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살찐? 이유...^^

주방보조 2007. 5. 23. 07:08

 자양고 학생의 죽음과 여행사들의 비리 폭로등이 겹쳐 수학여행이니 수련회니 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적잖은 가운데 나실이도 강원도 용평으로 수련회를 떠났습니다.

얼굴이 좀 더 두텁해져서 돌아온 나실이의 보고에 따르면
조교들의 기강잡기가 엄청 세져서 얼차려를 무척 많이 받았고 , 처음부터 핸폰은 모두 압수가 되었다고, 그래도 조교가 하는 말마다 말 안 듣고 말대꾸 하는 애들이 없어지질 않아 정말 속상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징벌이 계속되었고 힘들었을테니까요.
지나치게 개인 위주로만 생활하는 요즘 아이들에겐 그러고 보면 집단 인간관계 훈련이랄 수 있는 수련회도 조금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비가 오는 날씨였지만, 풍경이 너무 좋아서 사진기를 충전시킨다고 꼽아 놓고 가져가지 않은 것이 엄청 후회된다면서...한번 더 강조했습니다. 경치 하나는 끝내주게 좋았어 아빠...

...

여행에서 돌아온 날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저는 나실이에게 한강에 나가 걷기를 좀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왜냐하면
돌아온 딸의 얼굴이 엄청 살 쪄 보였기 때문입니다.
걷는 것이 살 빼는 데는 제일 좋다더구나, 게다가 아빠가 요즘 혈당이 높아져서 약을 늘려 주면서 매일 2시간은 족히 걸어야 한다고 의사선생에게 엄청 혼이 났으니 같이 걷자...고 하였습니다.

의리파 나실이는 수련회에서 막 돌아와 힘이 들었을텐데도 저를 따라 나섰습니다.
그리고 잠실대교 아래까지 6천보 코스를 함께 속보로 걸으면서 수련회에 있었던 잡다한 이야기들을 신나게 떠들어 대었습니다.
어떤 아이가 장기 자랑에 나와서 무엇을 말했고 어떤 노래를 불렀으며...
남자 아이들의 반응은 내내 자기들끼리 딴 짓만 하다가 오직 여자 아이들이 엉덩이를 흔들어 대며 섹시한 춤을 추는 것에만 관심을 보였다고 때 늦은 성토를 해 대었지요.

그리고는 문득 생각난 것처럼
자기는 절대 살이 찔 수가 없다고, 수련회 음식이 얼마나 부실했는지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게다가 간식도 사 먹을 수 없었다고...얼마나 많이 움직여야 했는지...그런데 살이 쪘다니 말이 안된다고 하면서 머리를 이쪽 저쪽으로 넘겨 가면서 ...이래도 쪄보여요? 몇번 묻기까지 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잠실대교 아래 도착했고
수중보를 한 개 열어서 힘찬 물길이 아래로 마구 흘러 내려가는 것을 큰 돌 위에 앉아 바라보며 한참 동안 한강의 시원함을 만끽 하였습니다. 

...

그 때...
갑자기 나실이가 '아빠 빨리 집에 가자' 재촉했습니다.
배가 아프다면서...
한강공원의 간이 화장실이라도 이용하라 하였더니...참을 수 있다고... 자기는 절대 집에 가야만 한다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다들 경험해 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집으로 돌아 가면서 우리는 가끔 멈춰서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죽음이니까요^^

그런 상황에서도
고2인 녀석이니 ...
가는 길 내내... 저는 인생에 대한 주옥같은 교훈들을^^ 계속 이야기 하였습니다.
마침내 우리 아파트 맞은 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서 있게 되어 물었지요.

너, 아빠가 지금 네게 해준 이 주옥같은 말씀들을 잘 새겨 들었느냐? 
아빠...저는요 아빠가 하시는 말씀 한마디도 못들었어요...
뭐라고? 왜?
저요...지금 오직 한가지에만 신경이 집중되어 있어서요...아무 말도 안들어와요...
허허...그거 진짜 가치있는 교훈이구나...
예?
봐라, 공부도 그렇게 해야 되는 거란 말이다. 오직 그것에만 집중하면 그 어떤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지.

파란불이 들어오고
진땀을 흘리던 나실이는 ...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집안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

다음날 편하게 물어보았습니다.
너 수련회가서 한번도 볼 일을 안 본 거 맞지?
예...
리조트 화장실은 우리집 화장실보다 시설이 훨씬 더 나았을텐데 왜 그랬어?
제 그것때문에 변기가 막힐까봐서요...
허걱...!!!!http://blog.daum.net/jncwk/445623  (참고^^)

얼굴을 자세히 보니...이런...어제보다 붓기가 빠져 보였습니다.^^

그래서 마무리 맨트를 날렸습니다.

음...그러니까 나실아 이젠 알겠다
네 말대로 살이 찐 것이 아니구나...
체내에 그것의 독이 쌓여 부은 것이었고나....움홧홧홧...^^

 

 

 

 

 

  • 청랑2007.05.23 08:34 신고

    아이고오~
    짓꿎으신 아버지... ㅎㅎㅎ

    답글
    • 주방보조2007.05.23 23:04

      ^^
      제가...푼수때기라 그렇습니다. 아주 먼 훗날...이 아비때문에 웃을 일이 있으리라 기대하는...

