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오후 온 식구가 식탁에 둘러 앉아
점심식사로 충신이가 시장에서 사온 김밥과 만두 떡복기 순대 그리고 꽈배기 도넛 등을 배부르게 먹고 나서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 집 맏딸 진실이가 모두에게 할 말이 있다면서 의자를 고쳐 앉았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조용해진 좌중을 둘러보고 나서 진실이가 입을 떼었습니다.
“동생들이 왜 요즘 나한테 시비조로 대하는 지 무척 불쾌하다“
이것은 진실이의 순한 성격과 행태로 보아 선전포고에 가까웠습니다.
평소 아이들에게 왕 노릇하던 저나 저보다 딱 한수 위인 아내조차도 그 기세에 눌려 뻘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니의 이 기세 좋은 선전포고에 일단 한발 물러섰던 우리 집의 군기반장인 나실이가 잠시 머리를 숙였다가 들어 올리며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언니의 동생들인 우리가 언니에게 좀 시비조였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언니는 언니로서 좀 문제 있는 태도를 보였다고 생각하지 않아?”
충신이가 슬쩍 끼어들면서 진실이에게 동생들이란 말로 자기가 함께 언급되는 것에 대한 변명을 한 마디 던졌습니다.
“나는 진실이 누나 편을 들어주기도 했는데요. 아빠도 아시죠?”
제가 압니다. 나실이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알고 충신이가 그 무서운 누나의 밥이라는 것도 알고 혹 나실이가 언니를 몰아붙이는 일이 있으면 제게 와서 이르기도 하였었으니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두 누나의 싸움에 좀 빠졌으면 좋겠다는 변명이라는 것까지 잘 압니다.
일단 숨죽이고 있는 원경이는 누구의 말이라도 원칙에만 맞으면 즉각 수용하는 아주 바람직한^^ 태도를 가진 아이이므로 진실이보다 훨씬 더 원칙주의자에 가까운 나실이와 한 편일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어쨌든 넷째 주제에 큰 언니의 심기를 건드려 놨으니 추이를 지켜보려는 듯 말이 없었습니다.
결국 진실이와 나실이의 말싸움이 되었고
그 둘이 서로 주장하는 것을 가만히 들으니 대충 무슨 문제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진실이는 언니로서 (물론 고3이라는 구실로) 집안일에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하고 게다가 시쿤둥한 말투를 날려서 열심히 빨래며 설거지며 청소 등 집안일을 살피는 나실이에게 상처를 주곤 했고, 보복력을 가진 나실이는 당연히 원경이와 언니를 씹는^^분위기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재판을 해야하는 저로서는 난감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언니 편을 들자니 동생이 울고 동생 편을 들자니 언니가 울고 할 그런 형국이었습니다.
솔로몬도 대략 난감을 표시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둘 사이의 논쟁이 수그러들 즈음 저는 "한마디"로 저들의 문제를 지적해냈습니다.
“결국 언니는 말투가 문제이고 동생들은 태도가 문제로구나”
양비론으로 답하는 것이 별로 정의롭지는 못하지만 궁극적으로 평화를 추구한다는 목적에는 부합하는 것 같아, 제가 내린 양비론적 결론입니다.
의외로, 간단하게 잘 정리되어 이해를 했는지, 아니면 둘 다 스스로의 잘못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혼나기 전에 수습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여 수긍하는 척 했는지 몰라도 제 결론에 동의를 하였습니다.
이제 요리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럴 때 누군가의 편을 더 들어 주거나 이익을 더 주게 되면 갈등의 골은 깊어집니다.
다 똑같이 손해를 볼 처지를 만들어야 갈등도 덮고 문제도 해결되는 법입니다. 이것이 신기한 인간심리 아니겠습니까?
판결문을 다름과 같이 내렸습니다.
진실이는 “무슨 상관인데?”, “됐거든”, “그래서 어쩌라구?” 따위의 말을 쓸 경우 세 번 걸리면 천원 벌금을 걷겠다.
나실이는 “짜증”, “분통”, “고함”과 같은 행동을 하면 역시 세 번 걸렸을 때 천원 벌금을 걷겠다.
충신이는 “빈정거리는 말투”, “게으른 목소리”, “지나치게 싱거운 농담”을 할 경우 또 역시 세 번 걸렸을 때 천원의 벌금을 걷겠다.
원경이와 교신이는 아직 초등학생이므로 잘못된 행동이나 말투를 사용할 때 교육차원에서 혼내는 것으로만 하겠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삼진아웃”제다 알겠느냐? 들어는 봤느냐?
진실이와 나실이는 그 판결을 “알겠어요“라고 짧게 답하므로 받아들였고
원경이와 교신이는 당연히 자기들은 벌금 안 낸다며 즐겁게 받아들였습니다.
그 전날 밑의 아이들 셋을 혼자 데리고 나갔다가 적잖이 혼쭐이 났던 아내는 다섯을 한꺼번에 묶어 해결해 버리는 저의 솜씨에 존경의 눈길을 보내셨습니다.
다만 충신이만이
“아니 왜 제가 벌금을 내야 해요? 저는 중립인데요~~~”라고 외쳤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구동성 충신이를 향해서 외쳤습니다.
"원 스트라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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