뉴욕에 내려가 책방에 들리면 반갑게 맞아 주시며 치병을 묻곤 하셨습니다.
두 분의 진심 어린 사랑에 이 자리를 빌어서나마 깊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김 장로님 댁과 만나면서 저는 아주 큰 혜택을 한가지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소설책들은 물론 각종 번역서들도 꽤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강준만 교수님(전북대, 신문방송학)의 <인물과 사상>에 홈빡 빠져서
그때까지 나온 전권을 한꺼번에 사서 단숨에 읽을 수가 있었을 정도입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했던 기억은 김가일 장로님께서 추천해 주신 성경책입니다.
그때만 해도 제게는 기존의 <개역판> 성경이 너무 어려운 편이었습니다.
한자어들도 너무 많은 데다가 어투조차 고어체이고 문어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게 김가일 장로님께서 <표준 새번역> 성경을 권해 주신 것이지요.
그 <표준 새번역> 성경을 가지고서 저는 비로소 성경을 제대로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개역판>으로 성경을 한번 다 읽은 적은 있지만
사실 그것은 별 의미가 없는 성경 읽기였습니다.
어려운 말 투성이의 그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번에는 성경을 나름대로 이해해 가면서 제대로 읽을 수 있었지요.
나면서부터 교회에 다녔던 저로서는 삼십여년 만에 성경을 제대로 읽었던 것이니
그다지 자랑스런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그래도 제게는 무척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다음 해에는 그 번역본 성경책을 가지고
성경을 한번 쓰는 일까지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뉴욕 종로서적에서 사 읽었던 책 중에는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기다란 제목의 책도 있었습니다.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이라는 분이 쓰신 에세이집이었지요.

풀검은 아주 특이한 인생 경력을 가진 분입니다.
지금쯤 육십이 다 되셨거나 좀 넘으셨을 텐데 그 동안 온갖 일을 해 보셨더군요.
미국 남부의 엄격한 침례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연합교회 파트타임 목사 일을 하셨지요.
그밖에도 카우보이, 미술 교사, 바텐더, IBM세일즈맨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자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음악 연주도 했고 수필을 쓰는 문필가로도 일했습니다.
진정한 자기 모습을 찾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여정이었습니다.

그런 다양한 이력을 통해서 그가 배운 것은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이나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그 책 어디에선가 "지혜는 대학원의 산꼭대기에 있는 게 아니라
유치원 마당의 모래성에 있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구절을 읽으면서 저는 무척 우스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 오치는 유치원에 다녔고 정희 씨는 대학원에 다니던 중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풀검은 자기가 유치원에서 배운 생기초 지식과 훈련을 바탕으로
인생을 사는 지혜를 차분히 풀어 가는 수필들을 많이 썼습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책은
그 수필들을 한데 모아 묶은 것이지요.

여러 해가 지난 뒤라 내용이 세세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이빨 빠진 조각 맞추기 그림처럼 단편적으로 남은 기억들만 이것저것 떠오릅니다.

(읽은 것이 잘 기억나지 않아서 낙담되거나 답답한 적이 많습니다만
요즘 들어서는 꼭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도 세포들이 직접 기억하고 행동하는 법이라는군요.
제 병간 5년에 거의 세포학 박사급에 이른 정희 씨의 말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저자가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했던 것들은 별로 대수로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기초적이고 당연한 것들이지요.
예닐곱 살짜리 애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이다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중 일부를 생각나는 대로 늘어놓아 보면 이런 것입니다.

-뭐든지 함께 나눌 것.
-꾀부리지 말 것
-정정당당하게 행동할 것.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 것.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갖다가 놓을 것.
-어지럽힌 것은 깨끗이 치울 것.
-밥 먹기 전에는 손을 씻을 것.
-화장실을 쓴 다음에는 꼭 물을 내릴 것.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할 것.
-매일 낮잠을 잘 것.
-큰길에 나가서는 차 조심할 것.
-밖에 다닐 때는 서로 손을 잡고 흩어지지 말 것.
-균형 있게 살 것. 즉, 매일 조금씩 공부하고 조금씩 생각하고 조금씩 그림 그리고 조금씩 노래하고 춤추고 조금씩 놀고 조금씩 일할 것.

