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나실이는 슬프다...

주방보조 2007. 12. 7. 01:17

수학은 항상 나실이의 발목을 잡는 과목입니다.

 

초등학교 때

일기에 썼듯이 '수학이 없었으면 좋겠다' 라고 마음을 굳게 잡수신 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다정하고 따뜻하지만 버럭 화를 잘내는 철없던 아빠의 시선을 피해서

수학공부를 하는 대신 '다 알아요'라고 대답했던 죄때문에

'분수도 모르는 아이'가 되고 말았었습니다.

그때는 한과목만 잘하면 대학에 간다 떠들어 대던 해골스럽게 생긴이가 교육부 장관이 되어 초등학교 내에서 치루는 모든 시험을 없애버린 때라서 집에서 녀석의 분수도 모르는 실력을 파악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 집의 사교육 절대 금지...의 덕이기도 했지만요. 학습지라도 했다면 금방 눈치 챘을 텐데...

게다가

가끔 착한 어린이 상 같은 제 마음을 눈녹듯 만드는 상장을 흔들며 집에 돌아 왔기 때문에 '어이구 우리 착한 딸' '듬직하구나' 등의 칭찬으로 제 눈이 가리워 버렸기도 하였지요.

 

중학교 때

첫 시험 그러니까 중1 중간고사를 치루고

우리는 그 수학 점수에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자연수의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즉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서 그 수학실력이 딱 멈춰 있는 것이었습니다.

분수의 더하기도 빼기도 곱하기도 나누기도 전혀 모르는...'분수도 모르는' 중학생이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황급하게 몽둥이를 들고 을러 가면서 '분수를 아는' 아이가 되도록 만들었지만...구멍난 것이 어디 분수 뿐이었겠습니까?

중학교 내내 국어와 영어 실력은 평균을 악간 상회하나 수학은 하위권을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마쳤지요.

 

고등학교 올라 와서

여전히 수학은 녀석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영어와 국어는 제법 등급이 나오지만 수학은 딱 중간에 걸려 있는 형국이라서...상위권을 치고 올라가 선두권이 되기에는 역시 힘겨워 보인다는 말이지요.

 

...

 

어제부터 2학년 학기말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며칠전 야자에서 함께 돌아오는 한강변의 길을 걸으면 녀석이 의기 양양하게 한마디 영웅담^^을 늘어 놓았습니다.

'아빠'

응?..

'제가요 수학 선생님이 틀린 것을 찾아 냈어요'

그럴리가...

'정말이예요, 수학문제를 풀다보니 선생님이 틀리게 필기해 준 것을 찾아냈단 말예요'

그럴리 없다. 선생님들이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시고 여러번 가르치시는데 틀리다니...

'정말이예요, 믿어주세요'

그래? 그래도 혹 모르니 선생님깨 여쭤 보고 확인해 봐라...

'근데요 그런거 이야기 하면 아이들 앞에서 놀려요, 나실이가 아주 실력이 좋아요~하시면서요'

 

그리고 시험이 가까워 오던 지난 토요일

몇 개의 수학 문제를 제게 가지고 와서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30년도 전에 풀었던 문제였지만...'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던'^^ 시절에 공부했던 것이라

약간의 신음소리와 함께 ... 자세히 풀어 주었습니다. '난 천잰가봐 ㅋㅋ'하는 엄청난 자화 자찬을 끝내고 나실이를 불렀습니다.

야! 나실!...

'네?'

너 지난번 선생님의 잘못을 밝혀내던 실력은 어딜갔어?...

그건 다른 문제구요.

이런 것 모르면 선생님께 여쭤보라 했잖아...

물어봤어요

그런데?...

자습서 보고 공부하래요.

그래, 자습서 보면 되잖아? 교과서 문제인데...

자습서 봐도 모르겠어서 물어보러 간거죠.

그래도 또 여쭤봐야지...

물어봤는데...자존심만 상하게 힐끗보고 대답도 안 하셨어요.

