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산책...봄

주방보조 2007. 3. 22. 19:31
 지난 주 금요일 오후에
아내는 매주 금요일마다 우리 둘만 함께 나누던 문화활동을 잠시 쉬자 하였습니다.
롯데 시네마에서 행복을 감상할 것인지 전쟁을 감상할 것인지 고민하던 것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지요.


금요일 초저녁부터 푹 쉰 아내는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힘이 나는지 빨래며 청소며 밀렸던 집안일들을 척척 해치웠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모두 학교로 떠나가고
집안일은 10시쯤 모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


우리는 금요일 저녁의 데이트를  한강에서 대신 하기로 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한강엔 미리 정해 놓은 우리들의 무덤이 있고

우리 둘이 마음대로 정해놓은 우리들의 의자가 있습니다.
우리 무덤은 중량천이 한강과 만나는 왼쪽 갈대밭이고
우리들의 의자는 뚝섬유원지역 서쪽으로 이어지는  공원 끝 '수크렁' 산책로에 있는 의자중 하나입니다.






우리 아파트의 수호조?가 된 비둘기와 참새 중간쯤 되는 크기의 매우 빨리 날고 강하고 명랑한 소리를 내는 새들의 전송을 받으며 날씨가 무척 좋다는 감탄으로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사실 산책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걷는 것보다는 타고 가는 것을 좋아했고
타고 가는 것보다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조신하게 머물러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여전히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걷는 것에 대하여 호의적이 되었습니다.


산책에서 돌아올 때 냉면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자기는 따뜻한 국물이 있는 것을 먹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부부란 워낙 그렇게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서 사는 것이니까요.


굴다리를 지나 한강 공원에 접어들자 운동장엔 축구하는 이들과 족구 하는 이들과 그것을 구경하면서 앉아 먹는 이들이 제법 무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생수를 한 병 사고...


꽃밭엔 꽃이 있을까...아직은 없을 것이라는 아내의 말에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하고 막 내기를 걸려하는 순간 이미 저쪽 구석에 피어 있는 펜지...아마 가져다 심어놓은 것이겠지만...가 눈에 띄었습니다. 저의 약간 우쭐해함에...웃고...크기는 거의 같은데 개나리보다 꽃잎이 하나 또는 둘이 더 많은 노란 꽃...영춘화도 보았습니다.
아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자연학습장 왼쪽의 벚나무 길을   걷기 운동하는 뭇 사람들과 반대로 걸으며 다투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시계반대방향으로 다니는 것이 통상적인 것이다(나) 아니다 상관없다(아내)


줄지어 있는 산수유의 노란꽃들도 보고...자연학습장을 나와 한강으로 내려갔습니다.
게단 틈새에 아주 작은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있었습니다. 노란색 흰색 보라색...
제가 제일 좋아하는 제비꽃도 그 이파리들을 죽 뻗어내고 있는 것이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며칠 후면 보라색이나 흰색의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가까이 본 강물은 약간 누런 기운이 감도는 별로 좋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대신 제 팔뚝만한 가물치?한마리 강가에 나와 있다가 유유히 강 가운데 쪽으로 헤엄쳐 가는 것을 우리 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강물을 지척에 두고 물길을 따라 걸으면 매우 상쾌합니다. 강둑 위와 공기부터 좀 다르거든요.  게다가 가까이 보이는 물오리들의 모습도 훨씬 실감이 납니다. 갈매기도 몇 마리 와서 멋진 비행을 보여주었습니다. 물 바로 위로 스치듯 수평으로 나는 모습은 정말 우아함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파란 캔버스 위에 흰 줄 하나...


살아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함께 손을 잡고 웃고 대화하면서 걸을 수 있고
아름다운 색깔의 꽃잎을 피워낼 수 있고
물속을 유유히 유영할 수도 있고
공중을 날며 물을 가르며 자맥질을 하며 여럿이 어울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내가 청담대교 아래 아주 작은 오리류 두 마리가  빠르게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며 그 속도에 감탄 하길래  보이지 않는 물 속의 오리발들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아는척 한마디 하고...


거기에서 다시 강 위 자전거 길로 접어든 것은 개들...아주 예쁘고 귀여운 ...그러나 우리 둘은 모두 겁내는 개들...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발자국 못가 개나리 성질 급한 녀석 몇이 이미 그 주둥이를 벌린 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와 개나리다~~ 개는 겁나도 개나리는 반갑죠^^


...