다른 의견을 낼 수 없을 만큼 옳은 말이고 고개가 끄덕여 지는 말들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제 관심을 특히 많이 끌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했으면 '미안하다'고 말할 것."

사실 그게 그리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악의로 혹은 본의 아니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겠지요.
나를 먼저 생각하다보면 다른 사람을 뒤로 미루게 되고
그러다 보면 다른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지요.

그것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회피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심지어 20세기 최대 성인으로 여겨지는 마더 테레사까지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니까요.
인도와 카톨릭 안에서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면 그럴 수가 있겠습니다.
테레사 수녀님 같은 분이 그럴 정도인데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 나를 만족시키려고 남을 희생시키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게 '미안해' 하는 말을 가르칩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라고 가르치는 것이지요.
그리고 내 잘못으로 이미 상해버린 다른 이의 마음을 치료하도록 가르칩니다.

물론 유치원에서는 '미안해'라는 말과 함께 '괜찮아' 하는 말도 가르칩니다.
사과를 하면 반드시 용서가 뒤따라 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미안해'와 '괜찮아'라는 두 마디의 말은
부서지기 쉬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얼른 다시 용접시켜주는 매직 워드입니다.

'매직 워드'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오치가 한참 교육방송(PBS)을 보던 시절에 (지금은 만화만 봅니다만)
<바니>라는 프로그램에서 자주 내 보내던 노래였습니다. 그 노래에서는
'플리즈(Please)'와 '땡큐(Thank you)'를 매직워드라고 가르치더군요.

지금 '플리즈'와 '땡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거야.
흔히 '매직 워드'라고 부르는 말들이지.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란다면
그 두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어야 해.
'플리즈'와 '땡큐'를 잘 기억해야 돼.
그 말들은 '매직 워드'거든.

제목을 "Please and Thank You"라고 단 그 노래의 한 부분입니다.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란다면 '부탁해'와 '고마워'를 자주 말해야 한다는군요.

그러나 사실 처음에는 그 노래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는 않았습니다.
'부탁해'와 '고마워'를 자주 말해서 생기는 좋은 일이라는 게
결국 '나'에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와 내 이익을 위해서 좋으니까 그런 말을 자주 사용하도록 권하는 것이지요.
그런 말들을 자주 사용해서 나쁠 것은 없는 게 사실입니다만
그래도 그 말들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이기적이니까요.

반면에 '미안해'와 '괜찮아'는 위험에 빠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매직 워드입니다.
비록 나와 내 이익 때문에 네 마음을 상하게 해 버렸지만
그래도 '내게는 네가 아주 중요하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실은 '미안해'와 '괜찮아'가
'부탁해'와 '고마워'보다도 더 자주 사용해야 할 말들인지도 모릅니다.

만일 '부탁해/고마워'와 함께 '미안해/괜찮아'를 자주 쓴다면 어떨까요?
그거야말로 금상첨화요 다다익선이라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나도 좋고 너도 좋고, 나와 너의 관계까지도 원만해 질 테니까 말입니다.
꿩 먹고 알 먹고 새끼까지 칠 수 있는 매직워드들입니다.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라는 분이 쓰신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 책도 비슷한 시기에 정희 씨와 함께 여러 번씩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그 속편으로 나온 <성공하는 가족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책은
그때 막 결혼한 제 하나뿐인 시누이 해영 아가씨 부부에게 선물로 주기까지 했었습니다.

그 책의 한국말 제목에는 '성공하는 사람'이라고 돼 있습니다만
원래는 'Effective People'이라고 돼 있습니다.
돈을 잘 벌고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성실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건강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런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중에서 맨 마지막 습관이 "시너지 만들기"입니다.
일 더하기 일을 해서, 이나 삼이나 십 정도를 얻게 되는 것은 시너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일 더하기 일이 오백만이나 수십억 쯤 돼 버리는 것이 바로 시너지입니다.
산술적이거나 양적인 증가가 아니라 질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기존의 사고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질적인 도약을 만들어내는 것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이라는 것입니다.