 

그리곤

"난 혼자 공부 하는데..." 들릴듯 말듯 한마디 하곤

우리 씩씩하고 든든한 나실이의 눈에 작은 이슬이 맺혔습니다.

 

...

 

마음이 약해지려는 것을 추스리고...

나실아, 공부란 원래 혼자 하는 거야...누구한테 물어서 배우는 것보다 혼자 풀어내야 진짜 실력이고...선생님이 바쁘셨을꺼야...선생님 미워하면 안 된다...이번 겨울에 지금보다 더 많이 수학공부를 하면 될꺼야...좀 더 어려운 문제를 붙들고 풀어내 봐...넌 할 수 있어...운운...

 

...

 

나실이는 슬프다...

뒤늦게 수학을 열심히 하려니...슬프고

학교에서도 도와주는 이 없으니...슬프다.

수학이 발목을 잡아 성적이 안 오르니...슬프고

수학을 포기해 버리려니 미련이 너무 많아...슬프다.

 

...

 

흥! 그래도 이 나실이의 아버지는 공교육을 믿습니다.

왜?

글쎄요...점점 그 대답할 목록이 줄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돈이 가장 덜 들잖아요...휴...

 

 

 

 

 

 

  • Pia2007.12.07 06:34 신고

    그 선생님 참 웃기는 짬뽕이라는 생각에 갑자기 열 받습니다.
    아니, 그렇게 공부를 가르칠거라면, 학교에는 뭐하러 나갑니까.
    그냥 달랑 교과서랑 자습서만 가져다 놓고, 학생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면 되겠네요.
    증말 우끼는 싸람일쎄...!!!
    그 선생님 나 좀 보자고 해 봐욧!!!

    답글
    • 주방보조2007.12.07 17:14

      ㅎㅎㅎ...난감...^^;;;
      선생님 입장에선 너무 공부를 안 해온 티가 나서...스스로 더 알아보라는 뜻에서 그리하셨으리라 저는 이해합니다. 다만 공부 잘 못하는 놈을 선생님들은 잘 모르시는것 같아요. 예나 지금이나...
      그래도 피아고모가 나실이 대신 열 내주시니...기분 좋네요^^

  • 김순옥2007.12.07 12:18 신고

    사교육을 받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특히 수학은 혼자서 하는 게 쉽지 않다는군요.
    저도 늘 갈등이 생기는 일이랍니다.
    언젠가부터 저도 손을 놓고 한빛이 혼자서 해결하고 있으니까요.
    아마 독수리남매들처럼 끝까지 혼자서...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늘 수능 결과가 나오는건가요?
    진실이도 다음 타자가 되는 나실이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네요.
    모두모두 모범적인 선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7.12.07 17:21

      저는 수학도 사교육이 필요하지 않다고...확신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고 혼자서 참고서들 푸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진실이의 사교육 제로 실험 보고서를 곧 쓸 작정입니다만, 본인의 동기부여가 부족했고 그것이 어느정도 천성과 맞물려 있다는 내용이 될 것같습니다.

      진실이는 가채점 결과 경계선에 걸려 있던 것들이 모두 낮은 등급쪽으로 판정이 나서...
      나실이가 어쩜 아빠의 말씀이 이토록 정확하냐고...혀를 내두르며 떠들어 대게 만들었죠^^

  • shlee2007.12.07 22:01 신고

    이곳 아이들은 거의 사교육이 없어요.
    한국에서 공부하다 온 아이들은 수학 점수만은 높게 나온답니다.
    며칠전 미국 티 브이 드라마에 수학만 좀 잘나오고
    다른 과목은 별로 인 아이의 성적표를 본 미국 아빠가
    이런 대사를....
    한국 아빠의 심정을 알겠다.
    우리나라 수학이 수준이 좀 높아서...
    전 이과라 수2까지 배웠었는데..너무 너무
    어렵기만 하고...좌절감만 ...
    탄젠트 갑자기 이 단어가...
    뭔가?
    지금 남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작년 이 맘때
    수학 재미있게 하는 책 검색한적 있었거든요.
    우리 아이들도 수학이 별로라..
    그런 책들이 제법 있던데요.....
    나실이가 혼자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책을 발견 할 수 있기를....