영동대교 바로 못 미쳐 있는 수크렁 산책로에 그 풍성하던 풀들은 모두 베어져 건초더미를 이루고
있었고

우리들은 우리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볼품없는...장소가 되어 버렸더군요.


그러나 건초더미들 앞의  휴식은 편안하고 달았습니다.


...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함께 타기를 청했지만
저는 수크렁 산책로의 정확한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도로 표지목에 다녀왔고
제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두 금발의 서양여자 아이들에게 아내도 그네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타고 온 자전거도 참 예뻤지요. 색다르고...             


뚝섬유원지역 옆의 새로난 굴다리를 지나 삼성 트라펠리스부터 건대입구역 맞은 편의 스타시티까지 새로 조성된 고층 빌딩들을 사열하면서 변화에 대한 담화를 나누었고


자양 이마트에선 이미 마음이 바뀐 저는 낙지덮밥을 그리고 아내는 짬짜면을 사먹었습니다.


...


학교에서 돌아와 있던 아이들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으로 대충 점심을 차려 먹으라 하고...


우리는 피곤한 몸을 ... 아이들의 소음 속에서도  낮잠으로 풀어야 했습니다.


...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물론 다 잊어버렸지만^^

 

 

 

 

 

 

 

 

 

 

 

 

 

 

 

 

 

 

 

 

 

 

 

 

 

 

 

 

 

 

 

 

 

 

 

  • 달팽이2007.03.22 21:19 신고

    하~ 즐건 데이트를 하셨네요.
    방금 남편과 유민이를 동네한바퀴 돌고 오라고 내보냈습니다.^^
    유민이는 동네한바퀴 돌고싶어서 준비하던데
    남편은 가까운 수퍼나 다녀올 모양입니다.
    얼마나 있으면 저희도 둘만의 데이트를 할 수 있을지...
    몹시 부럽습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7.03.23 00:48

      저희가 둘만의 데이트를 시작한 것은 교신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입니다. 아내의 논문쓰는 일때문에 몇번 누리지 못햇지요 . 올해부터 좀 자유로워 졌고...게다가 집 가까이에 극장도 생기고 하여 작년보다는 비교적 자주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하고 나서 간디를 본 후 15년만에 챨리와 쵸콜릿공장을 보았다니까요.
      달팽님네는 그동안 많이 즐거운 시간들을 가지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2-3년만 더 기다려시면...유민이 충분히 자랄텐데요...뭐^^

    • malmiama2007.03.23 13:19 신고

      유민이는 내 손을 잡고 뒤로 걷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위험한데...했더니,
      아빠가 대신 봐주니까 하나도 안무섭다고 했지요.
      정말 뒤로 잘 걷더군요. 저보다 빨랐는데
      저야 뭐 유민이가 뒤로 걷는 길에 뭐라도 있나 살피느라 바빴으니까요.
      유민이에게서 아빠에 대한 믿음을 봤습니다.^^

      딸기를 한상자 샀는데...유민이가 들게 했습니다.
      3키로쯤 되는 건데 집 앞 다 와서 "아빠가 들어 주세요"..하더군요.
      유민이에게서 아빠에 대한 믿음을...또 봤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래야하는데..^^

    • 주방보조2007.03.23 14:16

      교신이가 며칠전 원경이에게 물려받은 자전거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빠말을 듣지 않고 제 멋대로 아무데나 자전거를 세워놓았기 때문이죠. 자물쇠도 안 잠그고...
      잃어버린 자전거때문이 아니라...아비말을 경청하려 하지 않음에 대하여 한참을 나무라고 혼을 냈습니다...이것도 믿음의 문제이죠. 아비를 믿고 성장하면 좋을텐데...아비로부터 독립하여 성장하려고만 하니..이것도 생명력인지^^
      유민이에게도 이런 날이 오겠지요?^^