'부탁해/고마워'와 '미안해/괜찮아'라는 말이 함께 만나면 그런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바로 그런 시너지의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부탁해'를 말합니다. 그게 바로 기도지요.
그런 부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샐쭉해 지는 경우도 많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대개 하나님께 '고마워'의 마음가짐을 갖게 됩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일이지요.
'부탁해/고마워'의 마음가짐이 간절하고 도타워질수록
하나님과의 나의 관계는 점점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본적이고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미안해/괜찮아'의 마음가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좀 어려운 말을 써서 '회개'와 '용서'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만,
그것은 결국 '미안해/괜찮아'의 다른 말일뿐입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의 근본적인 장애물을 우리는 죄라고 합니다.
그 죄를 하나님한테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이 바로 '미안해'의 과정이지요.
'미안해'를 고백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예외 없이 '괜찮아'로 대답해 주십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괜찮아'를 주시기 위해서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더라도
우리가 '미안해'를 고백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입니다.
잘못을 깨닫지 못하거나 고백하지 않는 사람을 용서하기란 불가능하잖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이미 죄를 용서하실 만반의 준비를 끝내시고도
하나님은 우리가 '미안해'를 고백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안해'가 고백되는 순간
"얘야, 나는 벌써 '괜찮아'를 말해 놓았단다" 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면 나와 하나님 사이의 죄 문제는 사라지고,
나와 하나님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가 됩니다.
낯선 이방인이 양자나 양녀가 되는 관계의 변화는 바로
스티븐 코비가 말씀했던 "시너지"의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요.

일단 그런 시너지가 일어나면 그것은 연쇄 반응을 일으킵니다.
'미안해/괜찮아'가 앞서게 되면 '부탁해/고마워'가 자연스럽게 뒤따릅니다.
심지어 '부탁해'의 과정이 없어도 '고마워'를 말할 기회가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그게 바로 '미안해'와 '괜찮아' 사이의 시너지이고
'미안해/괜찮아'와 '부탁해/고마워' 사이의 시너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대부분의 갈등은
유치원과 바니에서 배운 매직 워드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불렀으면서도
우리는 자라면서 그 말들을 점점 잊어버립니다.
우리의 입이 그런 말들을 잊어버리면
우리의 마음도 그런 말들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이지요.

길지도 않지만 그리 짧지도 않은 제 인생을 통해 생겼던 거의 모든 갈등은
그런 매직 워드들을 제대로 교환할 수 없었던 사람들과 사이에서 생긴 것입니다.
그런 말들을 서로 거리낌없이 그리고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면
우리의 관계들은 얼마나 매끄럽고 좋아졌을까요?

심지어는 부모 자식이나 형제 자매 같은 아주 가까운 사람들끼리도
그런 말들을 쓰는 데에 게을리 하는 바람에 갈등을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 한국 문화와 관습에서는
가까운 사람들끼리 그런 말하는 것을 가로막는 경향도 있습니다.
권위적인 부모나 반항적인 자식들의 관계는 바로 그런 관습의 결과이겠습니다.
형식적이고 소원해 진 형제 자매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런 관계들이 회복되려면 기적 같은 힘, 마술 같은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매직 워드들입니다. 마술 같은 기적을 일으키는 말들이니까요.
그 중에서도 '부탁해/고마워' 보다는 '미안해/괜찮아'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부탁해/고마워'는 아직도 내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관계가 소원해 져서 그것을 회복시키기가 어려운 사람들 사이에서는
'미안해/괜찮아'가 없는 '부탁해/고마워' 만으로는 관계 개선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단 '미안해'와 '괜찮아'가 말해지고 또 그것을 서로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부탁해/고마워'가 뒤따를 때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질시와 적대감의 관계가 기쁨과 만족스런 관계로 바뀔 수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럴 때의 사과는 형식적인 '아임쏘리'가 아니라 '진짜 사과'이겠습니다.
그럴 때의 용납은 형식적인 '잇쯔오케이'가 아니라 '진짜 용납'이겠습니다.
그럴 때의 감사는 형식적인 '땡큐'가 아니라 '진짜 감사'이겠습니다.
그런 사과와 용서와 감사는 사람의 마음을 묶어주는 '진짜 매직 워드'이겠습니다.