  • 원이2007.05.23 08:50 신고

    빙고!
    바로 그겁니다!!
    .
    .
    .
    저도요.ㅠ.ㅠ

    답글
    • 주방보조2007.05.23 23:10

      파하~~~

      요구르트...많이 만들어 드셔요.

      요즘 우리집 냉장고엔 각종 요구르트들이 잔뜩들어 있는데(동네 슈퍼들이 세일중이라)...^^

  • 김순옥2007.05.23 16:22 신고

    그럼 저도 체내에 독이 쌓였단 말이네요 ㅎㅎㅎ
    나실이 어머님께서는 그만큼 순수한 셈이 되시구요 ㅋㅋㅋ

    가장 혈기왕성한 때가 여고생 때가 아닐까 싶어요.
    저도 그때가 생각나네요.
    말랐던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뚱뚱하다고 놀리시면서
    버스요금도 체중으로 차등화해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갑자기 날씬해진 아이가 체력이 딸려서 공부에 집중이 덜 된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열심히 공부해서 한 방에 모두 날릴 수 있기를 저도 기원합니다.
    진실이나 나실이의 미모가 엄마를 닮아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오랜만이시죠?
    한얼이가 와서 많이 귀찮게 하는 건 아닌데 블로그에 집중되지는 않네요.
    한얼이는 최고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아마 이 달까지는 그렇게 보내고 싶은가 봅니다.

    아파트 담장마다 빨간 장미가 계절의 여왕 5월의 대미를 장식해 가고 있습니다.
    더불어 멋진 가족이벤트 기간이 되시길...

    답글
    • 주방보조2007.05.23 23:16

      저의 마눌도 그것배가 나왔다고 고민 많이 한답니다^^ㅎㅎ

      ...

      공부해서 살빠지면 얼마나 좋을까요?^^ㅎㅎ...그것이 제 요즘 소망입니다.

      한얼이와 보내는 시간...즐겁게 보내세요. 다시 메국으로 돌아가고 장가가고 하여도 잊지 못할 추억도 만드시구요.

      우리 아파트에는 흰장미가 넝굴을 이루고 있답니다^^

  • 소리천사2007.05.24 03:33 신고

    아하하하하~ 읽으면서 미소와 웃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푸하하하하..
    너무 다정하신 부녀지간이시군요. 아빠에게 이것 저것 다 고해 바칠 줄 아는 따님이
    , 조금 붓긴 했지만서도, 얼마나 이뻐 보였을까요... 너무 따뜻한 부녀의 산책이었군요.
    오랜동안 간직하게 될, 그리고 먼 훗날에 기억속에서 다시 꺼내 보고 껄껄 웃을 수 있는 좋은 추억거리 하나 만드렸네요. 언제나 보기 좋은 쩜. 님의 가족 이야기... 늘 축복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빌어요.^^

    답글
    • 주방보조2007.05.24 03:54

      공부 한가지 빼면
      남부러울 것없는 행복한 아이들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있답니다.^^
      뭐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외모야 어쩔 수 없는 것이니...포기하구요

      유능한 아버지는 못되었지만...추억할꺼리가 있는 아버지 정도가 된다면 ...저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 햇살동산2007.05.24 12:28 신고

    우아.. 이런 반전도 있군요..
    착한 나실이네요.. ㅎㅎ ^^

    답글
    • 주방보조2007.05.24 22:05

      다섯 아이들이 다 알아서 착한 것같습니다. 안그러면 살아남지 못할 것을 깨달아선지^^
      그중 궂이 따지자면 나실이가 제일 무섭지요. 원칙주의자니까.
      그런데 하나님게서 나실이의 그것으로 좀 풀죽여 주시는 것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답니다.
      원칙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려는 배려 정도로 생각하면 재미있지요.

  • rabbit2007.05.29 16:54 신고

    냐하냐하냐하
    냐하 냐하 냐하 냐하
    끝.

    답글
  • 잔느2007.05.30 13:55 신고

    저.. 혼자서 너무 웃었더니.. 누가보면 .. 미쳤다 하겠어요 ㅋㅋㅋ
    이렇게 재밌는 일을 못읽고 지나칠뻔 했네요
    살찐게 아니라 독이 쌓여 부었던 거라니 ㅋㅋㅋㅋ
    신랑 친구 중에........ 큰 일만 봤다하면 변기에 가득 차고넘치게 나온다느 사람이 있거든요.
    그 친구 얘기 버금가게 웃기네요.
    휴.. 간만에 배꼽잡았습니다 ㅋㅋㅋ

    답글
    • 주방보조2007.05.30 23:08

      그것이야기는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나 즐겁게 하는 편이지요^^
      앞으로 걱정이예요.
      시집에 가서 녀석만 왔다가면 막히는 변기...누가 뚫어주냐구요...허허...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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