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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희준님의 격려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어려움의 한 가운데 있는 동안에도 그랬고 또 지금도 그렇습니다. 가방 끈 길이로만 보자면 저는 '다학'이라고 해야겠지요. 아니면 '장학'이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고.... 근데 그 다(多)나 장(長)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 지식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하고 예수님을 형이나 오빠처럼 친근하게 만들어 주고 이웃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우리가 흔히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들 합니다. 그건 영어 표현 "Knowledge is power."를 번역한 말이지요. 그건 아마도 사실일 겁니다. 먼저 알기 시작한 서양은 힘으로 동양을 찍어 눌렀으니까요. 하지만 그 말은 "지식은 권력이다"로 번역할 수도 있답니다. 지식을 빌미로 권력을 탐한다는 말이지요. 그게 요즘 더 세태를 더 잘 반영하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가방끈 긴 것을 밑천 삼아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물론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재산으로, 배경으로, 술수로, 미모로, 혹은 어떤 것이든 권력 추구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으니까요. 마침내 권력이 생기면 거꾸로 재산도, 배경도, 술수도 손에 넣을 수 있지요. 심지어 미모도 얻을 수 있습니다. (성형 수술.... 흐흐흐.) '지식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것까지는 그래도 봐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앞뒤를 바꿔서 이번에는 "권력으로 지식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힘있는 자가 진리를 결정하는 것이지요. 교회에서는 제발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는데.... 불행히도 별반 다름이 없습니다. 힘있는 사람들이 교리도 결정하고, 교리를 적용하는 방식도 결정합니다. 힘에 바탕을 둔 지식이 과연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앎'일까요? 그리고 그런 힘에 바탕을 둔 지식을 다시 이용해서 얻어진 권력이 진정한 '힘'일까요? 그게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모두 압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있고, 그게 진정한 힘이 되려면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또 쓸모가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할 줄 알게 만들어 주고,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성령님의 보호해 주시는 따뜻한 숨결에 감동할 수 있게 해 주고, 어려운 이웃이 '오리만 같이 가 달라'고 할 때 기꺼이 십리 아니라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 같이 가줄 수 있게 해주는 '앎'이이고 '힘'이어야 하지요. 그런 구체적인 효과가 없는 지식이라면 아무리 다학이고 장학이라도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일 뿐이지요. 저는 나이가 더 먹더라도 그러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길희준님 같은 분들 덕분에 그러지 않을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는 아주 불길한(?) 예감도 자주 듭니다. 고맙습니다. 조정희 드림. : 조 선생님의 글들은 : 이 무학인 저에게 : 참으로 많은 지식을 습득 할 수 있도록해서 : 너무나도 좋거든요. : : 생이 허락하는 한 계속 집필하심이 : 아마 이 독자들의 : 바람이 아닐까싶네요. : 건필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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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리고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나를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바로 거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또 너무 약속을 지키려고 하다가는 사는 게 참 팍팍해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살다보면 약속을 못 지키는 수도 있지 뭐.... 하는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앞으로의 칼럼 쓰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 중인데 설사 제가 어떤 약속을 하더라도 그건 반드시 지키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일종의 '약도' 같은 거지요. 정확한 '지도'가 아니라.... 우선 내년 5월 말 정도면 "성경의 한국 개념"을 일단락 하려고 합니다. 그때쯤이면 아마 제 인생의 한 부분, 특히 미국 생활 부분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또 다른 기회를 따라서 미국에 계속 머무르게 될지, 아니면 더 좋은 기회를 따라서 한국에 돌아가게 될 것인지가 바로 그 즈음이면 확실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경의 한국 개념"을 통해 딴에는 중요하다고 여긴 "개념"들을 살폈는데, (물론, 간간이 엉뚱한 소리도 자주자주 종종 하기는 했지만요) 앞으로도 그 짓은 계속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주제가 튀어나올지는 저도 모르고 여러분도 모르고, 아마 하나님만 아실까요? 칼럼의 빈도도 '며칠에 한번' 이라는 식으로 정기적이 아니라, 그냥 시간과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쓰려고 합니다. 그 대신 내년 5월말까지 <제150회> 까지는 채우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총 서른 여섯 개의 칼럼을 쓰면 되겠군요. 9개월에 서른 여섯 개면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1년2개월 동안 열 개밖에 못썼던 것도 봐 주셨으니까 일취월장이라고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독자분들에게 무지하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다지 상당히 딱딱하고 재미도 별로 없는 칼럼에 가입해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때때로 답글도 해 주시고 메일도 보내 주시고.... 저는 얼마나 행복한 지 모르겠습니다. 내년 5월말까지 1백50회를 채울 수 있도록 성원해 주실 것도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정희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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