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조정희칼럼

[개념]깨닫다에 대하여(3)

주방보조 2004. 2. 8. 00:50
<제89호> [개념] "깨닫다"에 대하여 (3) 2002년 02월 15일


한글 개역판 신약 성경에 나오는 "깨닫다"의 헬라어 원어는 대부분이
"수니에미"(       )입니다.  마태복음 13:14의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의 "깨닫다"가 바로 "수니에미"입니다.  

이것은 "함께, 같이"라는 뜻의 전치사 순( '  )과 "보내다"라는 뜻의 동사 이에미(    )의
합성어인데, 직역하면 "함께 보내다"가 됩니다.  그런데 헬라어 사전의 뜻풀이에 따르면 이
말에는 우호감이 아니라 적대감이 섞여 있습니다.  

옛날에는 전쟁을 할 때 두 나라가 각각 군대를 파견해서 일정한 장소에서 만나게 해 전투를
치르게 했습니다.  그 상황이 바로 수니에미입니다.  여기의 "함께"는 "우호적으로,
협력해서"가 아니라, "대결시키기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수니에미의 파생적 의미가 바로 "내 지각 능력과 지각의 대상을 만나게 하다"입니다.  
"마음"속에서 지각 능력과 그 대상이 한판 전투를 치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
지각 능력이 대상을 제압하면 "깨달음"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이런 풀이에는 주체의 마음 상태와 그 결과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물을 깨닫기
위해 내 지각능력을 동원하는 주체의 의지(意志)와 열심(熱心)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는 "깨닫다"의 뜻으로 "수니에미" 말고 다른 말도 사용됐습니다.

마태복음 16:8-11의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 기억지 못하느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는 구절의 "깨닫다"는 둘 다 노에오(    )입니다.  "마음으로 지각하다, 깊이
생각하다"는 뜻입니다.  

앞글에서도 보았듯이 노에오의 어근(語根)은 누스(  ^  )인데, "마음"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지각 및 이해능력 뿐 아니라, 감각과 판단과 결정의 능력"까지도 모두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마음의 가능한 모든 능력을 총동원한다는 뜻입니다.  수니에미처럼 주체의 심각한
마음가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같은 장면을 묘사한 마가복음 8:17에서는 예수께서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고 꾸짖습니다.  

여기서의 "깨닫다"는 다시 수니에미입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같은 예수님의 같은
말씀을 들었는데, 마태와 마가가 서로 다른 낱말을 썼습니다.  누가 실수했다고 하기보다는
두 동사의 의미가 거의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특히 마가복음의 구절에는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제시되어 있어서 시사적입니다.  
"마음이 둔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둔하다"는 헬라어 포루(   '  )를 번역한
말인데 돌처럼 딱딱하다는 뜻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두꺼운 껍데기가 각층처럼 둘러
싸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마음의 기능이 무디어 졌고, 그래서 깨닫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주체의 마음 상태가 깨달음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물론 "깨닫다"의 헬라어 원어가 수니에미와 노에오만은 아닙니다.  에베소서 3:18에는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의 "깨닫다"는
"카타람바노"(        '   )의 번역어입니다.  이는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 끈질기게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일이 "마음"에서 일어나게 되면 카타람바노의 뜻은 "이해하다,
깨닫다"가 됩니다.

그밖에도 "깨닫다"를 나타내는 동사가 몇 가지 더 있기는 하지만 더 살펴보지는 않겠습니다.  
세 낱말이면 성경의 "깨닫다"는 거의 다 포괄되었다고 봅니다.  

거기에 나타난 "마음의 온갖 기능, 즉 생각과 느낌과 판단과 결정 등의 능력을 총동원해서
사물을 파악(把握)하는 것"입니다.  파악(把握)이라는 한자어가 아주 적절한 것 같습니다.  
카타람바노처럼 직접적인 뜻은 "잡다"이지만, 파생된 뜻으로 "이해하다"로도 쓰이기
때문입니다.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