아무튼 책이라면 소가 닭 보듯 하곤 했던 제게
책 읽는 즐거움을 가르쳐 주신 김가일 장로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한 가족처럼 대해주시면서 짧게나마 음악을 나눌 수 있었던 사모님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미 대학생이 됐거나 벌써 졸업까지 했을지도 모를 앤디, 사라, 에이미...

김 장로님 댁과는 지금 연락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서점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느즈막이 다른 비즈니스를 시작하셨는데,
그 사업이 오히려 잘 되시는 바람에 다른 지방으로 동분서주하시게 됐지요.
다른 사람에게 경영을 맡겨둔 서점은 그 뒤로도 적자에 적자가 거듭돼
결국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버린 것 같습니다.
지금은 <뉴욕 종로서적>이라는 이름까지도 없어져 버렸다고 하더군요.
우리도 치병 때문에 정신이 없는 바람에 연락처가 묘연해져 버렸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연락처를 찾아서 <감사절> 카드라도 보내드리고 싶은데요.

그런데 말이지요.
그 당시 <뉴욕 종로서적>에서 사려고 점찍어 두었던 책이 또 한 권 있었습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의 저자 로버트 풀검의 다른 책이었습니다.
그때 두권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사서 읽을까 많이 망설더랬습니다.
그러다가 그때는 <내가 정말....>을 골랐지요.
그 뒤로 다른 한 권을 마저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혹시 읽으신 분이 계시면 재미있게 이야기 좀 해 주시겠어요?
책을 가지고 계시면 좀 빌려 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책제목이 뭐냐고요?

<제 장례식에 놀러 오실래요?>


장미혜 드림.


Please and Thank You

There are lots of things
We can do to be nice,
Sometimes they're hard to remember.
But there are two little things
You should never forget,
From January through December.

He's talking 'bout please and thank you,
They're called the magic words,
If you want nice things to happen,
They're the words that should be heard,
Remember please and thank you,
'Cause they're the magic words.

Use 'em in the morning, at noon, and night,
'Cause it's a great way to be polite!
Please and thank you,
They're the magic words.

We're talking 'bout please and thank you,
They're called the magic words.
If you want nice things to happen,
They're the words that should be heard!

Remember please and thank you,
'Cause they're the magic words.
Use 'em in the morning, at noon, and night,
'Cause it's a great way to be polite!

Please and thank you,
They're the magic words.

- Words & Music by Phil Parker -


172.152.177.108 한준섭: 제가 글 쓰면서 빠트린 말이 있었군요. 장미혜집사님... "미안해요," "부탁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11/22-07:33]
211.249.46.157 요리왕: 오랜전부터 주일오후면 가족들이 KBS 열린 음악회와 골든벨이라는 프로그램을 연속으로 시청합니다. 골든벨을 울리기 위해서는 50개의 퀴즈를 한번도 틀리지 않고 풀어야 하는데 대개의 경우 40번정도되면 단 한두 학생만이 남습니다. 골든벨을울리는 경우는 약15%나 될까요...대부분이 고배를 마시지요...그 때 그 학생이 답을 몰라서 답쓰는 칠판에 '미안해'라는 말을 쓰면 학생들과 선생님들 모두가 '괜찮아'라고 합창을 합니다 [12/12-12:19]
211.249.46.157 요리왕: 언제나 그 장면이 골든벨을 울리는 경우보다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그게 매직 워드라서 그런 것이었군요 [12/12-12:20]
211.249.46.157 요리왕: 주님이 님께 정말 미안해 하시면...꼭 괜찮아요...라고 답하시기를... [12/1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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