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파를 알면 마니가 보인다. |
초기불교 부파의 교단 내에서는 공식적인 회합을 통해 당시에 유통되었던 불설을 점검하여 만장일치로 공인하는 절차를 공식적으로 가져왔다. 이러한 합법적인 정전화(正典化) 절차나 형식을 ‘결집(結集)’이라고 하는데, 불교사에 있어 제 1결집에서부터 제 4결집은 모두 초기불교 부파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대승불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가끔 카니시카 왕 시대의 제 4결집을 대승경전의 결집과 관련시켜 설명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 이에 반해 대승에서의 경전의 기원은 반야경류나 《화엄경》 같은 경우는 용수(龍樹)가 용궁에서, 《대일경》이나 《금강정경》 같은 경우는 남천축의 철탑에서 가져왔다는 식으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신화적인 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가끔 미륵보살이 아난(소승이라고 폄하했던 성문승)과 함께 철위산에서 대승경전을 결집했다는 것 또한 신화적인 철위산과 더불어 신화적(?)으로 수식되고 있을 뿐 역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객관성은 없다. 이러한 결집의 역사를 통해 보면 초기불교 부파의 경전은 대승경전에 비해 형식상 매우 합리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적법성은 초기불교 부파 입장에서는 그들만이 정통적인 불교집단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또 다른 근거가 되면서, 동시에 대승 집단과 경전의 권위를 부정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되기도 한다. 사실 역사적으로 초기불교 집단은 완고하리만큼 자신들이야말로 불교의 정통이라는 확신 속에 살아왔다. 그래서 적법한 근거 없이 나타나기 시작한 대승경전과 집단을 결코 불교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승경전은 시인(詩人)이나 비구의 모습을 한 마라나 그의 부하들이, 혹은 데바닷타 또는 외도나 바라문 서적으로 치부하였으며, 나아가서 그 집단은 이단파(異端派)라는 의미의 Vetullava?a나 공화(空花:su?yapus.pa)외도(外道)라는 말이 쓰여졌을 뿐이다. 공화외도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꽃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외도라는 뜻이다. 불교가 아닌 외도로서 불설(佛說)처럼 그럴듯하게 꾸민 날조된 가르침에 기초하고 있는 집단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초기불교 부파에서는 대승경전을 불설로는 물론 받아들이지 않았고, 어느 정도 그 가치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의 외경(外經)이나 중국에 있어서의 위경(僞經)과 같은 범주에도 언급한 적이 없다. 경시도 아니고 철저한 무시로 일관했던 것이다. 이것은 대승 흥기에 즈음하는 초기불교 부파의 어느 문헌에도 대승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현장의 기록에 의하면 많은 지역에서 “모두 소승을 배우고 대승은 믿지 않았다. 그리고 대승을 공화(空花, su?yapus.pa) 외도라고 하며 석가가 설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곳곳에서 대승을 비방하여, 비방한 이는 그대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하는 경고와 함께 이국인(異國人)인 현장 스스로 대승교도로서 대승을 비방하는 마음을 끊고 대승불설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위해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이것은 대승이 흥기한 후에도 얼마나 대승경전과 집단에 대한 깊은 불신(不信)이 오랫동안 만연해 있었던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여행기에 의하면 그는 이국 승려로서 할시 아발다나 왕이 주최한 대·소승 논쟁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대승 비방에 대한 《제악견론(制惡見論)》을 지어 소승과 외도들을 꺾고 “거듭 대승을 찬양하고…… 소승을 버리고 대승으로 돌아오도록 하였다.”라고 하고 있다. 이때 전 인도 내의 18개국 왕이 참석하고, 대·소승에 통효(通曉)한 고승 대덕 3천여 명, 바라문 및 이건(尼乾, 자이나교도) 외도 2천여 명, 날란다절의 승려 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현장의 완승으로 끝났다고 한다. 물론 현장이 실제로 《제악견론》을 지었는지, 그리고 현재까지 전해져오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인도불교사에 있어 A.D. 7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대승 비불설이 불교계에서 뜨거운 논쟁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목숨을 걸고 오로지 대승법을 위한 그의 구법에 있어 대승이 비불설이라고 하는 비방은 그를 크게 괴롭혔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된 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범망경(梵網經)》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 《원각경(圓覺經)》 그리고 《수능엄경(首楞嚴經)》 등이 모두 중국에서 제작된 위경(僞經)이다. 인도에 기원하지 않아 진정한 경전으로 볼 수 없다고 하여 위경으로 분류되어 논란이 있어 왔지만, 동북아 대승불교권에서는 불설로 간주되어 인도 기원의 다른 대승경전보다 더 중시되고 널리 유포되었던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http://www.budreview.com/html/2/2-issue-cho-3.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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