  • 소리2007.03.22 23:40 신고

    동영상에서 두 분의 모습을 뵈어서 그런지 두분이 데이트 하시는 모습이 글을 따라 읽노라니 마치 동영상을 보듯 그렇게 보이는 듯 합니다.^^ 참 정겹고 다정하시고 그러십니다.
    쩜. 님의 글을 읽노라면 쩜. 님의 부인을 향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데요...
    그게 참 너무 아름답습니다. 어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세상에 단 한 분, 쩜. 님을 이길 수 있는 분은 바로 부인이 아니실까 싶어요. 이기지 못해서가 아니라,이길 수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에게 늘 양보하시는 듯 해요. 그리고 배려하시구요.
    깊어가는 두 분의 사랑에 잠시 감동하며 미소지었어요.^^
    금요 데이트 계속, 쭈욱~ 하시길 빌어요.^^

    답글
    • 주방보조2007.03.23 00:54

      고맙습니다^^
      오늘은 이인용 자전거를 집안에 들여다 놓고 ..뒷바퀴 살을 좀 잡아주고 골고루 기름칠도 하고 그랬습니다.
      내일은 강변을 한번 달리지...하니...고개를 살랑살랑 흔들더이다^^ 바람때문에 아직은 싫다고.
      그리고 토요일로 바꾸면 좋지않을가 하는 눈치였습니다.
      예...알아서 기며...삽니다. 거의 20년가까이 되어서 그 비결을 터득한거죠^^

  • 왕언니2007.03.22 23:42 신고

    작년가을에 탄천일주를 끝낸지라 수크렁이라는 풀?의 아름다운 자태가 떠오릅니다.
    두분의 산책길이 멜로영화의 한장면처럼 크로즈업 되면서...아름다운 그림이 됩니다.
    먼데서 보아도 젊은 부부의 뒷모습은 아름다운데 노친네들의 그림은 멋이 없어요.
    이상하지요?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도 눈만 보아도 늙은인지 젊은인지 구별이 가니....
    젊었을때 데이트 많이 하세요.
    따뜻한 토요일의 햇살이 두분의 얼굴에 비취면서...그얼굴에 햇살이...^^

    답글
    • 주방보조2007.03.23 01:33

      하이고...
      저도 노친네인데요^^...게다가 당뇨 고혈압 관절염 갖출 것은 다 갖추었구요

      그렇지만
      누가 저보고 다시 20대로 돌아갈 수 있는 데 돌아가려느냐고 묻는다면
      Never !!!! 입니다.

      나이 공으로 먹는 사람 있습니까?^^

      젊은 것들의 아름다움보다...나이든 이들의 아름다움이 더 가치있잖습니까? 세월과 함께 얼마나 많은 것을 투자한 결과입니까? 꽃의 아름다움도 잎파리의 싱싱함도 대단하지만 ... 결국 열매의 가치에 어찌 비할 수 있겠습니까? 노년의 아름다움이 그와같다고 믿습니다^^

      전 노친네 부부의 다정한 그림이 젊은 부부의 활달함보다 더 낫다 생각합니당^^

      그러므로...왕언니님은...지금 안데르센의 미운오리새끼처럼...당신 자신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못보고 계신 것일지도 모릅니다....ㅎㅎ

  • 김순옥2007.03.23 21:24 신고

    부럽다...약오르다...그렇습니다.
    신혼이 따로 없다는 생각도 들구요.
    저희 부부도 언제라서 그렇게 달콤한 데이트를 즐겼던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구요.
    서로가 다르면서도 비슷한 성향으로 살아가기에 드러난 갈등도 크게 없어보이지만
    또한 멋스럽고 맛스러운 삶도 아닌 것 같고...

    모든 것 다 포용하시는듯 보이시지만 제3자는 모르는 일이죠? ㅎㅎㅎ

    암튼 좋아보이세요.
    아이들에게 더이상의 교육은 없으실듯 싶구요.

    답글
    • 주방보조2007.03.24 00:37

      음...굳이 따지자면 요즘이 신혼 때보다 더 좋은 것같습니다^^ㅎㅎ
      신혼 때는 줄줄이 아이 낳고 갈등하고 서로 피차 철모자라고...그래서 자기 주장이 (주로 제 경우) 강하고 피곤한...등등

      ...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우리의 이 가벼운 산책은 ... 다른 분들의 여행이나 나들이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자잘한 것이지요.
      명절이 되어도 ... 갈 곳이 마땅히 없을 정도이니...부러워 마세요. 게다가 약이 오르다니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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