    답글
    • 주방보조2007.12.08 00:34

      수학의 정석을 벌벌 떨고 손을 못댑니다.
      저는 제발 겁먹지말라고...거듭 말합니다.
      나실이의 문제는 어려서 수학을 두려워 하는 법을 먼저 익히는 바람에 오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감을 준다는 것이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격려하는 제 입장이 어렵기 한량없는데요
      본인이 그래도 해 보려고 애쓰고 있으므로 거기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지요.

      사교육은 정말 제살깎아먹기...어리석음입니다. 모두 다 하는 것과 모두 다 안 하는 것이 결과가 같을 것인데 말이지요.

      저희는...생각도 그렇고 돈도 없고^^...끝까지 밀어붙일 참입니다만...

  • 알 수 없는 사용자2007.12.09 21:09 신고

    정민이가 울 교회 집사님의 아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딸래미야 말로 사교육 한번 받아보지 못한 아이구요,
    수학에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아이랍니다.
    뭘 이야기 해줘도 그게 뭔데요? 라고 한다네요.
    내신만이라도 도와주고 싶어서 무료로 가르쳐주는데
    책을 외워서 하는 방법은 아는데 계산이 틀린다네요. ㅠㅠ
    정민이가 속상해 죽으려고 합니다. 주관식이면 반이라도
    점수를 얻을텐데... 하면서요.
    수학이 안들어가는 학교를 찾아서 대입준비를 시켜보세요.
    울 형민이도 수학 안들어가는 학교 지원합니다.
    수학점수가 두번째로 좋은데도 그 학교는 수학을 안넣더군요.ㅠㅠ

    답글
    • 주방보조2007.12.10 01:31

      진실이는 아직 학교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첫번째라서...아직도 감을 잡고 있는 정도입니다. 돋보기를 쓰고 인터넷을 며칠 눈이 빠지게 보았더니..눈밑이 통통부어 축 늘어지는 지경이되었답니다^^
      남들 다 하는 이야기겠지만 ...컷에 걸린 것마다 다 낮은 등급으로^^ㅎㅎ
      그래서 수도권 대학들을 �었는데도 만만해 보이는 곳이 없네요.
      소신지원을 하고 재수를 하느냐...우찌되었든 학교를 가느냐...고민 중입니다.

      나실이는 요즘 학기말 시험 중인데...오늘 전자사전으로 라디오를 듣다가 제게 걸려서리...쩝
      그래도 아직 수학을 포기 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슬픔을 극복하고^^ 잘 해 주기를 바라고 있지요.

      형민이는 학교를 정하였다니...정말 잘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 봄빛2007.12.11 14:06 신고

    아..
    울집 작은 녀석이 수학을 조금 하는데
    담에 모르는 문제 있거든 멋진 오빠에게 물어보라고 하면 안 될까요?

    30년이 지난 후에 고2 과정의 수학문제를 푸시는 쩜님이 존경스럽습니다.
    공교육보다도
    나실이 아버님의 도움이면 올 겨울방학때 슬픈 나실이가
    다소 깊은 얼굴이 될 듯 싶은데....

    답글
    • 주방보조2007.12.11 17:29

      전주로 이사를 가버릴까요?^^

      전 아이들에게 항상 말합니다. '모르는 거 있음 물어봐라...'
      절대 안물어봅니다. 이유인즉...꿀밤이 너무 아프다고...'이것도 몰라...엉?'하며 툭 때리는 ...
      안 때릴게 물어봐...해봐야 안 믿습니다^^
      이번에 나실이가 슬프게 물어본 것도 거의 6개월만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