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밤에 내리는 눈에
어린 아이가 되어 새벽까지 별로 좋지 않은 컨디션을 잊고 뛰놀다가
주일 오후 부터
결국 끙끙 앓아 눕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뇨와 최근 불거진 고혈압때문에 복용하는 약이 늘어 우울증도 따라 는 데다
워낙 매년 한 두번씩은 크게 환절기의 통과의례처럼 몸살을 알아왔기 때문에 이번도 그러리라 순순히 받아들이고
하루 보태 한 사흘 앓으면 되리라 생각했었습니다.
주일과 월요일 이틀을 잔뜩 웅크리고 앓고 있는데
충신이 녀석이 저를 더 아프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학교에서 또 말썽을 일으켰거든요.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하고 녀석을 뒤따라 오게 하면서
동시에...이틀동안 앓으며 쌓아놓았던 저항력이 쑤욱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집에 돌아와
치밀어 오르는 혈기를 누르며 고개속인 녀석에게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도
한편 어리석기 이를데없는 녀석이 불쌍하여 더 힘이 들었습니다.
떠들다 지쳐 침묵으로 돌아서면서 신음소리는 더 높아졌고...
...
밤에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높아지자
교신이는
손가락 두개를 제 몸 여기저기에 대어가며
맥박이 안뛰는 것이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습니다.
이마나 광대뼈나 손등이나 정갱이에 무슨 맥박이 갑지되겠습니까? 심장부근이나 손목도 짚어대긴 하였지만 ... 어른도 맥이 뛰는 제자리를 눌러 짚어야 겨우 느낄 수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맥박이 뛰지 않는 끙끙 앓는 아버지를 내려다 보는 막내 놈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비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야 이눔아 제대로 해 ...아빠가 죽었냐 맥박이 안 뛰게...엉?
알았어요,,,내 솜씨가 녹이 쓸었나...
ㅋㅋㅋ
아침에
학기말 시험에서 수학을 망쳤다며 눈물을 흘려대었던 나실이는
저녁을 먹으러 와서 앓고 있는 제 손을 잡더니...제 손등에 또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눈물을 떨어뜨렸습니다.
야 수학 시험 한두번 못쳐본 것도 아닌데 왜 또 우냐...괜찮다, 다음에 또 잘하면 되고 못해도 열심히 했으면 되었다.
아니요...아빠가 너무 아프시니까 맘이 아퍼서 그래요.
어... 그래...고맙다.ㅠㅠ
막내의 작은 손가락 두개는
더 이상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았고
둘째딸이 제 손등에 떨어뜨린 눈물은
툭툭 치며 올라오던 통증을 많이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신기하게도...
...
오늘이 앓기 시작한지 닷새째 되는 날입니다.
아내는 빨리 낳아야 될텐데 하며 약간 걱정하면서도 내일 뮤지컬 보러 같이 못가는 것을 애석해 하고 계시고
맏딸 진실이는 성적이 좀 오른 것으로 아픈 아버지를 가장 행복하게 하였다고 생각하는 것같고
세째딸 원경이는 가끔 측은한 듯 저를 보고선...아빠는 왜 병원에 안가는 거야...묻고
충신이는...자기를 외면하고 있는 아버지를 감히 볼 엄두도 못내고...있습니다.
사실 오늘
노르웨이에서 온 친구의 얼굴을 구경하고 목소리도 경청해야 하는 날인데... 여전히 몸살기운이 남아 있습니다. 어제 좀 좋아진 것같아 저녁먹고 동네를 한바퀴 돈 것이 좀 무리가 되었나 봅니다.
아프다는 것...
식구들에게 참 미안한 일입니다. 저 한사람 때문에 집안이나 사람들이나 어수선 그 자체니까요...
그러나
가족이라는 것이 ...아프게도 하고 아픈 곳 어루만지기도 하고 함께 그 어수선함을 나누는 것 아니겠습니까?ㅎㅎ
...
아무래도 조금이나마 덜 미안하려면
그래도, 성탄절이 오기전에...나아야겠습니다... ㅎ~
어구 삭신이야~~~
-
-
복순이와 어부도 못왔습니다.(복순이가 자는 바람에..)
답글
소리천사님과 언니..아이들이 왔구요.
대화할 시간은 5분쯤? 몰려드는 사람들과 바쁜일정 때문에...
그래도..좋았습니다. 건강한 모습,활기찬 모습을 보게 되어서요.^^
어여 건강 회복하시길...! -
핑계가 참 다양하네요.
답글
'나이답게 행동하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그러게 적당히 즐기시지 않구서요.
아이들이 방학을 시작하지요?
이제 아버지께서 하실 일이 더 많으실텐데 어서 회복하셔야지요.
아버지의 권위가 살아 있을 때 아이들이 안정감을 가질 수 있겠지요?
겉으로는 설령 작은 불만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충신이에게도 특별한 방학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한빛이 예비중학생이라서 여러가지로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
이구~!
답글
그러게 세월 앞에 장사 없다니깐.
아직도 '아픔 중'이신가요?
자주는 말고 가끔 몸살정도는 앓아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거에요.
늘 더불어 살다보면 존재의 소중함을 종종 인식하지 못하잖아요.
그렇다고 늘 아파서 살면 그것은 가족들에게 무감각으로 작용하니까
조금만 앓고 가뿐히, 속히, 빨리, 후딱, 언능
일어나세요!! -
많이 편찮으셨군요.
답글
지금은 좀 괜찮아지셨습니까?
그 날은...너무너무 어수선해서 오히려 집에서 쉬시는 것이 훨씬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은 무슨...ㅎㅎㅎ 저는 실물이 사진보다 못하기 땜시롱...그냥 계속 사진으로 보는 것도 뭐...
괜찮습니다. 호호호~ 그리고, 목소리는...흠흠...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 날 댁에서 쉬셨던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드님, 따님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눈물겹습니다. 좋으시겠어요...
저도 오랜만에 뵌 아버지의 손등이 너무 쭈글쭈글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답니다.
뭐가 그리 좋아서, 또 뭘 그리 잘 살아 보겠다고 그 먼 곳까지 가서 살게 되었는지...
오랜만에 부모님 뵙고 나니 후회가 막심합디다.
참...강연회 시작 전에 청중석을 휘휘 둘러 보았답니다. 유민이는 대번에 눈에 띄더군요.
눈에 익은 귀여운 얼굴...ㅎㅎ
쩜님과 교신이는 안 보여 일찌감치 미련을 버렸어요. ㅎㅎㅎ
몸이 편찮으시다는 말씀을 미리 들었던터라, 가슴아픈 짐작을 얼른 할 수 있었습니다.
얼른 나으시고...새해...새롭고 건강하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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